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회절 현상
물결파에서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수면의 높이이고, 음파에서는 공기의 압력이다. 전자기파에서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주기적으로 변한다. 그럼 물질파에서는 이같이 변하는 것이 무엇인가? 물질파의 경우 변하는 양을 파동함수(wave function)라 하며 기호 Ψ(사이)로 나타낸다. Ψ(x, y, z, t)는 공간의 한 점(x, y, z)에서 시간 t일 때의 파동함수로서,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그 물체를 발견할 가능성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파동함수만으로는 아무런 물리적 의미는 없다. 확률밀도(probability density)로 알려진 파동함수의 절댓값의 제곱인 Ψ2는 물리적 의미가 있다. 즉 공간의 한 점(x, y, z)에서 시간 t일 때 파동함수 Ψ로 기술되는 물체를 실험적으로 발견할 확률은 그 시간, 그 장소에서의 Ψ2 값에 비례한다. 1926년에 물리학자 보른(Max Born, 1882~1970)이 처음으로 이렇게 해석하였다. 그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나치(Nazi) 시대가 시작되는 1933년에 독일을 떠나 영국 국민이 되었고, 케임브리지대학(Cambridge University), 에든버러대학(Edinburg University) 등에 몸담았다가, 1953년 퇴임하고 말년에 독일로 돌아와서 사망하였다.
보른의 외손녀가 미성과 미모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가수 올리비아 뉴튼존(Olivia Newton-John, 1948~2022)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장하고 세계적인 가수로 활동하다가 미국에서 죽은 그녀의 대표적인 노래 ‘Physical’이 생각난다. 1981년에 이 노래를 발표해서 빌보드 핫 100 역사상 두 번째로 10주 연속 1위를 했으며 이 노래 이후 10여 년 동안 10주 이상 1위를 한 노래가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외할아버지인 보른은 물리학(Physics) 분야에서 물체(body)의 미세한 영역인 입자(particle)에 관한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웠는데 그의 외손녀인 올리비아는 노래 ‘Physical’에서 당신의 몸(body)이 내는 이야기를 들어보자고(Let me hear your body talk, your body talk) 노래하였다. 영어로 physics는 물리학이라고 번역한다. 우리말로 체육은 영어로 physical education 혹은 physical culture로 번역한다. Physical society는 물리학회이다. Physician은 내과 의사이고, physicist는 물리학자이다. 우리말로 무언가 장소나 시간상 불가능하면 ‘물리적으로 안 된다’라고 말한다.
양자역학이 정립되는 초창기에 파동함수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은 철학적인 논의가 있었다.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 이론에 대해서 아버지 브래그(William Henry Bragg, 1862~1942)와 함께 결정의 X선 회절 연구로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탄 아들 브래그(William Lawrence Bragg, 1890~1970)는 조금 느슨하긴 해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물체(입자)와 복사(전자기파)의 파동성과 입자성을 구분하는 것은 순간인 지금이다. 이 순간이 시간을 꿰뚫고 꾸준히 나아감에 따라 파동적인 미래가 입자적인 과거로 굳어진다. 미래의 모든 게 파동이고, 과거의 모든 게 입자이다.’ 한편 실존주의의 선구자인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oren A. Kierkegaard, 1813~1855)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여 현대물리학의 한 단면을 앞서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뒤로만 이해될 수 있으나, 앞으로 향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뉴턴(Issac Newton, 1642~1727)의 고전 물리에서 취급하는 입자와 파동의 문제에서 입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특성이 바로 회절 현상이다. 고전 물리에서 회절은 파동 고유의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한편 미세세계에서는 입자도 회절 현상을 보임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입자 회절(particle diffraction) 현상이라고 부른다. 1927년에 미국의 데이비슨(Clinton J. Davisson, 1881~1958)과 저머(Lester H. Germer, 1896~1971), 그리고 독립적으로 영국의 톰슨(George P. Thomson, 1892~1975)은 ‘고속의 전자 선속이 결정(結晶)의 규칙적인 원자 배열로 산란되어 회절 된다’는 실험 결과를 얻음으로써 물질파의 존재를 예견한 드브로이 가설을 확인하였다. 세 사람은 이 업적으로 193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톰슨의 아버지 톰슨(Joseph J. Thomson, 1856~1940)은 1897년 전자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전자의 입자성을 입증하는 업적으로 19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로써 전자가 파동-입자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일이 톰슨 가문의 일처럼 되었다. 전자가 입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파동의 성질도 갖고 있다. 이는 대단한 발견이다. 전자(electron)가 파동의 성질을 보인다는 의미에서 전자파(electron wave)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는 광파(light wave)에 대해 광자(photon)라는 표현이 있는 것과 대칭적이다.
전자현미경의 기본 원리는 고속으로 가속되어 움직이는 전자의 파동성을 이용한 것이며, 1932년에 처음으로 전자현미경이 네덜란드의 필립스에서 제작되었다. 모든 광학기구의 분해능(resolution)은 회절 현상에 의해 제한되며 시료를 비추는 데 사용되는 빛의 파장에 비례한다. 가시광선을 사용하는 보통의 좋은 광학현미경으로 사용 가능한 최대 배율은 약 500배이다. 배율을 크게 하면 상은 크게 보이지만 더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즉 분해능에 한계가 있다. 고속의 전자는 가시광선보다 훨씬 더 파장이 작아서 배율이 높다. 전자는 전하를 띠고 있어서 전기장과 자기장을 이용해서 집속(集束)을 통해 상(image)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X선의 파장이 더 짧으나, 충분할 정도로 X선을 한 지점에 모으기가 아직은 불가능하여 X선 현미경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전자현미경은 전류가 흐르는 코일이 만드는 자기장이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하여 전자 선속을 시료에 집속(focus) 시키고 형광판이나 사진 건판 위에 확대된 영상을 만든다. 선속이 산란되어 상이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시료를 박막의 형태로 사용하며 장치 전체는 모두 진공 속에 장착되어 있다. 이런 원리의 전자현미경을 투과전자현미경(transmission electron microscope, TEM)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형태의 전자현미경으로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e, SEM)이 있다. 주사전자현미경은 고속의 전자선(電子線)이 시료의 표면 위를 주사(scanning)할 때 시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신호 중 이차전자(secondary electron) 또는 반사전자(back scattered electron)를 검출하여 이미지 신호처리를 하면 대상 시료의 표면의 모습을 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주사전자현미경은 응용 분야로 볼 때 광학현미경 용도의 영역에 포함된다. 주사전자현미경은 가격 면에서 투과전자현미경보다 월등히 저렴하여 학교나 산업 현장에 많이 보급되어 있다. 주사전자현미경은 광학현미경과 비교하여 초점 심도(depth of focus)가 2배 이상 깊고, 또한 광범위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어 입체적인 상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주사전자현미경에서는 이들 신호를 분석하여 시료 표면의 성분 분석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광학현미경보다도 더 유용하게 연구실이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된다. 물론 이러한 분석 기능을 갖추려면 비용이 추가된다. 관찰하려는 시료의 두께, 크기 및 준비에 크게 제한을 받지 않지만, 간혹 원활한 표면 사진을 얻기 위하여 도전체인 금이나 탄소를 코팅하기도 한다. 시료를 SEM 장비 안에 장착한 뒤에는 관찰하려는 공간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투과전자현미경에서는 고에너지를 갖는 전자선(電子線)이 자석으로 된 렌즈 계(system)를 거쳐 시료를 통과하여 형광판에 상을 맺게 한다. 따라서 그 시료는 관찰에 사용될 수 있도록 극히 얇아야 한다. 투과전자현미경 관찰용 시료를 박막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technic)과 장비가 필요하다. 투과전자현미경으로는 시료의 밀도, 두께 등의 차이에 의한 명암(phase contrast) 상(像)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시료에 도달하는 전자선을 회절 시켜 회절상을 얻을 수 있으므로 시료의 성분 분석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투과전자현미경은 주사전자현미경보다 그 구조가 복잡하고 운용이 쉽지 않은 점, 가격이 비싼 점 등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응용에 있어서 투과전자현미경은 금속, 세라믹, 반도체, 고분자 합성체 등의 재료 분야의 조직 관찰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투과전자현미경으로 의학, 생물 분야의 바이오 시료의 조직 관찰도 가능하지만, 물론 이 경우 살아 있는 채로 시료를 관찰할 수는 없다.
조금 다른 원리를 이용한 전자현미경으로, 주사터널링현미경(scanning tunnelling microscope, STM)이 있다. 전자는 거시적인 일상에서는 불가능한 퍼텐셜 장벽을 투과할 수 있는 양자 터널링 효과를 보이는데 이를 응용하여 현미경을 만들었다. STM은 1981년 스위스에 있는 민간기업인 IBM 연구소의 비니히(Gerd Binnig, 1947~ )와 로러(Heinrich Rohrer, 1933~2013)에 의해 발명되었다. 이 두 사람은 1933년 투과전자현미경을 발명한 독일의 루스카(Ernst Ruska, 1906~1988)와 함께 198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루스카는 한 세대 전 사람이었는데, 장수하여 노벨상을 타는 영광을 누렸다. STM에서는 아주 예리한 금속 탐침(probe)을 도체나 반도체 물질의 표면으로 가까이 가져간다. 보통은 표면 원자에 아주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는 전자들조차도 표면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수 eV의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탐침과 시료 표면과의 간격이 수 nm 이하로 작아지면 단지 몇십 mV 정도의 전압(즉 수십 meV의 에너지)만 걸려도 전자가 작은 장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탐침을 시료 표면을 가로질러 조밀한 간격으로 앞뒤로 스캐닝하여 측정된 투과전류를 신호처리 하면 시료 표면의 형상이 지도처럼 화면에 만들어진다. 이런 원리를 이용하여 그 뒤 원자힘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 AFM)이 발명되었다. AFM은 부도체 물질의 표면도 관찰할 수 있는데, 탐침 끝에 가해지는 압력을 일정하게 하고 시료 표면을 스캐닝하여 탐침의 휘어짐을 기록한다. 이 기록은 탐침의 전자와 시료 표면 원자 사이의 밀어내기 힘의 등고선 기록이다. AFM은 분해능 면에서 STM보다 떨어지지만, 생물학적 시료의 표면도 검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