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란과의 관계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본 영화의 여운은 오래갔다. 그날 이후, 서로의 메시지는 다시 일상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짧은 안부, 사진 한 장, 그리고 가끔은 날씨 이야기. 그런 평범한 대화가 이렇게 소중할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며칠 전 그녀에게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우리 아이한테 한국어 좀 가르쳐줄 수 있을까?”
“응? 아이?”
“응. 아홉 살. 근데 혼자보단, 친구 언니도 같이 듣고 싶대. 열두 살. 이름은 리우위시엔.”
그녀의 말투는 조심스러웠지만, 눈빛에는 약간의 기대가 섞여 있었다.
“토요일 낮쯤, 커피숍에서 한가하게 하면 될 거야. 놀이처럼. 부담은 안 줘도 돼.”
나는 잠깐 망설였다. 대학생이나 성인 수업은 익숙하지만, 초등학생이라니.
게다가 커피숍에서? 집중이 될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덧붙였다.
“아이들이 요즘 한국 드라마랑 노래에 너무 빠져 있어서, 스스로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 그냥, 재밌게 놀듯이 하면 돼.”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사실, 내게도 새로운 경험일 것 같았다.
늘 교재와 시험, 목표 점수 속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언어의 재미’가 사라지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그 잊고 있던 부분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세 시.
리란이 추천한 커피숍 ‘스타벅스’에서 첫 수업을 하기로 했다.
그날, 햇살이 유난히 부드러웠다.
커피숍 창가 자리에는 큰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색연필과 작은 노트, 그리고 준비해온 플래시카드 몇 장을 꺼내 놓았다.
주문한 라떼 한 잔과 아이들을 위한 오렌지주스 두 잔.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리란이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리란이 손을 흔들자, 그 뒤로 쭈뼛쭈뼛 따라 들어오는 작은 두 사람.
“이쪽이 나의 딸, 장이링. 그리고 이쪽은 언니처럼 친한 친구, 리우위시엔.”
아홉 살짜리 장이링은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귀여운 아이였다. 눈이 반짝였고, 입술엔 이미 장난기가 번져 있었다. 반면, 열두 살 리우위시엔은 조금 수줍은 표정으로 내 옆을 흘끗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녕.” 나는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부터 우리 한국어 친구야.”
리란은 자리 옆에 앉아 아이들의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 한 시간쯤 있다 올게. 너무 부담 주지 말고 그냥 재밌게 놀게 해줘.”
그녀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아이 둘이 동시에 내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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