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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Feb 02. 2023

A25. 레이저

빛의 증폭

레이저(LASER)라는 말은 ‘복사의 유도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란 말의 영어 약자이다. 레이저는 단일 파장(혹은 주파수)의 빛이 모여 보강간섭으로 증폭된 가시광선의 다발이다. 최근에 레이저는 가시광선 영역뿐만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 영역에서도 개발되어 통신이나 의료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입자론적으로 말하면 동일 에너지를 갖는 광자들이 뭉쳐 있는 덩어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사의 유도방출’이란 개념이다. 앞에서 우리는 원자들에 속해 있는 전자들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으면 바닥상태에서 들뜬상태로 전이되어 아주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온다고 하였다. 상태의 전이 전후에 두 상태의 에너지 차이만큼의 에너지가 빛(복사)으로 바뀌어 외부로 방출된다. 보통은 전자가 들뜬상태에 머무는 시간이 1억 분의 1초 정도인데 1천 분의 1초 혹은 그 이상의 수명을 갖는 들뜬상태가 하나 이상 더 존재하면 레이저 현상이 발현한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긴 수명을 갖는 상태를 준안정상태(metastable state)라고 한다.

     

원자에서 두 에너지 준위 사이에 빛이 관여하는 경우는 세 종류가 가능하다. 하나는 원자가 처음 낮은 상태에 있다가, 에너지가 hν인 광자를 흡수해서 들뜬상태로 올라가는 경우로 이 과정을 유도흡수(induced absorption)라고 한다. 원자는 높은 에너지 상태에 있다가 에너지가 hν인 광자를 방출하고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질 수 있는데 이를 자발방출(spontaneous emission)이라 한다. 세 번째 가능한 방법은 유도방출(stimulated emission)로서 1917년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이는 에너지가 hν인 광자에 의해 상태의 전이가 유도(자극)되는 방출이다. 입사하는 광자의 자극을 받아서 동일 에너지의 광자가 ‘건드리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봉선화 씨’처럼 한꺼번에 여러 원자로부터 쏟아져 나온다. 유도방출에서 방출되는 빛은 입사하는 빛과 그 위상이 완전히 일치하는데, 이렇게 터져 나온 광파들은 서로 결이 맞고, 그 결과 빛의 보강간섭, 즉 증폭이 일어나게 된다.

      

할아버지 손자 

함께 노는 놀이터     

할아버지, 손자 발에 맞추어

하나, 둘, 셋.

손자, 할아버지와 같이

하나, 둘, 셋.

- 권영주(1939~ ), 동시 <발맞추어 둥 둥 둥(2012)>

     

위 동시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발을 맞추어, ‘하나, 둘, 셋’ 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걷는 모습이 닮고 보폭도 비슷한가 보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걸어가는 속도도 같은가 보다. 군대에서 열병식 때, 수많은 병사가 대오를 이루어 단상 앞을 지나갈 때 발이 척척 맞는다. 착~착~착~, 발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서 걷는 법을 병사들에게 훈련하는 데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야 병사들 간에 호흡이 맞고 단결된 힘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모두 발이 맞는다는 말을 영어로 표현하면, all in step이다. 이처럼 레이저를 이루는 광선의 파동들이 모두 발이 맞아야 레이저가 성립된다. 레이저 빛은 각 파동의 파장(주파수)이 같은 단색광(monochromatic light)이다. 레이저는 하나의 파장을 갖는 빛의 다발로 되어 있다. 레이저 빛의 파동들은 모두 서로 위상이 맞는다(all in phase). 파동들이 모두 발이 맞는다는 말이다. 전문적인 말로 레이저는 결이 맞다(coherent)고 표현한다.

     

이런 레이저는 몇 가지 놀랄만한 특징을 지닌 광선 빔을 발생시킨다. 레이저 빛은 거의 퍼지지 않는다. 지구에서 쏜 레이저 빛이 달에 있는 거울에서 반사되어 되돌아와도 별로 퍼지지 않는다고 확인되었다. 보통의 빛다발들은 공간을 헤엄쳐 갈 때 옆으로 번져서 한참을 가면 빛이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를 빛의 분산 현상이라고 말한다. 또한 레이저 빛은 어떤 다른 광원에서 발생한 빛보다 그 세기가 월등히 세다. 레이저는 에너지가 축적되어 출력이 높으면 고온을 얻을 수 있어 금속의 용융이나 용접 등에 쓰인다. 레이저 출력(power)이 낮으면 세미나 발표 때 쓰이는 포인터나 디스플레이 등에 레이저 불빛으로 응용할 수 있다. 레이저의 출력이 0.1 mW 이상이면 눈에 해롭다고 본다.

     

가장 간단한 레이저로 3 준위 레이저(three-level laser)를 들 수 있다. 이는 바닥상태로부터 빛의 에너지만큼 높은 에너지를 갖는 준안정상태와 그보다 더 높은 들뜬상태가 존재하는 원자들의 덩어리를 이용한다. 원자들의 집합체에 가시광선을 쪼이면 원자들은 들뜬상태가 된다. 들뜬상태에 있는 원자들은 1억 분의 1초 후에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내려오는데, 준안정상태에서는 더 긴 시간 예를 들어 천 분의 1초 동안 머물러 있다가 바닥상태로 되돌아온다. 많은 원자에서 이러한 상태의 전이가 일어나게 되면 바닥상태에 있는 원자들보다 준안정상태에 있는 원자들의 숫자가 더 많아지는데, 이런 현상을 밀도 반전(population inversion)이라고 한다. 이러한 밀도 반전이 조성된 상황에서 원자 덩어리에 주파수가 ν인 빛을 쪼이면 바닥상태 원자로부터의 유도흡수보다 준안정상태 원자로부터 유도(자극) 방출이 더 많이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처음의 빛이 증폭되어 레이저가 발생하게 된다. 빛을 쪼여 밀도 반전을 이루는 것을 광 펌핑(optical pumping)이라고 한다. 진공 상태를 만들어 지하에서 물을 퍼 올리는 펌프처럼, 빛으로 바닥상태의 원자를 들뜬상태를 거쳐 원하는 준안정상태로 끌어올린다는 의미이다. 광 펌핑을 위한 에너지는 보통 외부 전원으로부터 공급된다. 

                        

루비 레이저와 해당 에너지 준위

레이저로써 최초로 실용화에 성공한 루비 레이저(ruby laser)는 위 그림에서 보이듯이 +3가(價) 크롬(Cr) 이온의 세 가지 다른 에너지 준위를 이용한다. 루비의 주성분은 알루미늄 산화물인 알루미나(Al2O3)로 광물 사파이어와 같다. 이미 보석의 색깔에 관해서 앞글 ‘21. 사파이어’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같은 물질로 된 광물인데 루비는 붉은색이고 사파이어는 청색이다. 한편 알루미나 결정은 에너지 밴드 갭(energy band gap)이 가시광선과 자외선 경계의 에너지값인 3.1 eV보다 크므로 빛이 비취어도 ‘소 닭 보듯’ 한다. 그래서 순수한 알루미나는 투명하게 보인다. 루비는 알루미나(Al2O3) 결정에서 +3가 Al 이온 일부가 +3가 Cr 이온 불순물로 교체된 것이다. 이 이온 때문에 붉은색을 띠는데, 이런 불순물을 컬러 센터(color center)라고 부른다.     

위 그림에서 보면 +3가 Cr 이온은 바닥상태를 기준으로 에너지가 2.25eV 높은 들뜬상태를 갖고 있고, 또한 에너지가 1.79eV 높은 또 다른 들뜬상태를 갖고 있는데 나중의 상태는 준안정상태이다. 준안정상태에 머무는 시간은 약 0.003초이다. 알루미나(Al2O3)에 적절하게 Cr2O3 성분을 넣고 용융시켜 단결정으로 성장시킨 루비 막대(ruby rod)에 제논(Xenon) 섬광 램프를 쪼이면, +3가 Cr 이온들이 높은 에너지 준위(2.25eV)로 여기(勵起, excitation)되고 이들은 결정 내의 다른 이온들에 에너지를 잃으면서 준안정 준위(1.79eV)로 떨어진다. 몇몇 +3가 Cr 이온들로부터 자발방출에 의해 나온 광자들은 표면이 거울처럼 연마된 루비 막대의 양 끝에서 반사되며 왔다 갔다 하면서 다른 +3가 Cr 이온들을 자극하여 빛을 방출한다. 수 마이크로초가 지나면 단색광이고 결맞는 상태의 붉은색의 센 펄스가 어느 정도 투명하게 만든 막대의 한쪽 끝으로부터 나온다. 루비 봉은 그 길이가 나오는 빛의 반 파장의 정수배에 해당하도록 미리 정확하게 연마하여 준비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막대 안에 갇힌 광파는 정상파(standing wave)를 이룬다. 유도방출은 정상파에 의해 유도되므로 유도되는 광파는 모두 이 정상파와 보조를 맞추게 되고 빛의 증폭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상점의 계산대 앞에서 흔히 접하는 레이저로 헬륨-네온 기체 레이저(He-Ne gas laser)가 있다. 헬륨과 네온을 10 : 1 정도로 혼합하여 수백 분의 1기압 수준의 낮은 압력 상태의 유리관에 넣는다. 유리관의 양 끝에 평행한 거울이 달려 있는데 그중 한쪽 거울은 약간 투명하다. 두 거울 사이의 거리는 나오는 레이저 빛의 반 파장의 정수배가 되도록 한다. 고주파 교류 전원에 연결된 유리관 밖에 있는 전극에 의해 혼합 기체에 전기방전이 일어난다. 방전으로 생긴 전자와의 충돌로 헬륨(He) 및 네온(Ne) 원자들은 바닥상태로부터 에너지가 각각 20.61eV와 20.66eV 위에 있는 준안정상태로 여기(excitation)가 된다. 여기 된 He 원자 중 일부는 바닥상태의 Ne 원자와 충돌하여 자신의 에너지를 Ne 원자에 전달한다. 이때 Ne 원자가 준안정상태에 이르는 데 부족한 0.05eV의 에너지는 He 원자의 운동에너지로부터 보충된다. 즉 He 원자는 Ne 원자의 밀도반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Ne 원자에서의 레이저 현상은 바닥상태에서 에너지가 20.66eV 높은 준안정상태로부터 에너지 준위 18.70eV의 들뜬상태로의 전이에서 발생하는데, 두 에너지의 차이에 해당하는 빛은 632.8nm의 파장을 갖는 붉은색이다. 루비 레이저에서는 섬광 램프에 의해 펄스처럼 높은 에너지 상태로의 여기가 일어나지만, He-Ne 레이저에서는 전자에 의한 충돌로 여기가 쉼 없이 일어나므로 He-Ne 레이저는 연속적으로 작동한다. He-Ne 레이저에서 전체 원자들의 백만분의 1 정도의 극히 일부분의 원자들만 레이저 과정에 관여한다. He-Ne 레이저는 상점의 POS(point of sale) 기계에서 바코드를 읽는 데 사용되는데, 좁은 붉은색 빔을 바코드에 쏘면 반사되는 빛에 바코드 정보가 실려서 되돌아오고 그 신호로부터 정보를 해석해 컴퓨터로 보내면 그날 산 물건 전체에 대한 계산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연구자들은 레이저 현상을 갖는 물질계(material system)를 열심히 찾고 있다. 레이저 현상은 고체, 액체, 기체 모두에서 발견되고 있다. 어떤 계에서는 원자 대신에 분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화학 레이저(chemical laser)는 준안정 들뜬상태에서 분자들의 화학반응으로 생긴 생성물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수소와 불소가 결합하여 불화수소를 만드는 어떤 화학 레이저는 2MW 이상의 적외선 빔을 만든다. 에너지 준위 간격이 매우 좁은 색소 분자를 사용하는 주파수 가변 색소 레이저(tunable dye laser)는 거의 연속적인 파장으로 ‘레이저 발진’을 할 수 있다. 유리질 고체인 yttrium aluminium garnet(YAG) 결정에 네오디뮴(neodymium)이 불순물로 들어있는 Nd: YAG 레이저는 실험실이나 산업 현장에서 물체의 절단 등에 활용된다. 또한 Nd: YAG 레이저는 생체조직을 자를 때 레이저 빔이 지나가는 통로에 있는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작은 혈관들을 막아주기 때문에 외과 수술에 도움이 된다. 출력이 몇 kW 이상인 CO2 레이저는 산업체에서 재료를 정확하게 절단 또는 용접하는 데 사용된다. 반도체 레이저는 대용량의 정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고 전달하는 데 좋다고 판단되는데 최근에 반도체 메모리 용량의 획기적인 증가로 대부분의 기기에서 CD(compact disc) 사용이 죽어버린 실정이다. 반도체 레이저는 광섬유통신의 전송선로에 이상적으로 판단되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무선통신 기술의 발달로 반도체 레이저의 활용 분야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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