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7시,
시내 강연홀.
주제: 직업·버킷리스트·노동의 의미 in the age of AI → AGI → ASI.
나는 슬라이드 첫 장에 AI → AGI → ASI를 그린다. AI는 도우미, AGI는 동료, ASI는 보호자가 되려 할 거다. 문제는 보호가 과해지면 관리가 되고, 관리는 곧 유아화(Infantilization)다. “위험하니 이렇게 하세요”라는 알림이 우리의 즉흥·편향·감정을 버그로 분류한다. 하지만 인간의 비논리성은 문학·사랑·예술·용기를 낳는 원천이다. 다음 시대의 질문은 기술이 “얼마나 똑똑해지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비논리의 권리를 얼마나 지켜내느냐다. 직업은 ‘정답 제공’에서 ‘의미와 경계 설계’로, 버킷리스트는 ‘소유’에서 ‘무용하고 beautiful한 경험’으로, 노동은 ‘성과’에서 ‘명예와 관계’로 이동한다.
행동계획:
(1) 강연 수익 20%로 재교육 펀드 조성.
(2) “비논리권 헌장” 초안 공개—실수·놀이·우회·느림을 보호하는 조직 규칙 템플릿 배포.
(3) 매달 “퇴근 후 100시간 프로젝트” 공개 운영.
출시 속도가 내 자존감을 추월한다. AGI가 요구사항을 코드로 바꿔 준 뒤, ASI가 위험 제어를 접수하면, 남는 내 일은 뭘까? 회사 콘솔엔 “안전 모드 권장”이 늘어가고, 내 결정은 점점 ‘승인 요청’ 버튼이 된다. 그럴수록 나는 설명·책임·맥락을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아이들과 레고를 쌓다 깨닫는다. 무용한 만들기를 지키는 집이, 결국 창의의 집이다. ASI가 우리를 ‘안전한 어린이’로 관리할 때, 나는 어른의 책임으로 ‘불필요하지만 인간적인’ 선택을 주장할 것이다.
행동계획:
(1) 팀 PRD(문제정의) 주도, 실패 시 롤백·책임 매트릭스 명문화. (2) 주 1회 사내 “AI 쉬운 설명 10분” 세션.
(3) 가정에서 무용한 제작 밤(레고·종이공작) 고정.
라인 자동화가 오면 늘 먼저 오는 건 해고 소문과 집단 불안이다. 예전엔 막는 게 일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전환이 핵심이란 걸 안다. 다만 ASI 시대의 전환은 다른 뜻이다—단지 새로운 기계로 이동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유아화 없이 지키는 제도로의 전환. “안전 모드”가 현장을 지배하면, 작업자는 승인 대기 아이콘이 된다. 우리는 전략적 느림으로 위험평가·안전협약을 선행하고, 전환 교육에 유급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사람을 보호하되, 사람이 어른으로 선택할 공간을 남겨야 한다.
행동계획:
(1) 단체교섭 의제—전환 바우처 200시간/인, 성과이익 공유, 사전 윤리·안전 영향평가 의무화.
(2) ‘노동의 선택권 조항’ 신설: 현장 우회·일시중지 권리 보장.
AGI가 글을 더 잘 쓰고, ASI가 진로까지 추천할 테지만, 그때 나는 누구의 아이가 될까? 학교 앱이 위험을 줄여 준다며 실험을 금지할 때가 많다. 그런데 내 버킷리스트는 점점 쓸모없어 보이는 것으로 채워진다—골목 인터뷰, 낡은 레코드 수집, 동네 지도 그리기. 어른들은 “입시에 도움 되니?”라고 묻지만, 나는 묻는다. “나라는 사람에 도움 되니?” ASI가 최적 답안을 줄수록, 나는 서툰 질문의 힘을 지키고 싶다.
행동계획:
(1) 겨울방학 동네 구술사 100시간 프로젝트.
(2) 학교 신문에 「ASI 시대, 서툰 질문의 권리」 기고.
센서가 낙상을 예측하고, 약 복용을 알린다. 고맙다. 하지만 혼자 드시는 어르신 식탁에 내가 숟가락을 하나 더 놓을 때 생기는 침묵의 안심은 기계가 대체 못 한다. 요즘 보호자 앱은 내 보고서에서 감정 어휘를 줄이라고 권한다.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란다. 그러나 돌봄은 정확한 숫자보다 부정확한 온기로 움직인다. ASI가 위험을 줄이려 우리를 규격화된 친절로만 재단할 때, 나는 느린 방문, 쓸모없는 대화를 일부러 넣겠다.
행동계획:
(1) 동료 5명과 디지털 리터러시 스터디.
(2) 보호자에게 AI요약+사람의 노트 2단 보고(감정·일상 변화 기록) 주 1회.
LLM이 레시피를 뚝딱 낸다. AGI가 재고·날씨·행사로 최적 메뉴를 제시하고, ASI가 “고객은 이 조합을 원합니다”라며 갭 없는 선택을 밀어준다. 그런데 그 틈이 바로 우리 동네의 재미다. 사람은 가끔 엉뚱한 것을 먹고 싶다. 실패한 시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 그리고 우연의 발견. 알고리즘이 내 가게를 ‘안전한 맛집’으로 길들이려 할수록, 나는 무계획의 밤을 지킬 것이다.
행동계획:
(1) 주 1회 데이터 요약 회의로 흐름 파악.
(2) 월 1회 무계획 메뉴 밤—현장 제안으로 바로 조합, 기록은 벽에 ‘실패 지도’로 전시.
AGI가 작곡하고, ASI가 취향을 예측하며, 관객의 감정 곡선까지 설계할 거다. 그건 뛰어나지만, 놀람의 권리를 줄인다. 공연이 ‘상처 없는 콘텐츠’로만 채워지면 예술은 유치원 교실이 된다. 나는 관객을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 저자로 다시 부를 거다. 불완전한 음, 삐끗한 박자, 망설이는 호흡—그 틈이 공감의 입구다.
행동계획:
(1) 시민 50명의 ‘도시 소리’ 수집 → AI 편집 → 무대에서 사람이 다시 흔드는 하이브리드 공연.
(2) 관객 실패권 규칙: 즉흥 제안·중단·재시도 허용.
행정에 AI를 넣는 건 쉽다. 어려운 건 사람을 남기는 일이다. ASI가 민원을 최적으로 라우팅하면서, 시민은 곧 체크박스 아이가 된다. “그 선택은 위험합니다, 권장 경로를 따르세요.” 효율은 오르지만, 시민성은 위험 회피형으로 길들여진다. 도시는 성인이 모여 불편을 협상하는 곳이지, 완충된 유치원은 아니다. 나는 설명가능성·접근성뿐 아니라 일탈의 통행권을 남기고 싶다.
행동계획:
(1) 다국어 챗봇과 함께 사람 창구 유지.
(2) 구청별 공공데이터 문해력 교실 운영.
(3) 정책 KPI를 ‘민원 처리시간’에서 ‘스스로 처리한 시민 비율’로 일부 전환.
나는 정확도 그래프에 중독됐다. ASI가 오면 성능은 상한을 친다. 그다음은? 문제 선택과 이야기다. 숫자가 말하는 최적과, 사람이 원하는 우회 사이에 틈이 있다. 제품이 모든 비논리를 제거하면, 사용자는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된다. 나는 의도적으로 비효율을 한 스푼 남기고 싶다—탐색의 여백.
행동계획:
(1) OKR을 “정확도 +1%”에서 “낭비 -20%·탐색율 +X%”로 재정의.
(2) 주 2회 정성 인터뷰 고정, 실패 스토리북 공개.
교단을 떠나니 시간표가 사라졌다. 앱들은 내 하루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채워준다—약 먹기, 스트레칭, 수면 위생. 친절하지만, 가끔 나를 아이로 만든다. 적정 위험 없는 삶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걸 나는 늦게 배웠다. 내 버킷리스트는 멀고 크지 않다. 낯선 동네 혼자 걷기, 실패한 요리 내놓기, 손주와 엉터리 인터뷰하기. 쓸모없음이 내 노년의 용기다.
행동계획:
(1) 지역 도보 순례 12코스(길 잃는 자유 포함).
(2) 주 1회 요리 실패 파티.
(3) 손주와 세대 인터뷰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