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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의 계절

by leolee

6월이면 유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햇빛은 길게 늘어지고, 바다는 느리게 숨을 쉰다.
학생들은 시험을 끝내고 한숨을 돌리지만,
나에겐 또 다른 시험이 시작된다 — 비자 연장.

이맘때가 되면 항상 같은 장면이 떠오른다.
처음 칭다오에 왔던 날들.
그때는 단 한 장의 여행비자, 그것이 전부였다.
여권에 붙어 있는 30일짜리 여행비자를 보면서,
‘일을 찾지 못하면 돌아가야지’라는 막연한 다짐만 있었다.

중국어를 못하는 나는 아침, 점심, 저녁 골목 입구의 노점에서 쩐빙궈즈煎饼果子를 샀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 본 10년 칭다오 생활을 하고 있다는 유튜버의 쇼츠를 봤는데

맛과 방법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보고, 유튜버는 양념질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하루 종일 그 가게에서 먹었던 나는 이제는 아들이 그곳을 물려받아서 하고

가게도 옆으로 옮겼으며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원래 큰 상추에서 이제는 맥도날드처럼

양배추를 채 썬 것으로, 전 맛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들이 물려받으면서 이곳이 맛보다 가성비로 바뀌게

된 것이라는 걸 알 텐데 말이다.
여하튼, 철판 위에서 달걀 냄새가 퍼지고,

밀가루 반죽이 익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채용 공고를 보고, 이메일을 쓰고,
또 답이 오지 않는 하루가 시작됐다.
돈은 빠르게 줄고, 계획은 점점 허공으로 흩어졌다.
바닷가를 걷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그때의 바다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햇빛이 부서지는 수면을 보며

‘그래, 어차피 인생은 이렇게 굴러가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 당시는 비자는 3개월 단위로 연장됐다.
물론 좀 편하게 전부터 알고 있던 여행사의 사장님께 부탁해서 돈을 내고 연장을 부탁했다.
가끔 나는 마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학원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몇 번의 수업 시범을 본 뒤, 원장은 말했다.

“학생들이 좋아하네요. 같이 해봅시다.”


그 말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비자였다.

“우리 학교는 미국인 선생님에게만 워크퍼밋이 나와요.
한국인은… 좀 어렵습니다.그건 이해해 줘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론 씁쓸한 웃음이 났다.
칭다오에는 한국인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워크퍼밋(Work Permit)을 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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