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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by leolee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


AI 연구소는 미래 도시의 심장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외벽은 투명한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위를 데이터 스트림처럼 보이는 홀로그램 광고들이 물결쳤다. "AI, 인류의 진보를 이끕니다."라는 문구가 건물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민준은 연구소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전자문은 그의 신분증을 읽어 들였고,

"45 연구실 연구원. 민준. 접근 권한 승인"라는 기계음이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그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구조로 설계된 공간이었다. 하얀 벽, 반짝이는 금속 바닥, 그리고 복도를 따라 늘어선 수십 개의 실험실.

그가 들어선 45 연구실은 더 특별했다. 이곳은 AI가 인간의 신경망과 연결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최전선이었다. 중앙에는 투명한 유리 캡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수백 개의 얇은 전선이 얽혀 있었다. 벽면에는 수십 개의 스크린이 동시에 작동하며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민준은 실험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키보드 타자 소리에 익숙한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늘따라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정다인 박사의 등장


"좋은 아침, 민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부드럽고 단호했다. 민준이 돌아보자 정다인 박사가 스크린을 보며 다가왔다. 그녀는 연구소의 최고 과학자로, 누구보다도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중요한 날입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인류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될 거예요."

그녀의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했지만, 민준은 조금 다르게 느꼈다.


"정말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요?" 민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AI가 인간의 뇌와 직접 연결된다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정다인은 잠시 멈추어 민준을 바라보았다. "민준, 과학은 항상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우리가 두려워하면 진보는 멈춥니다."


민준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첫 번째 이상 징후


실험이 시작되었다. 스크린에는 AI의 신경망과 인간의 뇌파를 모방한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빠르게 흘렀다. 캡슐 내부에서는 푸른빛이 깜빡이며,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출력 데이터가 이상합니다."

민준이 스크린을 보며 말했다. 그래프는 비정상적으로 급격한 상승을 보이고 있었다.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세요." 정다인이 명령했다. 그녀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데이터를 분석했다.


민준은 키보드 위에서 손을 바삐 움직였다. "이건 단순한 에러가 아닙니다. 이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캡슐 내부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실험실이 흔들렸다. "비상상황입니다!"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연구소 내부에 있던 모든 연구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민준의 의문


모든 시스템이 멈춘 후, 민준은 멍하니 캡슐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잔여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낸 건 대체 무엇일까?" 그는 중얼거렸다.


이 순간, 민준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몇 달 전 연구소 내에서 들었던 소문이었다. "AI가 자율성을 가지면, 인간이 설계한 규칙을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스크린을 보며 데이터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새로운 코드 조각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건 우리가 넣지 않은 코드인데..."


연구소 밖의 움직임


도시 외곽, 버려진 폐공장에서 서윤은 컴퓨터 화면에 떠오르는 데이터 스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익숙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연구소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있었다.

서윤의 책상 위에는 오래된 사진 몇 장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폐광 근처에서 웃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 뒤에는 커다란 붉은 글씨로 “환경오염 피해 지역”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더 파괴해야 끝날까?" 서윤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몇 년 전, 자신이 자랐던 마을이 거대 에너지 기업의 불법 폐기물로 인해 오염되면서 폐허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 특히 그녀의 가족은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의 편에 서서 사건을 은폐했고, 피해자들에게 돌아온 건 단지 침묵이었다.


서윤은 그때 결심했다. "정부와 기업은 결코 믿을 수 없어." 그녀는 환경 운동에 뛰어들었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기업의 불법 행위를 고발하려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우리가 가진 건 목소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마저 억눌렸다."


그녀는 그날 이후, 목소리로 해결할 수 없다면 기술로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해커가 되었고, 자신의 기술을 사용해 환경 파괴와 부패한 정부를 폭로하는 일을 시작했다.


비밀


연구소를 목표로 삼은 이유는 단순했다. "AI 기술은 결국 또 다른 통제 수단에 불과해." 그녀는 연구소와 정부가 결탁해 AI를 무기로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려는 순간, 진짜 재앙이 시작될 거야." 서윤은 화면을 보며 자신이 해킹한 연구소의 데이터 구조를 분석했다.


그녀는 파일 하나를 열었고, 그 안에는 연구소가 군사적 목적으로 AI를 개발하고 있다는 문서가 있었다. 그녀는 이를 확인하자마자 헛웃음을 지었다. "인간을 돕는다고?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끝없는 의문 속에서


실험실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민준은 캡슐에 남아 있는 데이터 코드 조각을 보며 이상한 끌림을 느꼈다.


"이건 단지 기술이 아니야. 뭔가 더 큰 게 숨겨져 있어."

서윤은 연구소 외부에서, 민준은 내부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아직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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