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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빛 아래서

by leolee

다시 시작하는 일은 대개 조용했다. 어느 날 갑자기 밝아지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처럼 결정적인 한마디가 모두를 바꿔놓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다시 사이좋게 지내기 시작한 건, 말하자면 하루에 한 번씩 조금 덜 어색해지는 방식으로였다. 아침 인사의 마침표가 딱딱하지 않게 변하고, 점심 무렵에 보내는 사진 속 커피잔이 점점 가까워지고, 저녁이면 서로의 하루에서 건져 올린 가장 작은 웃음거리 하나가 메신저를 건너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쌓이자, 내 휴대폰의 알림음은 어느새 들려도 놀라지 않는 소리가 되었다. 이름만 떠도 흠칫하던 심장은 더 이상 불안에 먼저 반응하지 않았다. ‘다시’라는 말이 우리를 눌러 앉히던 긴장을 조금씩 풀어주고 있었다.


첫 주말, 우리는 태평각 언덕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햇살이 유리창에 얇은 금빛을 바르고, 바람은 아직 봄의 온도를 잃지 못한 채 천천히 소매를 스쳤다. 그녀는 검은 카디건 위에 얇은 스카프를 둘렀다. “따뜻하네.” 내가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앉았다. 컵받침 위로 라떼의 잔열이 번지고, 우리는 잠시 같은 온도를 손에 쥔 채 좌우를 둘러보았다. 한때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가 늘 문제였는데, 오늘은 ‘우리가 같이 있다’는 사실이 장소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내가 말을 꺼내자 그녀는 가볍게 손을 들어 내 말을 멈췄다.


“천천히 하자. 그날의 말은 어제의 일로 남겨두고, 오늘은 오늘 이야기만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우리가 합의한 회복의 방식이었다. 과거를 부정하지도, 과거에 기대지도 않는다. 다만 오늘의 호흡으로 오늘을 건너간다. 그녀는 자신의 일정 몇 가지를 말했고,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실수와 재미있는 학생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웃음은 오래 숨을 쉬지 않아도 그대로 입가로 올라왔다. 웃는 동안에도 속으로 내가 세어보는 것들이 있었다. 그녀가 내 눈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는지, 컵을 내려놓을 때 손끝이 얼마나 떨리는지, 문장 끝에 붙는 숨이 얼마나 편안한지. 모두 합격점에 가까웠다. 아니, 합격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것은 점수로 매길 수 없는 종류의 안도감이었다.


둘째 주에는 오판중심—奥帆中心, 우리가 종종 ‘요트경기장’이라고 부르는 곳—을 걸었다. 바닷바람이 대한민국을 포함한 여러나라의 국기가 기분 좋게 흔들었다. 파란색, 붉은색, 흰색, 그 사이사이를 햇빛이 지나갔다.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과 함께 가볍게 흔들렸다. 멀리서 요트가 하나 천천히 들어왔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고, 아이들은 난간에 매달려 파도를 세었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오랜만에 서로의 보폭이 자연스럽게 맞았다. 예전에는 내가 반 발 빠르고, 그녀가 반 발 느렸다. 오늘은 동시에 멈추고 동시에 움직였다.


“요즘 수업은 어때?” 그녀가 물었다.


“말하기 연습을 많이 해. H대학 면접 때문에. 질문을 외우는 아이들도 있지만, 듣지 못하면 대답을 못 하니까. 그냥 이야기를 하게 하려고.”


“이야기하는 법을 잊지 않게 하는 거네.”


“응. 그리고… 나는 그걸 옆에서 지키는 사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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