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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다는 일의 무게

by leolee

밍루 엄마와의 상담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미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복도에 늘 흩어져 있던 학생들의 잡담 소리조차 오늘은 조금 고르게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일부러 엿듣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낮춘 것처럼. 나는 평소와 똑같이 인사를 건네고 걸었지만,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나를 지나치며 묘하게 멈칫하는 느낌이 들었다.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자 동료 여선생이 조용히 다가왔다.

“태겸 쌤… 어제 힘들었다면서요?”

나는 의식적으로 예전처럼 밝은 표정을 지었다.

“뭐, 가끔 있는 일이죠. 괜찮아요.”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말할수록 더 괜찮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선생은 의자를 끌고 앉더니 살짝 입술을 씹었다.

“그… 단톡방에서 아직 말 많아요. 그 엄마 있잖아요? 계속 글 쓰고 있어요.”

나는 순간 심장이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뭐라고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우리 아이가 그러는데, 면접 대비가 제대로 안 된 것 같다고 하네요.”
“15분만 하고 수업 끝났다고 하던데, 이게 맞나요?”
“다른 선생님 수업은 30분 이상 한다는데 왜 우리 반만 이래요?”
“학교 차원에서 조치가 필요하지 않나요?”

나는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15분?
그건 차라리 거짓말이었다.
나는 늘 30분이 넘으면 넘었지, 줄여서 한 적은 없었다.

동료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애들이 집에 가서 말할 때 원래 앞뒤 다 빼고 말해요. 엄마들 압박이 심하면 더 그렇고… 너무 마음쓰지 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첫 수업 종이 울렸다.
H대 준비반 학생들이 조용히 교실로 들어왔다.
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샤오위는 오늘 따라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평소에 질문이 많던 샤오팅은 오늘은 입술을 깨물며 노트를 꺼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나는 교탁 앞에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어제… 단톡방 이야기 들은 학생도 있을 거야.”

몇몇 학생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혹시 걱정되거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말해도 돼.”

잠깐의 침묵.
그리고 샤오위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희는 다 알고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선생님이 저희 발음 계속 봐주는 건… 정확하게 말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리고 전공 질문도 저번에 많이 했어요. 근데… 엄마한텐 그냥… 잘 못했다고 말했어요.”

나는 뒤통수 쪽에서 무언가 뜨겁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왜 잘 못했다고 말했어?”

샤오위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냥… 엄마가 기대가 너무 커서… 선생님이 잘해줬다고 말하면, ‘그럼 왜 너는 못하냐’고 할까 봐…”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 한마디가 지난 하루 동안 나를 흔들어 놓은 모든 감정의 실마리를 풀어버렸다.

아이들은 잘못 말한 게 아니었다.
그저 ‘엄마에게 혼날까 봐’
‘실망시킬까 봐’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말 하나가,
학교로, 교무실로, 그리고 내 마음으로 파도가 되어 밀려왔던 거였다.

샤오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이 한국에 안 간다고 했을 때… 진짜 다행이라고 했어요. 우리 다.”

나는 그제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래도 책임은 내가 지는 거야.
너희가 잘못한 건 아니야.”

그 말은 학생들을 위한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교탁에 손을 얹고 천천히 말했다.

“오늘부터 실전 연습 좀 더 많이 할 거야.
어제 있었던 일은… 그냥 선생님이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생각해 볼게.”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 속에는 미안함과 신뢰가 동시에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좀 버틸 힘이 생겼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나는 복도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
햇빛은 평소와 똑같이 내려와 있었지만, 오늘은 조금 더 따가운 느낌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리란이었다.

“밥 먹었어?
오늘도 바쁠 것 같아서… 그냥 물어봤어.”

어쩌면 별것 아닌 말인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오늘 하루 중 가장 부드러운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응. 괜찮아.”
이렇게 보내고 나서 다시 적어 넣었다.

“근데… 조금 힘들었어.”

몇 초 후 답장이 왔다.

“오늘은 그냥… 어깨 펴고 있어.
사람들 말 때문에 흔들리지 마.
나는 너 수업하는 거 봤잖아.”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 한쪽이 조심스레 짚이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이렇게 단단하게 나를 믿어준다는 게,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귀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끝난 게 아니었다.
부장 선생이 오후에 나를 불렀다.

“태겸 쌤… 교장 선생님이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대요.
내일.”

그 말은 곧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라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잠깐 멈춰 서 있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 작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작은 사건일 수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직업과 미래, 존재감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었다.

집에 돌아가 불을 켜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손에 든 핸드폰 화면만 희미하게 방을 밝히고 있었다.

그때 리란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지금 뭐해?”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

잠시 후, 짧은 답장이 왔다.

“괜찮아.
내일 잘 될 거야.”

단 네 글자.
‘잘 될 거야.’

그 글자들이
이 넓은 도시에서 나에게 손등을 조용히 감싸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주 천천히 몸을 누였다.

오늘 흔들렸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내일은 또 다른 파도가 올지도 모르지만,
오늘만큼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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