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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Jun 04. 2024

F1. 초기의 반도체 연구

 반도체라고 부르는 재료에 관한 연구의 역사는 1세기 이상 된다. 초기 연구의 대부분은 오늘날의 지식으로 볼 때 상당히 어려운 여건하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재료의 순도가 오늘날의 기준에 비하여 형편없이 떨어졌기 때문에, 명료한 실험 결과를 얻기가 곤란하였다. 초기에 반도체라고 알려졌던 몇 가지 재료는 지금은 금속이나 이온 전도성 결정 곧 세라믹으로 판명되었고, 지금 반도체로 분류되는 재료가 초기에는 금속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의 수완과 노력 덕분으로 반도체 물질을 분류해 내고 그것의 전기적 및 물리적 성질을 설명하는 이론을 모색해 왔다.

     

 반도체(semiconductor)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기 통하기가 도체(conductor)와 부도체(insulator)의 중간 정도에 있는 재료를 말한다. 도체에 해당하는 영어 conductor는 오케스트라(orchestra)나 합창단의 지휘자를 의미할 때도 쓴다. 서로 다른 악기나 음성을 잘 조화시켜 좋은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휘자의 본분일 터이다. 지휘자는 악보를 미리 보고 연주할 곡을 해석하여 자기의 지휘로 인하여 연주자들의 의도가 종합적으로 청중에게 전달되도록 한다. 영어 conductor의 다른 뜻으로 지금은 흔하지 않은 자리이지만 기차의 ‘차장’이나 ‘여객전무’를 의미한다. 여객전무는 탑승한 손님들의 쾌적한 여행을 위하여 기차표를 검사하고, 음식물을 공급하고, 여객의 요구사항을 파악해 둔다. 세미(semi-)는 절반(half), 혹은 중간을 의미한다. 독일말로 반도체를 Halbleiter라고 한다. 반인반수(半人半獸)를 영어로 half-demon이나 half-devil이라고 칭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세미는 데미(demi)와 뜻이 같은 접두어인데 일상생활에서 데미 소다(demisoda)라는 음료 이름에서 볼 수 있다. 부도체는 절연체라고도 하는데,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재료를 말한다.

     

 재료가 전기를 얼마나 잘 통하는가의 척도는 대표적으로 비저항(resistivity) 값으로 나타낸다. 재료의 저항값은 독일의 과학자 이름을 따서 옴(Ω)으로 나타내지만, 이는 시편의 크기에 의존하므로 재료 고유의 성질을 비저항 값으로 나타내는데 그 단위는 옴•센티미터(Ω•cm)이다. 비저항이 증가하면 전기 전도도(electrical conductivity)는 역으로 감소한다. 전도도는 비저항의 역수이므로 그 단위는 옴•센티미터 분의 1 즉 (Ω•cm)-1이다. 이 전도도의 단위를 독일의 전기 엔지니어인 지멘스(Werner von Siemens, 1816~1892)의 이름을 따서 S/cm로 나타내기도 한다. S = (Ω)-1, 즉 1 지멘스는 1 옴의 역수이다.

     

 용융점 근처의 온도 범위 이외에서 반도체는 금속인 도체보다 상당히 큰 비저항 값을 갖고 있고, 반도체는 부도체보다 아주 적은 비저항 값을 보인다. 고체에 있어서 비저항 값의 분포 범위는 상당히 넓다. 금속 도체의 경우 상온에서 비저항 값은 대략 10의 6승분의 1(10-6) 옴•센티미터 이하이다. 반도체는 상온에서 10의 3승분의 1(10-3)에서 10의 6승(106) 옴•센티미터의 값을 갖는다. 물론 반도체가 아닌 재료인데도 비저항 값이 이 범위에 드는 고체도 많다. 한편 훌륭한 부도체는 그 비저항 값이 대략 10의 12승(1012) 옴•센티미터이다. 10의 6승(106) 옴•센티미터의 비저항 값을 갖고 있는 부도체가 있는가 하면 10의 8승(108) 옴•센티미터 비저항의 반도체도 있다. 따라서 ‘반도체는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이라는 표현이나 ‘도체도 아니고 부도체도 아닌 재료가 반도체’라는 개념은 일부 맞기는 하나 적절한 정의는 아니다.

     

 반도체 재료를 도체인 금속과 구별하는 데에 최초로 사용된 기준은 온도가 증가할수록 비저항이 대략 감소한다는 사실이었다. 즉 반도체의 비저항 값은 음(-)의 온도 의존성을 보인다. 금속의 경우는 반대로 온도가 증가할수록 비저항 값이 증가하는 양(+)의 온도 의존성을 보인다. 이 현상을 1883년 처음 보고한 사람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이었고 실험 대상 재료는 AgS였다. 이 기준은 지금의 물리학적 지식으로 볼 때 맞는 이야기이지만 적절하지는 않다. 불순물이 많이 함유된 반도체의 경우 어느 온도 범위에서는 온도의 증가에 따라 비저항이 증가하기도 한다. 물론 그 온도 범위를 넘어서면 그 반도체의 비저항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또한 어떤 금속은 박막이나 다결정 형태에서 그 비저항 값이 음(-)의 온도 의존성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금속 표면의 산화막이나 결정 계면의 작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오늘날 이해되고 있으나 초기에는 이런 실험 결과를 보인 티타늄(Ti)과 지르코늄(Zr)을 반도체로 인식되도록 유도하였다. 이렇게 몇 가지 예외는 있으나 순수한 반도체는 비저항 값이 음의 온도 의존성을 보인다고 이야기해도 오류가 없다.

     

 패러데이의 관찰 이후 40여 년 동안 반도체 부류의 도체들이 광전압 효과(photovoltaic effect)를 보이거나 열기전력(thermoelectric power)이 높다는 발견이 보고되긴 했지만, 반도체 연구에 큰 진전은 없었다. 1870년대에 와서야 큰 진보가 이루어졌다. 일부 재료에 빛을 쪼이면 전기 전도도가 증가하는 광전효과(photoconductivity effect)가 셀레늄(Se)을 대상으로 1873년에 보고되었다. 1874년에는 브라운(Karl F. Braun, 1850~1918)이 방연광(PbS)과 철광석(Fe)의 접점에서 교류 전류의 정류작용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 뒤에 다른 금속 황화물, 금속산화물, 원소 등에서 이런 효과가 관찰되었다.

      

 재료의 전도(conduction)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전하(電荷, charge)의 개념을 도입하면 편하다. 전하 운반자(charge carrier)라고 불리는 전기를 짐처럼 지고 다니는 입자를 생각한다. 전자(電子)가 대표적인 음전하 운반자이고 양전하 운반자를 정공(正孔, hole)이라고 부른다. 전자를 잃어버리거나 외부에서 전자를 얻은 원자의 덩어리를 이온(ion)이라고 부르는데 양전하 운반자도 있고 음전하 운반자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캐리어란 말을 쓰거나 듣고 있다. 여행 갈 때 짐을 쑤셔 넣는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캐리어라고 하고 항공모함(航空母艦)이 영어로 aircraft carrier이다. 항공모함은 날개 달린 전투기 백여 대와 수만 명의 병력을 싣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움직이는 비행장으로서 국력이 있어야 운용할 수 있는 전투 무기이다. 이 분야에서 미국이 단연 우위를 보인다. 미 해군은 모든 선박에 분류 기호를 붙이는데, 항공모함에는 CV라는 기호가 사용된다. 예를 들어 CV-67은 항공모함 ‘존 F. 케네디 호’의 식별 부호이고, CVN-80은 새로 나온 핵 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의 분류 기호이다. CV가 Cruiser Voler의 두문자(頭文字)라는 설도 있으나 필자는 Carrier Vehicle의 약자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초기의 반도체 물성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1879년 홀 효과(Hall effect)의 발견이다. 이는 자기장 하에서 전하를 운반하는 도체에 수직으로 전압이 유도된다는 현상인데, 전자의 존재가 밝혀지지 않은 당시에 반도체의 성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홀 효과 실험을 통하여 단위 체적 당의 전하 운반체의 개수를 계산할 수 있고, 반도체를 금속 도체와 구별할 수 있다. 아울러 홀 전압의 분석으로 전기전도가 이온에 의한 것인지 다른 전하 운반체에 의한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어 산화물과 같은 이온성 결정 화합물이 반도체의 분류에서 제외되었다. 이온에 의한 전도의 경우 홀 효과는 아주 미미하다.

     

 재료에서 전자에 의한 전도도는 두 가지 요인에 의존한다. 즉 단위 체적 당 전하 운반체의 숫자와 전하 이동도(carrier mobility)이다. 여기서 이동도는 재료 내에서 전하가 움직이는 용이도라고 볼 수 있다. 반도체나 금속이나 고체에서 전하 이동도는 온도가 올라갈수록 감소한다. 온도가 올라가면 원자들의 운동이 왕성해져서 전하가 원자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홀 효과를 측정하면 단위 체적 당 전하의 숫자가 온도 변화와 무관하게 일정하다. 이로써 금속에서는 온도 증가에 따라 전하 이동도 즉 전도도가 감소한다. 반도체에 있어서는 온도의 증가에 따라 단위 체적 당 전하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전도도도 증가한다. 이로써 금속과 순수한 반도체와의 구별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순수한’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반도체에 불순물이 많아지면 그 차이점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홀 효과를 이용한 반도체의 체계적인 연구는 1907년경에 이르러서이다. 연구의 결과 반도체 내의 전하 운반체의 숫자는 금속의 그것보다 아주 작고 이동도는 조금 크다는 점이 밝혀졌다. 실리콘(Si), 셀레늄(Se), 텔레륨(Te) 등의 원소가 반도체로 분류되었다. 게르마늄(Ge)은 이보다 훨씬 뒤인 1925년에 반도체임이 밝혀졌다. 홀 효과의 측정에서 유도되는 홀 전압의 부호에 대해서 중요한 발견이 있었다. 보통 금속에서 음(-)의 홀 전압이 관찰되었고 반도체의 경우는 음(-)과 양(+)이 모두 관찰되었다. 오늘날 반도체를 p형(+)과 n형(-)으로 나누어 부르는 이유이다. 어떤 재료는 측정 온도가 증가함에 따라 부호가 양에서 음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어떤 금속의 경우는 양의 홀 전압이 관찰된다. 이런 실험 결과들이 모두 수수께끼로 남았다가 뒤에 양자물리의 출현으로 이론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반도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화합물을 화학의 관점에서 연구한 와그너(Carl Wagner, 1901~1977)는 1930년대에 금속산화물과 금속 황화물을 대상으로 반도체를 ‘결손(deficiency)’과 ‘과잉(excess)’의 두 가지로 분류하였다. ‘결손’ 반도체는 정상적인 화합물의 조성보다 금속의 함량이 적은 경우를 의미하는데, 저온에서 홀 전압이 양의 값을 나타내고 가끔 고온에서 음의 값을 보이기도 한다. ‘과잉’ 반도체는 금속 함량이 정량보다 많은 경우를 말하는데, 모든 온도 영역에서 음의 홀 전압을 보인다. 이것은 오늘날 반도체를 p형(+)과 n형(-)으로 나누어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와그너의 연구가 이온성 결정에 대한 것이고, 음양 이온의 불균일에 기인하여 두 종류의 반도체로 나타나지만, 그의 연구 결과는 GaAs 등 화합물 반도체에서 정량 조성에서의 원소 함량의 편기(偏嗜)에 따라 전기전도의 성질이 좌우된다는 이론의 고전이 되었다.

     

 초기 반도체 연구에서 대부분의 불확실성은 재료 내부(bulk)에서 일어나는 현상(성질)과 재료의 표면이나 다른 재료와의 접촉 계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성질)을 구별하지 못한 데에서도 일어났다. 분쇄했다가 소결한 시료에서는 계면 효과를 많이 유발(誘發)시켜서 재료 내부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재료의 비저항 값이 온도에 음의 의존성을 보인다는 성질은 벌크 효과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재료의 정류작용은 표면 또는 계면 효과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재료의 광전효과에 관해서 많은 혼돈이 있었다. 고순도의 단결정을 준비할 수 있음으로써 내부 효과와 표면 효과를 구별할 수 있었고, 반도체의 표면 특성, 두 반도체 간의 계면 특성, 반도체와 금속 간의 계면 특성에 관한 이해가 더욱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특히 실리콘(Si), 게르마늄(Ge) 등의 원소로 된 반도체의 단결정 성장이 이루어진 뒤에 더욱 눈부시게 이들 재료의 특성에 관한 연구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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