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모든 건 정해진 거였어.
Just let me love you.
넌 내 푸른곰팡이,
날 구원해 준
나의 천사, 나의 세상.
- 박지민(1995~ ), Serendipity(일부)
위 노랫말은 방탄소년단(BTS) 중 한 명인 지민이 부른 세렌디피티(2018)의 일부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발견, 의도하지 않은 발견, 운 좋게 발견한 것’을 뜻한다. 영국 작가 월폴(Horace Walpole, 1717~1797)이 쓴 ‘The Three Princes of Serendip’이라는 우화에 근거하여 만든 말로 스리랑카(Sri Lanka)의 옛 이름인 Serendip 왕국의 세 왕자가 섬을 떠나서 세상을 겪으면서 뜻밖의 발견을 한다는 데서 착안하였다고 한다.
요즘에 세렌디피티는 과학적 방법론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 사례로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에 의한 페니실린 발견을 들 수 있다. 세균을 배양하다 보면 곰팡이가 피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그 실험은 실패하고 곰팡이가 핀 배양기는 버리게 된다. 그러나 꼼꼼한 플레밍은 배양기를 자세히 살펴보고 푸른곰팡이가 핀 주변에 세균이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푸른곰팡이에 있는 페니실린이란 물질이 세균을 죽인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덕분에 수많은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고 귀한 생명을 구하게 된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추출과 정제기술을 개발한 두 명의 후배와 함께 노벨 의학상을 1945년에 수상하였다. 푸른곰팡이(Penicillium)가 무슨 빛깔일까? 녹색(green)일까? 청색(blue)일까? 궁금하여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녹색 계통이었다. 자신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사탕이 눅눅해지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원인을 찾아 전자레인지를 발명한 레이시온(Raytheon) 회사의 레이다 연구원의 사례도 대표적인 세렌디피티로 꼽힌다.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 1959~ )이다. 그는 과학 분석기기를 제작하는 시마즈제작소에 근무하는 연구원으로 도호쿠대학 전기공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뜬금없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 유일한 학사 출신이라고 한다. 본인은 대학 졸업 후에 도쿄(東京) 근처에 있는 큰 전자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으나 잘 안 되어 1983년 교토(京都)에 있는 시마즈제작소에 입사한 후 주임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1985년 연성 레이저 이탈(Soft Laser Desorption) 기법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은 단백질 같은 거대 분자의 질량을 측정하는 방법인데 당시에는 단백질과 같은 거대 분자는 레이저를 쬐면 결합구조가 파괴되어 분자 개개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이에 다나카는 코발트 나노입자와 글리세롤의 혼합물 상에서는 레이저를 쪼아도 단백질이 파괴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해 단백질의 질량분석이 가능케 했다. 단백질 분석 기계를 개발하고 팔아야 하는 업무 속성상 수행한 일이지만 생체를 분석하기 위해서 금속 입자를 섞는 일은 당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으로 일종의 세렌디피티라고 본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발표하는 논문에 그가 개발한 방법을 다나카 방법이라고 인용하면서 사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 공로로 젊은 나이에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그보다 조금 이른 2000년도 노벨 화학상은 금속처럼 전기가 잘 통하는 전도성 고분자(플라스틱)를 발명한 공로로 일본인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1936~ )에게 돌아갔다. 그가 도쿄공업대학 조교수로 재직하던 1970년대 초반 유기고분자 합성실험을 하던 중 연구에 참여한 한 연구원이 실수로 금속 원소를 1,000배 더 첨가한 것이 원인이 되어 돌연 은색의 광택을 내는 박막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이 박막이 금속적 특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양의 두 이론가와 공동연구에 들어가서 그 원리를 설명하게 되었는데, 그 공로로 두 학자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 연구원이 지도교수의 지시를 잘못 해석하여 실시한 엉뚱한 실험이 전도성 폴리머 발견의 실마리가 되었다. 지금도 일반인들은 플라스틱을 부도체로 인식하고 있다. 오늘날 전도성 고분자 기술은 OLED 디스플레이 제조에 적용되고 있다.
세렌디피티 정신은 과학적인 발견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현상은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 다음은 커피에 관한 이야기로 약간은 필자의 상상력이 들어가 있다. 커피가 처음으로 발견된 곳은 북부 아프리카 고원지대, 지금의 에티오피아 산악지방이라고 알려져 있다. 산악지대에서 목동들이 기르던 양들이 어느 지역을 갔다가 오면 눈에 생기가 돌고 활력이 넘침을 발견하였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니 그 지역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양들이 따 먹었기 때문이라고 알게 되었고 목동들도 그 열매를 따 먹어보니 몸에 활력이 생김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이 그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되어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서 보관하고 상용(常用)하게 되었다. 커피의 어원은 아랍어인 카파(Caffa)로서 힘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그 지방에 수도원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젊은 수도사들이 커피나무 열매를 자루에 넣어 숨겨 두고 틈틈이 먹었다. 수도원장이 보니 수도사들이 잘 먹지도 못하는데 정신이 맑고 힘이 있어 보이는 게 수상하여 따져보니 모두 커피 열매를 꼬불쳐 두고 있었다. 수도원장이 그것은 악마의 열매라고 하며 커피 열매를 모두 수거하여 수도원 앞마당에 모아놓고 불태우도록 했다. 그때 커피 열매를 태우면 냄새가 구수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커피는 원두를 말려서 볶아 먹어야 제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른바 커피 로스팅(roasting) 기술의 발견이었다. 생두(green bean)에 열을 가하여 볶는 로스팅 기술은 온도, 시간, 속도 등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는데, 전문가들은 볶음 정도에 따라 맛과 향미의 변화를 몇 단계로 세분화한다.
세월이 더 흘러 유럽이 인류 역사의 중심이 되면서 커피가 유럽에 유입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사람과 대화할 때 뜨거운 물에 커피 가루를 설탕과 섞어 타 먹어야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당연히 커피의 수요가 늘어나고 관련 사업이 큰 이익을 가져왔다.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공급되는 물량에 한계가 있자 당시 대항해시대에 들어서면서 자본가와 상인들이 커피나무가 잘 자라는 식민지 지역으로 나무를 이전하여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플랜테이션(plantation)인데 차, 사탕수수, 후추 등도 주요 대상 품목이었다. 지금 파악되기로는 세계적으로 커피가 생산되는 곳은 남위 25°부터 북위 25° 사이의 열대, 아열대 지역으로 커피 벨트(Coffee Belt) 또는 커피 존(Coffee Zone)이라고 부른다. 중남미의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자메이카 등에서 중급 이상의 아라비카 커피(Arabica Coffee)가 생산되고 중동. 아프리카인 에티오피아, 예멘, 탄자니아, 케냐 등은 커피의 원산지로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나라보다 커피 산업이 뒤처지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인 인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는 대부분 로부스타 커피(Robusta Coffee)가 생산되고 있는데, 소량의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하여 최상급의 커피로 인정받는 품목도 있다. 세계 3대 커피는 자메이카의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 하와이의 코나(Kona), 예멘의 모카(Mocha)이다.
각 대륙에 조성된 커피 농장에서는 커피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었는데 커피의 재배와 수확을 위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그 노동력을 현지인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담당하였고, 유럽의 농장주들은 옛날 우리나라에 있었던 마름 역할을 하는 관리인을 두어 플랜테이션을 운영하였다. 농장 관리인은 농장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는데, 노동자들은 힘든 일을 하면서 커피 열매를 호주머니에 넣어 집에 가져가서 복용하며 육체노동의 어려움을 이겨내었다. 이로써 농장 소출에 구멍이 나게 됨을 감지한 농장주와 관리인은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가져가려는 커피 열매를 몰수하였다. 이미 커피에 인이 박인 노동자들이 농장에 있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 커피 열매가 섞여 있음을 발견하고 거기서 주운 열매를 씻어서 끓여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었다. 이렇게 해서 루왁 커피가 발견되었다. 이렇게 시장에 나간 커피가 시장에서 인기가 높고 가격이 높게 되자, 이제 농장에서는 사향고양이를 기르는 시설을 설치하고 다량으로 사육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금 베트남에 여행을 가면 관광상품 판매처에서 별도로 루왁 커피를 팔고 있다. 서울 도심의 유명 커피점에서는 루왁 커피 브랜드는 돈을 더 내야 마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커피의 양은 세계에서 손꼽는 수준이 되었다. 옛날식 다방은 없어지고 브랜드명을 앞세운 전문 커피점이 거리마다 생겨났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밤에 숙면에 지장이 있음을 알지만, 낮에 사람을 만나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 커피점에 가면 메뉴에 여러 가지 외래어가 눈에 띄는데, 제일 싸고 앞에 나와 있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다음에 에스프레소(espresso)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커피 메뉴가 나온다. 메뉴명에 라테(latte)가 붙는 경우, 라테(Latte)는 우유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은 것을 말한다. 마키아토(macchiato)는 이탈리아어로 '얼룩진'의 뜻으로 우유를 아주 조금만 넣거나, 우유 거품만을 얹는 커피를 말하며, 프라페(frappe)는 영어로 셰이크(shake)와 같은 뜻으로 얼음을 갈아 섞는 커피를 말한다. 카푸치노(cappuccino)는 가톨릭 수도단체에서 쓰던 희고 긴 모자의 형태에서 유래한 것으로 에스프레소에 풍부한 우유 거품을 얹은 것을 뜻한다. 특히 카푸치노는 우유의 흰 빛깔과 에스프레소의 갈색 색 대비를 통해 하트와 나뭇잎 등을 표현하는 라테아트가 가능한 메뉴이다.
이밖에 미국의 햄버거나 스테이크 음식집에 있는 프렌치 프라이즈(French fries)도 세렌디피티의 산물이라는 얘기가 있다. 원래는 음식점에서 감자를 통째로 구워서 고기와 같이 내놓는 메뉴였는데, 한 요리사가 고약한 손님을 골탕 먹이려고 감자를 썰어서 튀겨 내놓았는데, 그 음식이 손님들의 인기를 끌면서 정식 메뉴가 되었고, 상업적으로 봉지에 든 과자 등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세렌디피티는 위대한 과학의 발견이나 인류 문화의 진전에 큰 역할을 해 왔지만, 각 개인의 정신세계나 일상생활에서도 큰 길잡이가 되어 왔다. 자연현상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평생을 훈련받아 왔고, 그 지식을 우리 생활과 문명에 유익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공학 교육을 받아 온 필자가 은퇴하고 몇 년을 보내면서 느낀 소회가 본인이 더 늦기 전에 평생의 생각을 글로 써 놓는 게 유익하겠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한두 달 사이에 책 세 권 분량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된 글을 주위의 지인들에게 돌려 읽게 해서 반응을 보았다. 인문학적 배경을 갖는 친지들은 과학과 기술에 관한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글이 어렵다는 반응이 왔다. 이과적인 소양이 있는 친구들은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어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필자는 책으로 지식을 습득한 세대이므로 본인의 글을 책으로 출간하고 싶었다. 요즘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추세여서 책 출간이 적정하겠느냐는 이야기가 주위에서 나왔다. 그래도 자기의 글에 자존심은 있어서 몇 군데 유명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 봤으나 출간해 주겠다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면서 알아보니 독립출판이라는 게 있다고 알게 되었고, 1인 출판사를 창업하여 본인의 글을 직접 출간해 보겠다고 판단하였다. 본 글의 내용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으로 그 지식이 먹고사는 데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현대를 사는 데에 과학 지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으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 글을 썼다. 어줍게 문학 등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곁들인 이유는 필자의 과거 회상과 관련이 있고, 글을 너무 어렵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나왔다고 독자분들이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