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하얗게 쏟아지는 오전의 복도는 언제나처럼 조용했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며칠 후면 역시 온라인으로 하는 H대학교의 교내 한국어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탁 위에 놓인 두꺼운 서류 더미를 정리하며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
학생들의 눈빛은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여 있고,
나는 그 사이에서 그들의 불안을 덜어주려 애쓰면서도
‘이 시험이 정말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코로나 시즌 후에 시작된 H대학교의 교내 한국어 시험은 조금 특이하다.
시험 신청을 하면 일주일 전쯤 이메일이 도착한다.
그 안에는 PDF 파일 하나가 첨부되어 있다.
각 계열별로 20개의 질문이 정리된 문서였다.
‘한국의 전통문화 중에서 관심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전공을 한국어로 공부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졸업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처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외국인 학생에게는 이 질문 하나하나가 산처럼 느껴진다.
단어를 알아도 문장을 만들 수 없고,
문장을 만들어도 긴장하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은 대부분 그 PDF를 받자마자 외우기 시작한다.
“선생님, 대답 만들고 그거 다 외우면 되는 거죠?”
“다 외워요, 선생님. 이거 다 외우면 합격이에요?”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말하곤 했다.
“외워도 좋아요. 하지만 질문을 못 알아들으면, 아무 의미 없어요.”
아이들은 잠시 웃다가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이 현실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시험은 단순했다.
20개의 질문 중 무작위로 세 개를 골라 한국어로 묻고,
학생이 한국어로 대답하는 구조.
누군가는 운 좋게 쉬운 문제가 걸리고,
누군가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질문 앞에서 얼어붙는다.
그날 오후, 나는 교실 칠판에 ‘H대 한국어 면접 대비’라고 쓰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번 주부터는 연습을 바꿔볼 거예요.
읽고 쓰는 연습이 아니라, 듣고 대답하는 연습이에요.”
학생들은 놀란 듯 서로를 바라봤다.
“선생님, 그냥 답 외우면 안 돼요?”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말은, 자기 생각이 들어가야 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실제 면접처럼 Zoom을 켰다.
한쪽에는 학생, 한쪽에는 내가 있었다.
카메라 너머로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자, 메이린.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 문화는 무엇입니까?”
“음… 저는… 카페 문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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