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계속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메일함은 그대로고, 휴대폰 화면도 변하지 않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같은 장면들이 반복된다.
면접이 끝난 다음 날부터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건 휴대폰이었다. 알림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사실 알고 있었다. 아직 결과가 나올 시기가 아니라는 걸. 그런데도 확인하지 않고는 하루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이건 기대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까웠다. 확인하고,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그제야 마음이 아주 조금 가라앉는 과정.
학교로 가는 길은 평소와 같았다. 아침식사를 사기 위해서 줄을 서는 사람들과 사무실에 들어와서 보는 창밖의 풍경 또한 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장면이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악을 틀어놓고도 가사가 잘 들어오지 않았고, 창밖을 봐도 시선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자꾸 질문 하나가 반복됐다.
‘괜히 그 방법을 쓴 건 아니었을까.’
D대 학생의 면접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화면 속에서 그 학생이 빠르게 대답하던 모습, 발음은 정확했지만 억양이 어딘가 낯설었던 그 문장들. 면접관들의 표정은 분명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만큼 좋았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 애매한 표정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알아듣기는 했을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그 방식이 오히려 감점 요소가 되지는 않았을까.’
교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지만,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열어놓은 채로 한참을 그대로 두었다. 읽어야 할 메일은 많았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자꾸만 두 학생의 이름이 떠올랐다. K대 학생과 D대 학생. 전혀 다른 상황, 전혀 다른 방식, 전혀 다른 준비 과정. 그런데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만큼은, 두 학생이 머릿속에서 같은 무게로 존재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마음은 계속 다른 곳에 있었다. 학생들의 발음을 교정해 주다가도, 문득 ‘저 아이도 나중에 이런 시험을 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을 하다가도,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정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이 스스로에게 돌아왔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생각들이,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계속 발걸음을 붙잡았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식욕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습관처럼 식당에 가서 음식을 받았다. 젓가락을 들고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몇 입만 먹고 내려놓았다. 주변에서는 시험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들도 있었고, 전혀 다른 행정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 대화들에 거의 끼지 않았다. 괜히 말을 꺼내면, 결과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먼저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여전히 알림은 없었다. 메일함도 그대로였다. 그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불안이 올라왔다.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D대 학생의 경우에는 더 그랬다. 준비했던 질문만 나왔다는 건 행운이었지만, 그 행운이 결과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일부러 휴대폰을 가방에 넣어두었다. 계속 확인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대신 길을 천천히 걸었다. 평소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정리라는 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만약 떨어지면,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 질문이 가장 무거웠다.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은, 준비 과정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결과 앞에서는 자주 무력해진다. 특히 그 학생처럼, 모두가 포기했던 상황에서 여기까지 온 경우에는 더 그렇다. 괜히 희망을 키워준 건 아닐까, 괜히 다른 길을 생각할 기회를 뺏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선택하라고 하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다. 그때 그 학생에게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글자를 계속 읽게 하는 방식, 이해를 강요하는 방식, 정석적인 준비 방식. 그 어떤 것도 그 학생에게는 더 가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선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결론에 다시 도달하게 된다. 그 확신과 의심이 계속 교차했다.
밤이 되자, 더 조용해졌다. 집 안의 불을 켜놓고도, 공간이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지만, 뭘 하려던 건지는 금방 잊어버렸다. 대신 메일함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알림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도, 혹시 놓친 게 있지는 않을지 다시 확인했다. 이건 기다림이라기보다는, 결과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가까웠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면접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다. K대 학생이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던 모습, D대 학생이 이상한 한자들이 적힌 노트를 보며 숨을 고르던 모습. 그 장면들이 번갈아 나타났다. 나는 그 장면들 속에서 계속 같은 위치에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도와줬지만 대신 말해주지는 않은 사람. 책임은 있지만, 결정권은 없는 위치.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결과를 아직 모른다는 사실이, 더 이상 불안의 원인만은 아니게 되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학생들이 그 시간 동안 보여준 태도와 선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아침,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여전히 결과는 없었다. 하지만 전날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조급함보다는, 받아들일 준비에 가까웠다. 기다림이라는 건 결국,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로 가는 길,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어깨에 걸려 있던 무게가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결과가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었다. 기다림이 더 이상 공백처럼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도, 메일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그 사실을 바로 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