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이해하는 법

by leolee

면접 준비는 늘 비슷한 지점에서 시작되지만, 매번 같은 방식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특히 이번처럼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 이미 학생과 나 사이에 공유되어 있을 때는 더 그렇다.

준비는 단순히 문장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어떤 질문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서게 될지를 정리하는 과정이 된다.

조선족 학생에게 K대 경영학과 면접은 그런 의미였다.

잘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갈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면접관은 대부분 연배가 있는 교수님들이라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전 경험상, 그분들은 화려한 표현이나 유행어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들고 나와 그 문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묻는다. 학생이 쓴 문장을 다시 학생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준비의 첫날, 가장 먼저 학생이 제출했다는 자기소개서를 다시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이미 제출한 글이어서 수정은 필요 없었고, 면접을 앞두고 보는 글은 달랐다.

이 문장이 질문이 될 수 있는지, 아니면 그냥 지나갈 문장인지부터 다시 구분해야 했다.


학생은 의자에 앉아, 자기소개서를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익숙한 문장인데도, 소리 내어 읽으니 낯설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인상 깊은 부분을 찾게 되었다.


"잠깐만!"


"네?"


"지금 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 교수님들이 고등학교 때 했던 활동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거야?"


"....."


학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집에서 쓰던 말투로 대답하려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필요없는 말들이 너무 많아.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야.”


우리는 그 차이를 분명히 해야 했다. 설명과 답변은 다르다. 특히 면접에서는 더 그렇다.


"이럴 때는 비록 그런적이 없더라도 고등학교 때 전공과 관련된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애. 다른 방법은 실제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걸 이야기를 하면 좋겠지, 예를 들면 학교 축제나 클럽활동 또는 봉사활동 같은 거 말이야...'


"네....."


계속 진행하던 자기소개서에는 ‘중국과 한국의 기업 문화 차이에 관심이 있다’는 문장이 있었다.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문장이지만, 나는 그 문장에 줄을 그었다. “이건 반드시 나온다.” 학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그 문장을 쓸 때만 해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냥 관심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면접관에게는 다르다. 그 문장은 ‘차이가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준비되지 않은 관심은 질문 앞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다.


우리는 그 문장을 중심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의 경영 방식 차이를 거창하게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교수님들이 원하는 건 비교표가 아니라, 이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보고 자랐는지였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꿨다.


“너희 부모님은 회사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해?”

학생은 그제야 말을 풀기 시작했다. 회식 문화, 상사의 지시 방식, 결과에 대한 책임. 그 이야기를 나는 다시 경영이라는 단어로 묶어주었다. 학생은 처음으로, 자기 경험이 답변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다음은 관심 과목에 대한 질문이었다. 경영학과 면접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학생들이 ‘관심 있다’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는 데 있다. 나는 학생에게 딱 하나만 고르라고 했다. 여러 과목을 나열하지 말고, 왜 그 과목이 궁금한지를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만.


학생은 망설이다가 ‘마케팅’을 말했다.

이유를 묻자,


"광고가 재미있어서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 광고, 왜 재미있었어?”

그 질문에서부터 준비가 시작됐다. 재미있다는 감정 뒤에 있는 구조를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연습이 길어질수록 학생의 말투는 조금씩 변했다. 집에서 쓰던 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질문을 듣고 답을 고르는 시간이 생겼다.

나는 그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면접에서 침묵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다.

교수님들은 그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질문과 연결되어 있느냐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에 대해 준비했다. 이 질문은 형식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한 답이 나오는 부분이다.

나는 미리 문장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딱 한 가지만 정리하자고 했다.


“이 학교여야 하는 이유.”

학생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여기가 아니면, 제가 준비한 걸 보여줄 데가 없어요.”


나는 그 문장을 그대로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꼭 남기라고 했다. 절박함을 드러내되, 매달리지 않는 방식으로.


연습이 끝났을 때, 이미 해가 기울어 있었다.

학생은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조용해져 있었다. 불안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번 면접은, 네가 말을 잘하는지 보는 자리가 아니야. 질문을 이해하는지 보는 자리야.”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에는 여전히 긴장이 남아 있었지만, 방향을 잃은 눈빛은 아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이전의 면접들을 떠올렸다.


나 역시 수없이 질문 앞에 섰고, 어떤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결국 나를 다른 방향으로 데려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면접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준비를 다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질문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남은 건 그 질문 앞에 서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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