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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May 17. 2024

E19. 금정과 합정

 필자가 평생 제일 오래 살았던 산본 지역에 전철(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금정역이 있다. 1호선만 다닐 때는 명학역 다음에 바로 군포역으로 금정역은 있지도 않았는데, 4호선이 뚫리면서 그 교차점에 환승역으로 금정역이 생겼다고 한다. 필자가 산본에 살 때, 역 이름이 왜 금정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금정은 옷깃 또는 옷고름을 의미하는 금(衿) 자와 우물 정(井) 자가 합쳐진 단어이다. 아마 옛날에 이 근처에 우물이 있었는데 아낙네들이 물길을 때나 빨래할 때 옷고름이 흠뻑 젖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수원(水原) 지역에서 서북 방향으로 흐르던 물이 지하에 스며들었다가 지상으로 분출한 것이리라. 이 물줄기는 안양을 거쳐 목동 근처에서 한강으로 합류한다. 그 어간에 금천(衿川)이란 지명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행정 구역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부산에 가면 금정산(金井山)이나 금정구가 존재한다. 일본에는 ‘이마이’라고 읽는 금정(今井)이라는 성씨가 있다. 안양시와 군포시에는 일본의 성(姓)과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지명이 좀 있다. 평촌(坪村)이란 지명은 일본어 ‘히라무라(平村)’를 연상하게 하고 산본(山本)은 ‘야마모토’를 연상시킨다.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니 ‘야마모토’는 산기슭이나 산의 소유주 또는 광산의 소재지 또는 그곳의 경영주를 의미한다는데 보통 한자로 산원(山元)이라고 쓴다. 금정역 근처에 전철역 이름 또는 동명으로 당정(堂井)이 있다. 아마도 옛날에 그 동네 우물 근처에 성황당(城隍堂)이나 신당(神堂)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산본이 속해 있는 시의 이름이 군포(軍浦)이다. 서울(한양) 밑에 있는 요충지라 군대가 주둔했으리라는 생각은 쉽게 하겠다. 그런데 지명에 마포(麻浦), 반포(盤浦), 영등포(永登浦)에 들어가는 포(浦)라는 말이 들어간다. 포(浦)란 강이나 내에 조수가 드나드는 곳이라고 사전에 뜻풀이가 나온다. 순우리말로 개라고 한다. 이 지역에 큰 내가 형성되어 있어서 한강으로 연결되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군포에는 요즘으로 치면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노량진(露梁津)이나 양화진(楊花津)같이 배를 대는 나루가 있었을 것이다. 양화진을 때로는 한자로 양화진(楊花鎭)이라고 써서 군이 주둔하고 있는 진지(陣地)임을 표시하고 있듯이 옛날에 군포에는 별동부대 같은 군부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도 이 부대는 후방에 있다가 유사시에 전격적으로 출동하여 적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몰랐던 상태에서 적을 섬멸하는 특공대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서울의 서부 요즘의 양화대교 근처에 가면 지하철 2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합정역(蛤井驛)이 있다. 조개, 큰 두꺼비, 개구리를 의미하는 합(蛤)과 우물 정(井)이 어우러진 단어이다. 아마도 옛날에 이 지역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서 두꺼비가 발견되지 않았을까 싶다. ‘합정역 5번 출구’라는 대중가요를 들어보면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원래의 합정(蛤井)을 합정(合情)으로 다르게 한자로 풀어쓰고 있다. 근처에 절두산 천주교 순교 성지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墓園)이 조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홍대 입구에 있는 젊은이의 거리가 이 지역으로 확장되어 새로운 시가지를 형성하고 공연장이나 카페가 많은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경기도 고양시에 화정(花井)이라는 지명이 있다. 아마도 어느 우물 근처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나 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나 매화, 벚꽃을 기대하는 건 사치일까? 그곳이 화정(花井)이 아니고 꽃이 있는 정자라는 뜻의 화정(花亭)이라도 좋다.

     

 필자가 지금 살고 있는 잠실에서 분당 쪽으로 가다 보면 문정(文井), 복정(福井) 등의 지명이 나온다. 분당 지역에서 북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가는 탄천(炭川)의 물이나 남한산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일부가 지하로 스며들어 우물을 형성하였을 터인데 우리 조상들이 그 이름을 아주 멋지게 지었다. 복정(福井)이란 말은 일본에서는 성씨로 많이 쓰이는데 ‘후쿠이’라고 읽는다. 문정(文井) 지역은 패션 산업을 일으켰는데 일명 로데오거리라고 부른다. 두 지역 사이에 장지(長指)라는 역(驛) 혹은 동(洞)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원래 장지(長池) 즉 ‘긴 연못’이 주위에 있었다고 추정되는데, 어느새 지명이 ‘큰 손가락’으로 바뀌었다. 이 일대에 건물을 많이 지어 법원 같은 관공서, 회사, 쇼핑몰 등이 들어섰다. 그중 장지동에 입주한 회사에서 차량 유지관리 업무를 하는 필자 연배의 고향 일가친척이 한 명 있어서 가끔 놀러 간다. 그 친구는 나이가 좀 있지만 아직 현직에 있다고 자랑하고 힘 있을 때까지 오래오래 다니겠다고 한다. 그에게서 오는 문자 메시지에 퇴근한다는 뜻으로 ‘장지도 나간다’라는 말에서 모든 받침을 빼고 보낸다. 그런 문자가 오면 본 친구들은 모두 키득키득 웃는다.

      

 한반도 중부의 고원지대인 철원에 가면 월정리역(月井里驛)이라는 경원선의 옛 철도역이 있다. 거기에도 우물이 있었나 보다. 물이 흐르는 것은 그 밑의 지질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어느 지점에서는 강이 북쪽으로 흐르고, 어디에서는 남쪽으로 흐른다. 어디에 우물을 파면 물이 잘 나오는데, 어디는 아무리 깊게 파도 물 구경 하기가 어렵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 저변의 현상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철학이나 사회학에서 구조주의(構造主義)라는 말로 연구하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구조주의는 사회적 또는 문화적 현상을 각각의 요소가 아닌, 심층적인 구조의 틀 속에서 파악하려고 하는 지적 경향이라고 한다. 인류학, 언어학, 심리학에서도 이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구조주의는 영어로 structuralism이라고 하며. 구조인류학(structural anthropology), 구조 언어학(structural linguistics), 구조 심리학(structural psychology) 등의 용어가 파생되었다. 이 이론에 심취하면 사회적인 현상 중 하나인 실업(unemployment)도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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