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전날은 늘 비슷하다.
할 수 있는 준비는 이미 끝났고, 더 손을 대면 오히려 흐트러질 것 같다는 감각만 남는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조선족 학생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더 연습하자고 말하지도 않았고, 긴 문자를 보내지도 않았다. 대신 아주 짧은 메시지 하나만 보냈다.
“질문 끝까지 듣고, 천천히 말해.”
학생은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좋았다. 이제는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말을 붙여주는 시간은 지났다는 뜻 같았다. 준비라는 건 결국, 혼자 견디는 시간을 통과해야 완성되는 거니까.
칭다오의 아침은 여전히 분주했다. 출근 시간의 도로는 늘 막혔고, 학교 앞 편의점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면접 날이라고 해서 도시가 특별히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시험 날과도 달랐다. 시험이 있는 날의 공기가 긴장이라면, 면접 날의 공기는 애매한 공백에 가까웠다.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걸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상태.
우리는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장소는 평소 수업을 하지 않는 빈 교실이었다. 책상 몇 개가 벽 쪽으로 밀려 있고, 가운데에 오래된 책상 하나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교실 한쪽에는 전자칠판이 있었지만, 전원은 꺼져 있었다. 대신 노트북 한 대와 웹캠, 그리고 이어폰이 준비되어 있었다. ZOOM 면접이기 때문에, 공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화면 안이었다.
학생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ZOOM 링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카메라 각도를 조정했다.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자, 그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얼굴 너무 신경 쓰지 마. 화면 안에서는 다 비슷해.”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끝은 여전히 바빴다. 셔츠 깃을 정리하고,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 다시 화면
을 확인했다. 빈 교실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고, 그 적막이 오히려 더 긴장을 키웠다.
면접 시작 시간 10분 전, 나는 자리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이건 내가 의도적으로 만든 거리였다. 온라인 면접이라고 해도, 이 순간부터는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야 했다. 나는 지도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관찰자에 가까웠다.
시간이 되자 ZOOM 화면에 참가자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는 연령대가 있어 보이는 교수님들이 앉아 있었다. 정장이었지만 과하게 꾸미지는 않았고, 표정도 딱딱하지는 않았다. 다만 분명히 느껴지는 건, 이 사람들이 수많은 학생을 이미 봐왔다는 느낌이었다. 학생은 화면을 보며 허리를 곧게 폈다.
“안녕하세요.”
학생의 첫인사는 또렷했다. 발음도 안정적이었다. 나는 그 인사 하나로, 오늘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첫 질문은 예상대로 자기소개였다.
학생은 미리 준비한 구조대로 말했다. 이름, 고등학교, 지원 전공, 그리고 왜 경영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은 빠르지 않았고, 중간에 멈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멈춤은 당황이 아니라, 생각을 고르는 시간처럼 보였다. 나는 그걸 보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연습했던 그대로였다.
다음 질문은 지원 동기였다.
학생은 학교 이름을 반복하지 않았다. 대신, 교육 과정과 수업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실무 중심 수업과 사례 분석 수업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문장을 말할 때,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준비된 문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본인이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질문은 조금 달랐다.
그 순간, 학생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고,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제가 쓴 향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뜻입니다. 냄새의 향수가 아니라, 제가 자라온 환경과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자신 있게 하는 그 답변을 옆 교실 벽에 귀를 대고 들으며, 이 질문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단어 하나를 던져놓고, 그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는 질문. 언어 감각과 사고의 방향을 동시에 확인하려는 질문이었다. 학생은 그 함정을 피해 갔다. 단어의 중의성을 정확히 짚고,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면접관 중 한 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학생은 학교 동아리 활동과 개인적으로 했던 작은 프로젝트를 이야기했다. 거창한 성과는 없었지만, 왜 그런 활동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그 설명이 과하지 않아서 좋다고 느꼈다. 꾸며낸 이야기보다는, 실제 경험을 경영이라는 틀로 묶어 말하고 있었다.
“마케팅 과목입니다.”
“왜죠?”
학생은 예전처럼 광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번에는 그다음 문장이 달랐다. 소비자의 선택,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실제 매출과의 연결.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질문과 답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면접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흘러갔다.
“아직 없습니다.”
“그럼 오게 된다면 가고 싶은 곳은요?”
“서울도 가보고 싶지만, 부산이나 바다 근처 도시도 가보고 싶습니다.”
이 질문들은 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학생의 태도와 언어를 보는 질문들이었다. 학생은 과하게 흥분하지도, 지나치게 조심하지도 않았다. 화면 속에서 그는 ‘잘 보이려고 애쓰는 학생’보다는, ‘자신을 설명하려는 지원자’에 가까워 보였다.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잠깐 웃음이 섞였다. 학생은 한국 가수 한 명을 말했고, 그 이유를 짧게 덧붙였다. 면접관 중 한 명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 너머의 공기가 조금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학생은 잠시 멈췄다. 우리가 가장 많이 연습했던 질문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는 준비한 문장을 그대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했다.
“이번 면접을 준비하면서, 제가 왜 경영을 공부하고 싶은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과정이 저에게는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박함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 문장 안에는 분명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답변이 이 면접의 마지막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면접관들은 짧게 감사 인사를 하고, 면접은 그렇게 끝났다. 화면이 꺼지자, 교실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학생은 노트북을 닫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먼저 묻지 않았다. 이 순간에는 질문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후 학생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질문이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어요.”
“그래?”
“모르는 질문도 있었는데, 그냥 생각한 대로 말했어요.”
그 말이 중요했다. 우리는 그걸 위해 준비해 왔으니까. 문장을 외우는 게 아니라, 질문 앞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 연습.
우리는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평소 수업이 없는 시간이라 학교는 조용했다. 학생은 결과를 걱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는 한 문장으로 그날을 정리했다.
“이번엔…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된 거야.”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자연스럽게 내 선택을 떠올렸다. K대 경영학부. 학생의 면접을 지켜보며, 그 선택이 더 이상 막연하지 않게 느껴졌다. 경영을 공부한다는 건, 숫자를 배우는 일 이전에, 질문을 이해하고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하루였다.
빈 교실에서 시작해, 화면 속 질문으로 끝난 하루.
면접은 끝났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 학생만이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