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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lee Nov 13. 2024

못다 한 말 남겨진 빈자리

안녕 샤오딩

샤오딩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게 밝아진 날이 있었다. 그녀는 유난히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 보였고,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수업 준비와 학사 일정에 쫓겨 직접 물어볼 기회는 없었다. 그녀의 밝은 표정 뒤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의 대화 속에서 우연히 그녀의 최근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샤오딩이 최근에 소개팅을 받았다더라. 상대가 공무원이라던데?" 


한 동료가 흥미롭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순간 멈춰 섰다. 샤오딩이 소개팅을 받았다고?

샤오딩은 소개팅 이후 확연히 변해 있었다. 예전엔 점심시간마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메신저를 확인하던 그녀가, 이제는 동료들과 더 활발하게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샤오딩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핸드폰을 들이대며


"이쌤, 오늘 수업 끝나고 남자친구랑 저녁 먹으러 가요. 오랜만에 둘이 데이트하는 건데, 뭐 입고 가야 할까요?" 


그녀의 눈빛은 설렘으로 반짝였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거나 입어도 예쁠 거야."


하지만 속으로는 자꾸만 입가에 쓴맛이 맴돌았다.

그동안 그녀의 삶에서 나와의 관계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지만, 내 안에서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 맞다. 샤오딩, 이번 소개팅 잘됐다며? 축하해."


나는 지나가는 말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어... 고마워요."

샤오딩은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미소 속에는 약간의 불안감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평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덧붙여 말했다.


 "우리 사이의 일은 이미 끝났잖아. 이제 너도 행복하게 잘 지내면 좋겠어."


샤오딩은 잠깐 멈춰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읽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짧은 침묵 후,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지난 날 그녀에게 했던 무심한 말들이 떠올랐고, 그것들이 그녀의 마음에 어떻게 남았을지 상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날 이후, 우리는 교실에서 종종 마주쳤지만,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듯했다. 예전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누던 시간이 그리웠지만, 나는 차마 다가갈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샤오딩과 나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 그녀가 나의 수업을 돕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잘 맞았다. 나는 종종 그녀에게 장난을 치곤 했고, 그녀는 웃으며 받아주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첫여름, 그녀와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 수업을 나갔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날,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늘 아래서 쉬었다.

그때 샤오딩이 나에게 말했다.


"이쌤, 여름엔 정말 아이스크림이 최고죠?"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그런데 너는 왜 항상 같은 맛만 먹어?" 


"그냥 익숙해서요. 그리고... 이쌤이 좋아하는 맛이기도 하잖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멈췄다. 그녀의 말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그저 웃음으로 넘겼다. 그때는 그녀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사귀게 되고 난 후 종종 교실이 아닌 밖에서 함께 점심을 먹곤 했다. 학교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그녀와 함께 마주 앉아 국수를 먹던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농담을 던졌다.


"샤오딩, 너는 왜 항상 국수만 먹어? 다른 거 먹어보면 안 돼?"


"이쌤이랑 같이 먹는 국수가 제일 맛있거든요."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이 여자와 떨어지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었다.


저녁 수업이 있던 날에는 서로가 서로를 맥도날드에서 퇴근 시간 근처에 맞춰서 따뜻한 라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빨리..빨리..빨리..커피..커피.."

"여기.."


"후~역시 퇴근 후 마시는 커피가 최고야.!"


주문한 메뉴를 준 후에 서로 간에 수업시간 있었던일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했다.


"오빠, 오늘 어떤 학생이 나에게 남친이 있냐고 했어"


"그래서, 뭐 라고했어?"


"맞춰봐~~~라"


"야 빨리 말해! 너 거기 안서???"


유치했지만 뇌리속에 박힌 소중한 기억이다.


결국 우리는 부모님의 반대로 서로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하었고 벨라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이유로 벨라와의 이별이 남긴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지만 그나마 쉽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옆에서 듬직하게 어준 샤오딩 덕이 컸다. 그러던 중에 샤오딩이 다른 사람과의 소개팅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복잡한 감정 속에서 그녀를 축하했지만, 동시에 쓸쓸함이 밀려왔던 것이다.


"샤오딩, 그 목걸이 남자친구가 준 거야? 예쁘네."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네, 남자친구가 준 거예요."


그녀는 목에 걸린 금돼지 목걸이를 만지며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나는 알고있었다. 중국인에게 금으로된 장신구 선물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통 결혼까지 생각하는 상대에게 주는 하나의 징표라고 한다. 


샤오딩이 남자친구에게 받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미련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숨겨왔던 행복이 이제는 드러나고 있었다.


'내가 부모의 반대와는 상관없이 지속했다면 어땠을까?너무 쉽게 포기한건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은 것이 분명한데, 나는 왜 이렇게 쓸쓸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샤오딩의 책상은 점점 정리되어 갔다. 처음에는 많은 책과 자료들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빈 공간이 더 많이 보였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면서도 직접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샤오딩, 책상 정리하는 거야?" 


이유는 알고 있지만 그냥 물어보았다.


"네,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죠."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멈췄다.


"샤오딩, 이제 정말 떠나는 거야?"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자친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 이제는 저도 제 삶을 찾아야죠."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억눌린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행복해야 해."


나는 최대한 밝게 말하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샤오딩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쌤도 행복하세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잠깐 동안 미련과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지만, 차마 그 의미를 묻지 못했다.

이윽고 샤오딩이 남자친구 손깍지를 끼고 학교 문을 나섰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질수록, 나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나는 그제야 벽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두워진 얼굴로  학원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벤치, 함께 국수를 먹던 라면집, 그리고 저녁 후 데이트 장소가 돼 주었던 맥도날드 매장까지.... 이 모든 것이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가 떠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책상 위에 남겨진 그녀의 메모 하나조차도 소중하게 여겨졌다. '내가 정말로 그녀를 놓아준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만, 답은 없었다. 그저,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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