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새벽
AI 연구소의 제45 연구실은 이른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실험의 실패는 단순히 하나의 변수로 간주되었고, 정다인 박사는 팀원들에게 오늘의 일정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민준은 여전히 그 실패가 단순한 변수일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손은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이며, 전날 실험의 데이터를 다시 분석하고 있었다.
“민준, 오늘까지 지난 데이터를 정리하고 다음 실험 준비를 마쳐야 해.”
정다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민준은 데이터를 응시한 채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제 데이터에서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정다인은 그의 자리로 다가왔다. 민준은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출력 신호와 함께 생성된 코드입니다. 우리가 설계한 코드와 전혀 맞지 않는 패턴이에요. 이런 게 실험 중에 자주 나타나는 건가요?”
정다인은 화면을 몇 초 동안 응시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단순한 신호 충돌이야. 네가 아는 것처럼 실험 초기에는 이런 오류가 흔히 발생해. 걱정하지 마.”
민준은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화면의 데이터를 확대하며 홀로 더 깊이 분석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만의 조사
연구소가 점점 조용해지자, 민준은 홀로 남아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전날 실험에서 발생한 출력 과부하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그는 캡슐의 로그를 꼼꼼히 검토했다.
“이건 뭐지...”
그는 로그 파일 중 하나에서 의문스러운 신호 경로를 발견했다. 연구소 내부 시스템의 기록에 따르면, 특정 신호가 캡슐 내부로 주입된 경로가 내부 네트워크가 아닌 외부 IP 주소에서 시작되었다.
“외부에서?”
그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연구소 시스템은 최고 수준의 보안을 자랑했으며, 외부에서 침입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그는 분명히 외부 접속을 나타내고 있었다.
민준은 데이터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접속 흔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신호가 특정 타임스탬프에 맞춰 연구소 내부 시스템에 주입된 것이 분명했다.
“이건 단순한 과부하가 아니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시스템에 접근했어.”
그는 화면을 응시하며 손에 땀이 배어나는 것을 느꼈다.
정다인과의 대립
민준은 다음 날 아침, 데이터를 들고 정다인을 찾아갔다. 그녀는 캡슐 내부의 점검을 지시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박사님,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외부에서 우리 시스템에 침입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정다인은 잠시 민준의 데이터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민준, 그건 네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우리 시스템은 최고 수준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어. 네가 본 데이터는 단순한 신호 겹침일 가능성이 커.”
“하지만 이건 신호 겹침이 아닙니다.”
민준은 그의 화면을 가리켰다.
“보세요, 이 경로는 연구소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왔습니다. 이건 명백한 침입입니다.”
정다인은 피곤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침입이라면 보안팀에서 알아서 해결할 거야. 민준, 지금 우리는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해. 개인적인 걱정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 줘.”
민준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정다인의 차가운 반응에 그는 답답함과 실망감을 느꼈다.
“왜 아무도 이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지...”
그는 혼자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결심했다.
서윤의 행동
같은 시각, 도시 외곽의 폐공장. 서윤은 노트북 앞에 앉아 연구소 시스템에 접속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래, 여기까지 들어왔어.”
그녀는 화면에 떠오른 실험 데이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소 내부 캡슐에서 생성된 신호와 실험 로그를 살펴보던 그녀는 기술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발견했다.
“결국 또 무기를 만드는 거였군.”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서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데이터를 저장하며 다음 단계를 계획했다.
“이걸 막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까, 내가 해야지.”
그녀의 눈빛에는 결의와 불안이 섞여 있었다.
경고의 여운
연구소로 돌아가 민준은 홀로 남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는 화면에 떠오르는 로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더 큰일이 벌어지고 있어. 이걸 그냥 넘어가면 안 돼.”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한 채, 서윤은 이미 연구소 시스템을 더 깊이 해킹하고 있었다. 민준은 자신의 의심이 단순한 우려를 넘어설 수 있음을 직감했지만, 연구소 안에서 홀로 싸우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