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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공 - 한국시리즈 8차전

심정지 직전.

by leolee

상황

10월, 한국시리즈 8차전. 9회 말 2아웃 만루, 3:3 동점.

풀카운트(3-2). 볼넷·사구·폭투·보크 = 밀어내기 끝(홈팀 워크오프 승).

타자 좌타 거포, 투수 우완 파워피처(투구 수 118). 포수는 마지막에 바깥 낮은 직구 사인.

외야 얕은 전진, 내야 수비 시프트 약간 우측.

바람은 우중간→좌익 약풍. 전광판의 카운트 그래픽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01 장민호(31, 마무리투수 / 직구·슬라이더·손끝)


도망치면 진다. 지금 볼 하나면 끝, 내 시즌도 끝. 포수는 바깥 낮은 곳을 긁어 올렸다. 직구 사인을 두 번, 그리고 고개 끄덕임 하나. 118구가 어깨를 끌어내리지만 손끝은 아직 살아 있다. 오른발로 마운드 흙을 두 번 찍고, 숨을 짧게—의심을 먼저 내쉰다. 타자의 배트 끝이 한 톱 떨어졌다. 그 한 톱이 내 쪽으로 바람을 돌렸다. 팔을 낫처럼 휘두르며 엉덩이를 낮추고, 릴리스 포인트를 반 뼘 더 앞에. ‘여기다.’ 공은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결심의 곡선으로 간다.


오늘의 내 해석: 승부는 공의 궤적이 아니라, 볼을 버리는 두려움을 버리는 궤적이 만든다.




02 유태성(29, 4번 타자 / 타이밍·욕심·한 글자)


풀카운트는 기다림의 종착역. 볼넷은 끝, 밀어내기는 조용한 폭발, 안타는 영웅, 아웃은 밤의 장례식. 포수의 미세한 바깥 유도—그러나 마지막엔 직구가 온다. 오른발 엄지를 스파이크 속에서 살짝 들썩이며 ‘작게’를 되뇌었다. 크게 휘두르면 공이 작아지고, 작게 휘두르면 공이 커진다. 손목을 닫아 밀어 치는 상상, 몸은 최대한 늦게, 배트는 최대한 빨리. 시선은 스티치, 마음은 정적. ‘지금.’ 임팩트가 손잡이를 타고 팔꿈치로 번졌다.


오늘의 내 해석: 마지막 공은 운이 아니라, 욕심을 한 글자로 줄이는 기술이다.




03 이강민(34, 포수 / 프레이밍·심장박·사인 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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