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우리 생활에 이용하려는 첫 번째 결실이 화학적 에너지가 전기적 에너지로 바뀌는 원리를 이용한 전지, 즉 배터리(대중적인 표기로는 일본어식 발음인 밧데리)의 발명이다. 배터리란 말은 원래 대포가 진을 치고 있는 대열을 의미하였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Manhattan) 섬의 남단에 해안을 끼고 배터리 공원(Battery Park)이 있다. 이는 맨해튼 섬의 점유를 두고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서구 열강이 각축하던 시기에 섬을 먼저 점령하고 있던 나라가 그 섬에 접근하는 다른 나라의 선박들을 견제하기 위해 해변에 설치하였던 포대 진지에 연유한다. 포의 정확도나 화력이 떨어지던 당시에 포를 일정한 형태로 배열시켜 놓고 발포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정확도와 파괴력을 높이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오늘날에도 TV 뉴스에서 군이 훈련하는 광경을 보면 여러 대의 자주포가 일정한 배열을 갖춘 진지에서 발포한다. 이같이 하나의 전기 배터리는 전기화학적 셀(electrochemical cell)이라고 하는 단전지(單電池)가 여러 개 복합되어 있다. 전기자동차와 같이 큰 전력을 사용할 때는 이 배터리가 아주 많이 직렬과 병렬로 연결되어 있다. 한때 야구 중계방송에서 투수와 포수의 조합을 배터리라고 하였다.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
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
당신 없인 못 살아 정말 나는 못살아
당신은 나의 배터리
- 조영수(1976~ ) 작곡, 홍진영(1985~) 노래, <사랑의 밧데리>(일부)
위의 ‘사랑의 밧데리’란 트로트 노래는 신나는 곡조로 우리가 필수품으로 사용하는 배터리를 남녀의 사랑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전기 대신 사랑으로 충전이 필요한 배터리와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여기서는 노래의 앞부분만 인용했다.
인류에게 전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 부근에서 일명 바그다드 전지라 불리는 전지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기원전에 이미 원리적으로 금이나 은의 도금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1800년 이탈리아의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는 아연(Zn)과 은(Ag) 또는 구리(Cu)의 판을 여러 개 번갈아 놓고, 그 사이에 소금물을 적신 모피 조각을 끼어 놓으면 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른바 볼타전지의 발명이다. 그 뒤 여러 형태의 전지가 제안되었다가 1868년에 망간 전지가 처음으로 고안되었다. 1882년 아연(Zn)을 음극으로 산화망간(MnO2)을 양극으로 하고 알칼리성인 KOH를 전해액으로 쓴 알칼리 망간 전지가 발명되었고, 이 전지가 20세기 들어서 더욱 발전되어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알칼리 망간 전지는 건전지라고도 불리며 리모컨, 시계, 가스레인지의 점화장치 등 소형 전자제품에 일회용으로 쓰인다. 전지(電池)는 한자어로 전기가 채워진 연못이라는 뜻인데, 건전지(乾電池)는 아무리 보아도 물기가 없으니까, 건어물이나 건포도라는 말처럼 전지 앞에 건(乾) 자를 붙인 것 같다. 건전지는 일정 기간이 지나 한정된 전기용량이 모두 방전되면 더 쓸 수가 없어 기기에서 빼내고 새것을 사다가 갈아 끼어야 한다. 이런 일회용 전지를 일차전지(primary battery)라고 부른다. 건전지는 보통 원통형으로 금속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크기에 따라 AAA, AA, A 등으로 불리며, 전자기기의 형과 개수에 맞게 사다가 장착하여야 한다. 기기에 따라서는 B형, D형 등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건전지를 교체할 때는 기기마다 무슨 형을 쓰고 있는지 미리 알아보고 확인해야 한다.
한편 소모된 후 직류 전기로 충전하면 반복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이차전지(secondary battery)라고 부른다. 한때 ‘재충전 가능한 배터리’란 뜻으로 영어로 rechargeable battery라고 불리며 휴대용 면도기 전원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요즈음은 우리 주위에서 휴대전화 전원이 대표적인 이차전지이다. 이차전지는 건전지와 다르게 시중에서 따로 팔지 않고 기기에 내장되어 있어서 사용자가 마음대로 교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전에는 배터리를 다 쓰면 기기에서 분해하여 꺼내 충전기에 꽂아두고 새것을 기기에 갈아 넣었다. 알고 보면 충전기는 충전(充電)하는 기기가 아니라 발전소에서 오는 교류전기를 직류 전기로 바꾸는 변환기(converter)이다. 요즘에는 휴대전화 내부에 배터리가 들어있어서 사용자는 충전할 때 전원 플러그에 휴대전화를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에 아주 오래된 이차전지가 있다. 바로 자동차에 장착된 납/황산(Pb/H2SO4) 축전지이다. 이미 1860년에 납축전지가 발명되어 지금도 휘발유를 연료로 쓰는 자동차에 배터리로 사용되고 있다. 처음에는 직류발전기의 피크(peak) 수요 시에 보조(back-up)용 전원으로 쓰이다가 20세기 들어 자동차 산업의 발달로 그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 납축전지 이외에 휴대용 기기들의 다량 보급으로 소형 이차전지의 수요가 늘어 Ni-Cd, Ni-수소 전지가 개발되었으나, 요즘은 리튬이온전지가 이차전지의 대세가 되었다. 리튬이온전지는 약 30년 전에 휴대용 전자기기용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성능이 향상되어 자동차의 동력으로까지 쓰이게 되어 전기자동차가 휘발유 엔진 자동차를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실용되고 있는 전지 대부분은 원자의 산화∙환원 반응을 이용한 것이다. 하나의 전해질 용액에 산화∙환원 전위가 다른 두 개의 산화∙환원 전극계가 있을 때 두 전극 간에는 전위차가 생기고, 이 전위차에 의해 전지가 형성된다. 우리가 휴대전화에 사용하는 리튬이온전지를 예로 들어 보자. 리튬전이금속산화물(예: LiCoO2)로 되어 있는 배터리의 양극에서는 산화가 일어나서 한 개의 리튬 원자가 한 개의 리튬이온이 되어 유기물 전해질을 통하여 탄소(흑연)로 되어 있는 음극으로 이동한다. 이와 동시에 한 개의 리튬 원자에서 나온 한 개의 전자는 외부 전선을 통하여 음극 쪽으로 흐르게 된다. 전해질을 헤엄쳐 온 리튬 이온과 외부 전선을 통해 온 전자가 음극에서 재결합(환원)이 일어나 리튬 원자가 되어 흑연의 층과 층 사이에 들어가게 된다.
많은 수의 전자의 흐름으로 생긴 전류가 외부 도선을 통해 흐르게 되는데, 이 전류를 휴대전화에서 사용하게 되면 휴대전화가 작동하게 된다. 휴대전화를 오래 사용하게 되면 이 전자(이온)의 흐름이 약해지고 결국에는 아예 없어진다. 이를 방전(放電, discharge)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휴대전화를 전원 플러그에 꽃아 충전을 시킨다. 그러면 음극을 이루는 흑연의 층간에 들어가 있는 리튬 원자를 외부의 전기 에너지로 끌어내서 리튬 이온과 전자로 분리하여, 이온은 전해질을 통해 양극으로, 전자는 외부 도선을 통해 양극으로 이동하여 양극에서 재결합하여 리튬 원자 형태로 리튬전이금속산화물(예: LiCoO2) 결정 안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을 보통 충전(充電, charge) 과정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은 전기를 충전(充塡)시키는 것이 아니고 외부 전기 에너지를 리튬 원자의 화학적인 에너지로 변환시켜 저장해 두는 것이다. 이렇게 충전과 방전 기간에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왔다가 갔다가 한다고 리튬이온전지를 영어로 swing battery, shuttle battery, rocking chair battery라고 다양하게 부르기도 했었다.
여기서 잠깐 이온이란 무엇인가 살펴보자. 원자는 중심에 양(+)의 전하를 갖는 원자핵과 그 외곽에 음(-)의 전하를 갖는 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 하나는 자신의 원자번호에 해당하는 숫자만큼의 전자를 갖고 있다. 리튬 원소의 원자번호가 3이니까 리튬 원자 하나는 3개의 전자를 갖고 있다. 보통 전자 혹은 전자 하나가 갖는 전기량을 e라고 표시하는데 e = –1.6 x (10의 -19승) C(쿨롱)의 값이다. 따라서 리튬 원자는 +3e의 전하를 갖는 원자핵과 –3e의 전하를 갖는 세 개의 전자와 전기적인 힘으로 결합되어 있다. 리튬의 원자핵에 붙잡혀 있는 3개의 전자는 처해 있는 위치가 서로 다르다. 처음 2개의 전자는 원자에 상대적으로 가깝게 위치하여 원자핵에 강한 힘으로 구속되어 있으나, 나머지 한 개의 전자는 원자핵과 거리가 더 떨어져 있고 구속력도 약하여 외부의 유혹하는 힘에 쉽게 분리되어 나오게 된다. 이렇게 밖으로 전자 하나가 분리되어 나오고 남은 원자의 본체를 리튬 이온이라고 부르는데, 리튬 이온은 +e의 양전하를 갖게 된다. 이 과정을 문자로 이렇게 표현한다.
Li = Li+ + e-
원자 하나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전자의 전기량은 –1.6 x (10의 -19승) C으로 작지만, 1몰(mol)의 리튬 원자의 숫자가 6.02 x (10의 23승) 개이므로 전자 1몰의 전기량은 1.6 x (10의 -19승) C/개 x 6.02 x (10의 23승) 개 = 96,320C이 된다. 이 숫자를 패러데이 상수(F)라고 한다. 보통 F = 98,000C(쿨롱)이라고 표시한다.
보통 전지는 양극, 음극, 전해질, 분리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전지의 4대 구성요소라고 부른다. 리튬이온전지의 경우 양극은 리튬이 포함된 화합물(예: LiCoO2)이 분말 형태로 발라져 있고, 음극에는 흑연(C) 가루가 발라져 있다. 전해질은 주성분이 LiPF6인 액체의 유기화합물로 되어 있는데, 이 전해질 속을 리튬 이온은 통과하고 전자는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전해질을 전자 필터(electronic filter)라고 부른다. 분리막은 +극과 –극을 전기적으로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 데 고분자 박막으로 되어 있고, 전해질 중간에 위치해서 리튬 이온의 통과만 허용하고 있다. 원래 전지는 수용액(水溶液) 상태의 전해질 용액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반응을 이용하여 고안되었다. 양극으로 Zn 또는 Cd와 같은 금속 원자를 사용함으로써 이들 전지의 환원 전위는 H/H+ 환원 쌍보다 더 큰 음(-) 전위를 갖는다. 그러나 수용액 상태의 전해질에서는 물의 열역학적인 전극전위 때문에 전지 대부분은 1.5V(볼트) 근처의 낮은 동작전압을 갖는다.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를 기념하여 V(볼트)로 전압의 단위를 정할 때 원자의 환원 전위 값을 참고하였다. 수용액이 아닌 유기화합물로 이루어진 전해질을 쓰고 있는 리튬이온전지도 동작전압은 기껏해야 4V 이내이다. 반면에 발전소에서 송전(送電) 되어 오는 교류전기는 수천 혹은 수만 볼트가 가능하고 송전 과정에서 적당한 변압기를 써서 감압하여 우리 가정에서는 200V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교류전기는 구리라는 전기가 잘 통하는, 전기저항이 아주 작은 금속으로 된 전선을 통하여 전달되어야 하고 가정이나 전철 등의 사용처에서 생산과 거의 동시에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기 자체는 어디에다가 담아 두었다가 쓸 수 없다. 그래서 KTX 선로 위에 전선을 꼭 설치해야 전기기관차가 여객열차를 끌 수 있다. 배터리는 전기를 담아 두는 전지(電池)가 아니라, 전기를 화학에너지로 변환하여 저장해 두었다가 쓰고 싶을 때 전기라는 형태로 다시 뽑아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동차의 동력원으로 배터리를 검토하였으나, 당시 배터리의 힘이 자동차의 동력으로 미흡하여 석유 엔진 자동차가 등장하여 대세가 되면서 전기자동차의 꿈을 접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다시 직류를 쓰는 배터리가 자동차의 동력원으로 검토되었다. 1980년대 이후 휴대용 전자기기가 보급됨으로써 그 동력원으로 배터리가 활발히 연구되고 리튬이온전지가 채용되었다. 전자기기에의 사용 과정에서 배터리의 성능이 향상되고 리튬이온전지가 자동차의 동력으로까지 검토되기 시작하였다. 지구온난화와 기후 이변이 과도한 화석 연료의 사용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에 따라 각국 정부는 석유 자동차의 사용을 규제하고 전기자동차의 사용을 권장하기 시작하였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에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로 에너지를 저장한다면 전기자동차 운전자가 이산화탄소를 직접 배출하지 않을 뿐 화력발전소에서는 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야 한다. 즉 전체적으로 볼 때 화석 연료의 사용량을 줄일 수 없다. 원자력이나,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밖에는 그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의 역할은 SLI(starting, lighting, ignition)로 요약할 수 있다. 자동차의 시동(starting)을 걸고, 필요시에 실내외의 조명(lighting)을 켜고, 운전 중에 연소실을 점화(ignition)하는 데에 전기를 사용한다. 이를 위해 납/황산 배터리(축전지)를 자동차에 장착하고 운전 중에는 발전기(generator)에서 전기를 생산하여 배터리에 저장한다. 석유를 사용하던 내연기관이 없어지고 리튬이온전지에서 나오는 전기로 자동차를 움직이게 됨으로써 자동차 부품 구성에 변화가 오고 자동차 설계 개념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