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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집 앞 — 고추장 앞치마와 흰 투피스

by leolee

상황

토요일 밤 8시 20분, 홍대 근처 골목. 숯불 냄새와 음악, 사람들 발걸음이 섞이는 시간.

닭갈비집 유리문이 열리고 여자와 남자 커플이 나온다.

여자에게는 매장에서 준 천 앞치마가 그대로 매여 있고, 여러 사람의 흔적처럼 고추장 얼룩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하얀 옷과 대비되어 앞치마가 더 또렷하게 보이고, 주변 시선이 파도처럼 스쳐 지나간다.




01 이서안(27, 여자 — 흰 투피스)

문을 나서자 바람이 앞치마 끈을 슬쩍 건드렸다. 계산대에서 급히 나오는 바람에 매듭을 풀지 못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흰 투피스 위에 붉은 얼룩들이 낯선 초대장처럼 붙어 있었다. 한순간 얼굴에 열이 올랐지만, 거울 대용으로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생각보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거… 우스워?” 하고 남자를 쳐다보니, 그는 웃지도, 민망해하지도 않았다. 대신 “맛있게 먹은 증거잖아”라고 했다. 그 말이 앞치마를 옷의 일부로 바꿔 버렸다.


오늘의 내 해석 : 얼룩은 민망이 아니라, 내가 잘 먹고 잘 웃었다는 서명이다.




02 한지윤(29, 남자 — 코트 차림)

계산할 때도, 문을 나설 때도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흰 옷 위 붉은 앞치마는 아이러니하게 그녀를 더 눈에 띄게 했다. 누군가의 시선이 우리를 스치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 쪽으로 반 발 붙었다. 혹시라도 불편한 말이 날아오면, 그것을 먼저 받아낼 준비 같은 것. 그런데 그녀가 고개를 들고 걸을 때, 내가 할 일은 방패가 아니라 박자 맞추기라는 걸 알았다. “커피 마실래?” 하고 물으며 보폭을 그녀와 맞췄다.


오늘의 내 해석 : 연인의 민망함을 막는 방패보다, 걸음의 박자를 맞추는 동행이 더 멋지다.




03 박명선(54, 닭갈비집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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