지난번 수업은 솔직히 망했다.
커피숍 한가운데서 나는 노트를 들고, 두 아이는 노트를 들고 달렸다.
색연필은 탄피처럼 바닥에 흩어졌고, 내 ‘안녕하세요’는 아이들의 ‘안녀하셔요오오~’에 매번 길을 잃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었을 때, 노트 귀퉁이에 붙은 스티커 하나가 삐뚤게 매달려 있었다. “파이팅!” 아이들이 붙였음직한 그 스티커를 보고, 나는 한숨 대신 작전을 꺼내기로 했다.
이번 토요일, 같은 자리, 같은 시간.
하지만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가방 속에는 작은 타이머, 얇은 손거울 두 개, 종이부채, 포스트잇, 별 스티커, 빨대, 그리고 얇은 티슈 뭉치가 들어 있었다.
이 수업의 목표는 단 하나 > 웃으면서 발음 하나만 확실히 건져간다.
지난번의 교훈이었다. 많이 가르치려는 마음이 많이 무너뜨린다. 적게, 분명하게, 재미있게.
커피숍 2층 구석 테이블에 앉아 준비물을 꺼내는데, 아래층에서 리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라간다~ 조심해.”
먼저 계단을 딛는 작은 발걸음. 장이링이 분홍 머리끈을 흔들며 나타났다.
그 뒤로 리우위쉬엔이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손에는 지난번에 내가 떨어뜨렸던 그 노트가 있었다. 표지에 아이가 그린 내 얼굴이, 여전히 커다란 입으로 “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은 안 달려요.”
장이링이 먼저 선언했다.
“그래. 대신 달리는 소리를 내보자.”
“달리는 소리요?”
“응. 입에서 ‘파’가 달리고 ‘바’가 걸어가는 거.”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는 사이, 리란이 커피 두 잔과 아이들용 오렌지주스를 올려놓았다.
“지난번처럼 장난치면 오늘은 선생님이 준비한 쿠키 없다.”
장난기 가득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단정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리란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지원군이 있다.
약속과 타이머
“먼저 약속부터.”
나는 포스트잇을 꺼내 커다란 글씨로 세 줄을 썼다.
말할 때는 입을 보자. (서로 얼굴 보기)
순서를 지키자. (타이머 울릴 때 바통)
웃어도 된다. (하지만 노트는 달리면 안 된다)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해요.” 내가 강조하자 장이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웃다가 울면요?”
“그건 엄마한테 혼나야죠.”
리란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아이들이 깔깔대자, 나는 타이머를 3분에 맞추어 딸깍 눌렀다. “3분 동안은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하고, 1분은 너희 시간. 반복.”
아이들의 눈빛이 ‘게임 시작’처럼 반짝였다.
‘파’와 ‘바’
“첫 번째 미션. 티슈 날개.”
나는 티슈를 얇게 찢어 빨대 끝에 살짝 붙였다.
“‘파’를 말할 때는 바람이 빠르고 강하게 나온다. ‘바’는 천천히 오래 나온다. 자, ‘파~’ 하고 불어보자.”
장이링: “파~아아아!”
티슈가 춤을 췄다.
“이번엔 ‘바~’.”
리우위쉬엔: “바~”
티슈가 움직이는 차이가 확연했다.
“봤지? 바람의 차이. 이게 예쁜 파와 착한 바의 차이야.”
장이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파는 바람 요정이고 바는… 모기 날개.”
“오, 좋아! 그래서 ‘파’는 요정처럼 푸우- 하고, ‘바’는 모기 날개처럼 오랫동안....”
나는 손거울을 두 아이에게 나눠주었다. “이번엔 입모양을 보자.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바’는 조용히 떨어지고, ‘파’는 조금 더 기대고 있다가 ‘푹’ 떨어져.”
아이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선생님, 이렇게요?”
장이링이 과장된 토끼처럼 입술을 내밀었다.
“토끼는 귀엽지만 발음은 아니야. 다시!”
3분이 끝나고 타이머가 울렸다. “이제 너희 시간.”
“선생님, ‘파’로만 말하기 게임해요.”
“어떻게?”
장이링이 즉석에서 규칙을 만들었다. “파로 시작하는 한국어 찾아 말하는 사람 이겨요.”
리우위쉬엔이 먼저 외쳤다. “파~파도!”
장이링: “파~파… 파란색!”
나: “파~파인애플…은 영어네. 아, 파마!”
우리 셋이 동시에 웃을 때, 리란이 휴대폰으로 잠깐 찍고 있었다. 화면 속 아이들의 어깨가 음악처럼 위아래로 들썩였다.
‘사’와 ‘싸’
“두 번째 미션. 사와 싸.”
“싸… 싸움할 때 그 싸?”
“맞아. 하지만 여기선 숨의 칼날이 들어간 싸.”
나는 종이컵을 두 개 꺼냈다. 하나에는 소금을, 다른 하나에는 설탕을 살짝 담았다. (실은 둘 다 설탕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상상이 필요하다.)
“‘사’는 설탕처럼 부드럽고, ‘싸’는 소금처럼 톡 쏘지.”
장이링이 킁킁 냄새를 맡다 고개를 갸웃했다. “둘 다 달아요.”
“오늘은 마음으로 맡는 거야.”
우리는 함께 발음했다. “사~ 사~ 싸~ 싸~”
리우위쉬엔의 혀끝이 조금 굳어 있었다. 나는 작은 팁을 줬다.
“‘싸’를 할 때 이빨을 조금 가까이, 숨을 살짝 세게. 쓰—처럼. 근데 웃으면서 해봐.”
웃으며 ‘싸’를 내자, 긴장이 풀렸다. 발음이 부드럽게 정리됐다.
“오, 지금 거 한국 같았어.”
칭찬은 정확해야 한다. 두 아이의 눈동자가 환해졌다.
타이머가 울렸다. 아이들 시간.
“선생님, 그럼 ‘사랑해요’도 해요.”
장이링이 먼저 발포했다. 나는 잠깐 리란을 봤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좋아. 다만 조건. 조용히, 정확히.”
아이들과 나는 동시에 입술을 모았다.
“사·랑·해·요.”
세 번 반복. 마지막에는 리우위쉬엔이 아주 작은 소리로, 그러나 가장 정확하게 말했다.
“사랑해요.”
리란이 컵받침을 만지작거리다, 눈을 들었다. 그 눈빛에는 지난번의 삐걱거림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안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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