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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lee Dec 09. 2024

우루무치에서의 재회

재회의 설렘: 우루무치 공항의 낯선 풍경

공항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하늘은 맑고 햇빛이 강했지만, 겨울의 날카로운 냉기가 뺨을 스쳤다. 우루무치. 이름만 들어도 어딘가 이국적인 도시. 처음 발을 디딘 이곳의 공기는 칭다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건조하고 투명한 차가움. 나는 긴 숨을 들이마시며 주위를 둘러봤다.


세라가 보낸 메시지에 따라 만남의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 입구에서 멀리 세라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상하이에서 바로 날아온 그녀는 나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듯했다. 긴 코트를 입은 그녀는 여전히 모델 같은 모습이었다. 짧은 숏컷 머리가 그녀의 얼굴을 더 또렷하게 부각시켰다.


“여기야!”

세라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에 반가움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나는 짐을 끌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다. 잘지냈어?..”

“진짜 오랜만이지. 화상 통화로만 보다가 이렇게 얼굴 보니까 좀 낯설기도 하네.”

“그래도 역시 네가 여기 있어서 다행이다. 춥진 않아?”

“생각보다 괜찮아. 네가 도착하기 전에 잠깐 기다렸어.”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며 세라의 부모님을 기다렸다. 곧이어 세라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대면의 긴장: 세라의 부모님과 첫 만남

세라의 아버지는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이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표정은 다소 엄격해 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몸을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한국식 인사가 어색할까 걱정했지만,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세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아버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칭다오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어 선생님이라고요?”

“네, 중국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책임감 있는 일 같군요.”

그의 목소리는 단조로웠지만, 말속에 어떤 평가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세라는 옆에서 이 대화를 지켜보다 웃으며 끼어들었다.

“아빠, 우리 너무 형식적으로 얘기하는 거 아니야? 이제 그만 가자.”



길 위의 대화: 차 안에서의 스몰토크

우리는 아버지의 차를 타고 세라의 집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칭다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루무치의 겨울은 하얀 설경 펼쳐져 있었다. 가로수가 듬성듬성 서 있는 도로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맥은 낯설면서도 신비로웠다.


“칭다오에서 우루무치까지 오느라 힘들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먼저 말을 건넸다.

. 생각보다 비행시간이 엄청 길더라고요.”

“칭다오는 어떤 도시인가요?”

“바다가 있어서 여름이 특히 좋아요. 겨울은 우루무치보다는 따뜻한 편이고요.”

“바다... 상하이처럼?”

“네, 상하이만큼 크진 않지만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예요.”


아버지는 대화에 크게 참여하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지만, 중간중간 거울로 나를 흘낏 보았다. 그의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세라와의 관계를 허락할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은 무언가를 느꼈다.



첫 만남의 공간: 세라의 집에서 느낀 첫인상

차는 작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바깥에서 보기에 건물은 오래된 듯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넓은 거실, 고급스러운 나무 가구, 그리고 곳곳에 놓인 전통적인 장식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에서는 집 내부를 자기 입맛에 맞게 꾸미는 게 흔한 일이.” 세라가 웃으며 설명했다.

“정말 고급스러워 보. 밖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넓을 줄 몰랐어.”


“고마워요. 저희도 손님 오실 때마다 이런 반응을 들어요.”

어머니가 차를 내오시며 기분 좋게 대답했다.



익숙하지만 낯선: 첫날의 짧은 밤

첫날은 짐을 풀고 저녁 식사로 마무리되었다. 저녁상에는 전통적인 우루무치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양고기와 고추를 사용한 매운 요리들. 나는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를 맞추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긴장이 풀리진 않았다. 사실 나는 양고기를 먹으면 안되는 체질인데 우루무치의 특색 요리가 양고기가 많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준비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먹었다간 샤오딩에 집에서 있었던 일처럼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양고기는 좀 못먹는다고 말씀을 드렸다. 근데 그때 실망한 표정을 보이셔서 나도 기분이 좀 그랬다.


세라는 내 옆에 앉아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거리감은 숨길 수 없었다. 세라는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매일 부모님과 통화하며 친밀할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럼 내일은 조금 일찍 나가볼까?” 세라가 물었다.

“좋아. 우루무치 구경도 하고, 부모님과 더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어.”


밤이 깊어갈수록 나는 이 여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세라의 부모님과 세라 사이의 거리감,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 모두가 엉킨 실타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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