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水原市)는 경기도 중남부에 있는 특례시이자 경기도청 소재지다. 옛날에는 경기도청이 서울특별시 한복판에 있었으나 도청소재지가 경기도 땅에 있는 게 옳다는 논리로 1960년대에 수원으로 옮겨갔다. 그동안 서울에서 이주해 간 사람이나 기관, 공장 등이 많아져서 지금은 경기도가 우리나라 제1의 인구와 재정을 자랑하고 있다. 수원시 동쪽은 용인시 기흥구 및 수지구, 서쪽은 안산시 상록구와 화성시 봉담읍 및 매송면, 남쪽은 화성시 병점 및 동탄, 북쪽은 의왕시와 접하고 있다. 수원시에는 장안구, 권선구, 팔달구, 영통구의 4개 구(區)가 설치되어 있다. 수원시는 창원시, 용인시, 고양시와 함께 2022년부터 인구가 100만이 넘는 도시에 부여하는 특례시로 되었다. 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수원시의 인구가 약 120만 명으로 가장 많다.
예부터 우리나라를 조선팔도라고 부른다. 도(道)의 이름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역 내의 대표적인 도시 두 곳의 첫 글자를 따서 지었다. 예를 들어 강원도(江原道)는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에서 딴 것이다. 경기(京畿)는 서울을 뜻하는 '서울 경(京) 자(字)'와 수도의 주변 지역을 뜻하는 '경기 기(畿) 자(字)'를 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경기도(京畿道)는 서울을 빙 둘러 있는데 지금은 중앙의 서울특별시가 교통 등에 방해 요소이고 경기도 인구가 많아졌으니, 경기도를 북도와 남도로 나누자는 의견이 있다. 최근에 경기도 북부 행정구역을 기존 경기도와 분리하자는 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주민투표 등의 통과 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분리까지 실현되지는 않고 분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기록 정도로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경기도 북부인 파주 출신으로 미국 생활 약 6년을 제외하면 평생을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서 살았다. 이 중에서 제일 오래 산 곳이 경기도 군포시 산본 지역이다. 산본에 약 20년 살면서 수원시에 관심이 갔다. 왜 우리 조상들은 이 지방의 명칭을 수원(水原), 즉 물의 근원이라고 붙였을까? 나름대로 수원시와 그 인근 지역을 찾아가 보고 지도를 찾아 보고서 고개를 끄떡이게 되었고 우리 조상들의 혜안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원시 근방은 분지로 되어 있고 수원시는 모든 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곳이었다.
수원시 북쪽에 백운산과 광교산이 있어 높은 구릉 지역을 형성한다. 광교산 정상을 시루봉이라고 부르는데 높이가 582m로서 백운산, 바라산을 거쳐 한남정맥(漢南正脈)의 일부를 이루어 서울특별시 남쪽의 청계산과 이어진다. 광교산은 높이는 낮은 편이지만 넓이는 좀 넓은 편으로 바위가 거의 없이 흙으로 된 산이고, 능선엔 수목이 울창하다. 산의 능선이 완만한 편이라 이 산간으로 서울-용인고속도로가 뚫려 서울에서 수원 지역으로 가는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었다. 시루봉은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에 있으나, 행정구역상으로는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이다. 광교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의 등산로이다. 이 산간 지역에 떨어지는 비는 북쪽으로 흐르는데 여러 지천(支川)을 모아서 탄천, 양재천, 안양천을 이루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광교산 지역에서 동북쪽으로 떨어진 비는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한남정맥의 버들치고개에서 시작해 흐르는 성복천(聖福川), 정평천(亭坪川), 동막천(東幕川) 등이 법화산에서 발원하는 본류인 탄천(炭川)과 용인시 수지구(水枝區)에서 합수되면서 탄천의 유역(流域)을 형성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한강의 수계가 된다. 수지(水枝)는 일제 시절에 수진면(水眞面)과 지내면(枝內面)을 통합하면서 두 면의 명칭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라고 하지만, 한국식 한자로 물(水)의 가지(枝)라는 뜻이다. 탄천은 성남시 분당 지역을 지나 잠실벌로 흐른다. 도중에 수서(水西)라는 지명이 있는데 탄천의 서쪽에 있다는 뜻이리라.
수원 지역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물줄기 중에서 동서 방향으로 중간지점인 청계산 근처에는 양재천(良才川)이 흐르고 이 하천은 양재 지역과 개포동(開浦洞)을 통과해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기 직전에 탄천과 합류한다. 이보다 더 서쪽으로 흐르는 수원 지역의 북편 물줄기는 과천(果川) 등의 지류를 받아 안양천(安養川)으로 흘러서 목동 근처에서 한강의 본류로 들어간다. 옛 지명인 금천(衿川)이나 양천(陽川)은 이 유역의 지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의 서쪽에는 수리산이나 수암산이 떡 버티고 있어 물이 산본이나 안산 쪽으로 즉 서해 쪽으로 바로 흐를 수 없다. 서쪽으로 못 나간 물은 의왕시에 있는 왕송저수지 등에 모여 있다가 남쪽으로 흘러서 황구지천(黃口池川)을 이루어 안성과 평택 지역에서 흘러온 진위천(振威川)으로 들어간다. 진위천은 아산호(牙山湖)를 거쳐 당진(唐津) 지역에서 서해로 이어진다.
광교산 자락에 내린 빗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광교저수지로 들어간다. 광교저수지는 얼핏 보면 보통 저수지 같지만, 일대의 식수원으로 쓰이는 저수지인지라 관리를 상당히 까다롭게 한다. 광교산 그린벨트가 풀리지 않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이 저수지는 황구지천과 연결되어 있다. 광교저수지 건너편으로 저수지를 끼고도는 삼림욕 코스가 있어서 상당히 인기가 많다. 인근에 광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광교산에서 더 동편으로 남쪽으로 흘러내린 물은 옛날에 원천(遠川) 유원지라고 부르던 저수지인 지금의 광교호수 또는 신대호수로 들어갔다가 원천리천을 거쳐 수원천을 만나고 황구지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원천(遠川)이라는 이름이 원천(源泉)이 아닐까라고 한때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일대는 재개발되어 광교신도시가 되었고 경기도청이 이 지역에 새로 자리 잡았다. 원천 유원지의 옛 모습은 다 없어지고 지금은 이 일대에 '광교호수공원'이 조성되고 깨끗한 고층 아파트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 지역보다 더 동편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물길은 기흥 근처의 신갈저수지에 모였다가 신갈천을 거쳐 동탄을 지나 오산천(烏山川)으로 들어가서 진위천을 만나게 된다.
이 지역의 동편에는 오늘날에 용인시가 있는데, 이 지역의 물줄기는 경안천(慶安川)을 이루어 계속 동쪽으로 흘러 경기도 광주(廣州) 지역을 통과하고 남한강에 합류하여 팔당호로 들어간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이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이고 일명 '두물머리'라고도 부른다. 경안천은 북한강과 남한강에 비해 팔당호로 유입되는 수량이 두 거대 하천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지만, 수도권 상수원인 팔당호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덕분에 경안천 근처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상당히 개발 제한이 걸려있다.
광교산 남서쪽 외곽에는 칠보산이 있어 낮은 구릉지를 이룬다. 시가지에 가까이 있는 칠보산은 수원시 권선구, 화성시 매송면, 안산시 상록구에 걸쳐 있는 높이 약 240m의 야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 수탉, 호랑이, 사찰, 장사, 금의 8가지 보물이 있어 팔보산(八寶山)으로 불리다가, 황금 수탉이 없어져서 칠보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 칠보산을 넘어가면 어천저수지가 있는 화성시 매송면이 나온다.
수원시의 중심부와 동남 지역은 평택, 안성으로 이어지는 너른 평야가 형성되어서, 여러 도시의 시가지 형성 및 수도권 근교의 농산, 원예 등에 도움이 되고 있다. 수원시 시가지 중앙에는 해발 143m의 팔달산이 있어 수원화성 성곽이 둘러 있으며 문화재가 곳곳에 있다.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팔달문(남문), 화서문(서문), 창룡문(동문), 장안문(북문) 등의 4개의 누문(樓門), 작약으로 유명한 화령전, 7개의 수문이 있는 화홍문, 방화수류정, 정조가 군사를 지휘했었던 지휘통제실인 서장대, 군사 훈련장인 연무대, 조선시대 통신수단이었던 봉수대인 봉돈(烽墩) 등이 있다. 장안공원과 팔달공원 등 두 곳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정조의 임시처소였던 화성행궁이 있다.
화성행궁은 1789년 정조 13년 수원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한 행궁(行宮)이다.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1794년에서 1796년에 걸쳐 진행된 화성 축성 기간에 화성행궁을 확대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정조는 부친인 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현재의 융릉)을 여러 차례 참배하였으며, 이 기간에는 화성행궁에서 유숙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600여 칸으로 정궁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으며, 정조가 모친 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궁이기도 하다.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인해 사라져 버렸지만, 1980년대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 사업을 펼친 결과 복원이 완료되어 2003년 일반에게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수원은 갈비와 통닭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수원에 수원 화성을 축조한 정조는 수원이 자립 도시로 기능할 수 있도록 군량을 충당하기 위해 요지에 설치한 땅인 둔전(屯田)을 경영했다. 농민들에게 종자와 소를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끔 했다. 수확기가 되면 수확의 절반을 거둬들이고, 소는 3년에 한 마리씩 갚게 했다. 이후 소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거래 장소가 필요해지자 수원 화성 안팎에 우시장이 하나둘 생겨났다. 수원에서 장이 열리는 날 우시장에는 소 장수와 농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게 됐는데, 이 시기부터 수원은 소 도축량의 증가로 자연스럽게 한우 갈비가 수원의 식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수원과 화성 지역에서 나는 한우 암소 갈비로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서 내는 양념갈비로 유명하며, 갈비의 길이가 4인치나 되어 흔히 수원 왕갈비라고 불린다.
수원 지역은 경기도 남부의 교통중심지로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가 분기 내지 합류하고 있다. 수원은 서울의 외곽에 있어서 동서남북 사면이 모두 고속도로 또는 고속화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그 도로는 용인서울고속도로(동), 봉담-과천로(서), 영동고속도로(남),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북)이다. 경부고속도로는 수원시 근방인 용인시 기흥구를 지난다. 국도 제1호선, 제42호선, 제43호선, 지방도 제309호선이 수원을 통과한다. 수원과 인천광역시 송도역을 연결하는 수인선은 협궤철도로 1937년에 개통되었으나, 경제성이 낮아 1995년 선로가 철거되었으며, 2009년 오이도-인천 구간이 재개통되었다. 2020년부터 한대앞역-수원역 구간이 개통되어 분당선과 수인선을 바로 연결하여 운행하고 있다. 2010년부터 수원역에서 경부고속철도 KTX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는 양재역을 지나는 신분당선, 탄천을 따라가는 수인분당선,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 길을 따라가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수원을 지나고 있으며, 향후 인덕원-동탄 복선전철, 수원 도시철도 1호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C노선, 신분당선 호매실 연장분이 착공 및 개통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