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이름

by leolee

결과는 예상보다 먼저 왔다.

그날도 평소처럼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메일함을 열어둔 채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화면 오른쪽 아래에 알림이 떴다. D대학. 순간 손이 멈췄다. 그 이름을 보는 데에는 이제 익숙해질 법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메일을 바로 열지 않았다. 이번에는 망설임이라기보다는, 아주 짧은 정리의 시간에 가까웠다.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는 걸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 마우스를 움직여 메일을 열었을 때,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합격 통보였다.


순간 이해가 늦었다. 문장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더. 합격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적혀 있었는데도, 바로 감정이 따라오지 않았다. 기쁨보다 먼저 든 건, 믿기지 않는다는 감각이었다. 그 학생이, 그 방식으로, 그 면접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조립되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모든 선생님이 고개를 저었던 학생.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험 자체가 무리라고 판단되었던 학생.

정석이 아닌 방법으로, 가장 비정석적인 준비를 했던 학생.


그 학생이 합격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결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던 것’이 아니었다는 증명 같았다.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학생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결과 봤어?”


답장은 금방 오지 않았다. 몇 분쯤 지나서야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붙었어요?”


그 문장 뒤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느낌표도, 긴 설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 담담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학생은 전화를 받자마자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을 고르는 소리가 길게 들렸다.


“선생님… 저, 진짜로요?”


“응. 진짜야.”


그제야 학생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기쁨과 놀람, 안도와 아직 믿지 못하는 감정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나는 그 감정을 굳이 정리해 주지 않았다. 지금은 정리보다 그대로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예상치 못한 일이 하나 더 있었다.

학생의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온 것이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교장과 함께 들어온 두 사람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말투는 조심스러웠고, 표정에는 긴장이 남아 있었다. 교장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멀리서 들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게 해주셔서.” “이 학교 덕분입니다.” 그런 말들이 반복되었다.


나는 그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 내가 불려가지는 않았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교장은 부모님에게 학교의 시스템과 선생님들의 노력을 이야기했다. 학생이 얼마나 성실했는지, 학교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니까. 하지만 그 설명 속에는, 그 학생을 위해 선택했던 그 비정석적인 방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마치 그런 시도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부모님은 연신 감사 인사를 했고, 교장은 겸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서운함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고, 분노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대신 아주 미세한 어긋남 같은 것이 마음 한편에 남았다.


‘아, 말하지 않는구나.’


누군가를 드러내지 않는 선택.

특정한 방식이나 판단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 태도.

그건 조직 안에서는 흔한 일이었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학교의 성과로 남기는 게 더 안전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노력이 조용히 지워지는 방식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이게 공정함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선 긋기일까.


나는 그날 이후로,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떠올렸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비정석적인 방법을 썼다는 이유로, 나 혼자 감당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과가 좋자, 그 선택은 조용히 사라졌다. 성과는 모두의 것이 되었고, 과정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차별이라는 단어를 바로 붙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방향성이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책임과 공로가 분리되는 구조. 나는 그 구조 안에서 어디쯤에 서 있는 사람인지,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다.


학생은 이후에도 종종 연락을 해왔다. 합격 서류를 준비하면서 모르는 게 있을 때, 학교 일정이 헷갈릴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예전처럼 답해주었다. 달라진 건,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학교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었다.


그날, 부모님이 돌아간 뒤 교무실은 다시 평소의 공기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누군가는 커피를 마셨고, 누군가는 다음 시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속에서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합격이라는 좋은 결과 뒤에, 설명되지 않은 감정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 일이 단순히 학생을 합격시키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게.


그리고 내가 이 공간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조금 더 분명히 인식하게 된 게.


그 합격은 분명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처음으로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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