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밤 9시, 맑고 선선(체감 13℃).
이태원역–해밀톤 앞–메인 골목에 코스튬 인파·포토부스·푸드트럭.
버스킹 1~2팀, 길거리 DJ 부스에서 라이트 쇼 간헐.
노점 줄은 짧게 끊어 운영, 펍·바는 예약 위주로 회전 빠름.
삼각대·셀카봉 많아 ‘잠깐 멈춤→이동’ 리듬 반복.
택시·지하철 분산 귀가, 전반 분위기 가볍고 들뜬 축제무드.
01 윤하림(22, 대학생·고양이 분장)
눈꼬리에 글리터를 찍고, 머리띠 귀를 톡 건드린다. 셀카 각도는 0.5배율 아래로, 턱은 살짝 내리고 V사인. 친구가 “하림아 저기 불꽃 사탕!” 하고 손을 잡아 끌자, 종이콘이 번지는 소리까지 귀에 달다. 지나가는 좀비와 눈 마주치면 괜히 “으악!” 하고 놀라 주는 예의도 배웠다. 오늘의 목표는 10장 이상 건지는 것—아니, 실제 목표는 좋아요 말고 ‘좋았어’라는 말. 밤공기에서 바닐라 향이 나고, 구두굽이 돌바닥에 똑똑 울릴 때, 나는 도시가 내 무대라고 믿는다.
오늘의 내 해석: '좋아요'보다 중요한 건, 내가 “좋았어”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02 강지민(28, 스타트업 마케터·吸血鬼 망토)
망토를 휘리릭 돌리면 원형 조명이 뒤에서 번쩍—그 순간만 있으면 피드 걱정 끝. 크루들과 브랜드 로고 스티커를 나눠 붙이며 이벤트 QR을 돌린다. 캠페인 KPI는 ‘체험 300명’이지만, 사실 나는 망토가 더 중요하다. 바람의 각도, 머리카락의 낙하, 땅의 반사광까지 계산하며 재촬영. “다시! 이번엔 느리게.” 내 삶의 리듬도 오늘만큼은 슬로모션이었으면.
오늘의 내 해석: 성과는 숫자지만, 밤의 성공은 한 번 더 휘두르는 여유다.
03 최연우(31, 바텐더·루프톱 펍)
라임을 반달로 썰고, 잔 입구에 소금을 입힌다. 주문은 “피오니 진토닉 두 잔, 펌프킨 에일 하나.” 쉐이커가 팔에서 리듬을 찾으면 바는 춤춘다. “사진 찍으실래요?” 하고 처음 온 커플에게 잔을 맞잡게 해 준다. 몰래 불빛을 낮춰 피부가 더 예쁘게 비치도록—오늘의 마법은 조명에서 나온다.
오늘의 내 해석: 마법은 술이 아니라, 조명을 낮출 줄 아는 손에서 나온다.
04 김래오(26, 버스커·신시사이저)
코끼리 마스크에 LED가 반짝. 킥은 낮고, 베이스는 통통 튄다. 한 소절마다 관객이 늘고, 원을 그리며 몸들이 흔들린다. 누군가 박자에 맞춰 발을 쿵—바닥이 스피커가 되어 되받아친다. 사람들의 휴대폰 화면이 별처럼 떠오를 때, 나는 밤의 지휘자가 된다.
오늘의 내 해석: 관객을 모으는 건 음표가 아니라, 발이 움직이게 하는 킥이다.
05 미나 P.(24, 교환학생·프랑스·요정 날개)
날개 끈을 조이고, “감사합니다” 발음을 네 번 연습했다. 전통 한복 숍 앞에서 사진을 찍자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손짓한다. 길거리에서 먹은 닭꼬치가 예상외로 매워 눈물이 찔끔, 하지만 웃음도 찔끔. 한국의 밤은 안전하고 화려하고, 무엇보다 친절하다. 낯선 도시에서 내가 귀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오늘의 내 해석: 낯선 도시에서 용기는 언어보다 미소가 먼저 통역한다.
06 홍성호(35, 코스튬 대여점 사장)
문 앞 거울엔 분장 크림 손자국이 꽃처럼 번진다. 대여 리스트는 ‘마녀 7, 해적 5, 수트조커 3.’ 바늘로 찢어진 망사 스타킹을 꿰매며 손님에게 팁을 준다. “입꼬리는 과감하게, 대신 눈썹은 얇게.” 가게 스피커에 올드 팝을 틀면 혹시라도 긴장하던 표정들이 툭 풀린다. 오늘은 반납 지연도 미워하지 않겠다고 아침부터 다짐했다. 밤은 길고, 재미는 더 길다.
오늘의 내 해석: 자신감은 분장이 아니라 핏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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