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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 행복하고 싶어

by 온규

각자의 힘든 시절 불행을 극복하고 끝내 행복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찾아봤다. 사기를 당해 무거운 빚을 지고 하루에 4시간씩만 자며 버텨 빚을 다 갚고 혼자 집에서 김치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 30이 넘은 나이까지 작은 방 안에 갇혀 살다 계약직 경리로 일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며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 평생을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왔지만 내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 내일을 기대하는 행복에 사는 사람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야기를 찾아보니 행복은 주관적이면서 짓궂은 놈이었다. 행복하기 위해 불행을 먼저 경험해야 했고 불행의 끝까지 내려갔다 찾아온 행복도 조금은 사소하게 보일 것들이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와 인테리어 창업을 해서 일을 시작한 나이는 25이었다. 또래 남자들처럼 군대도 경험했고 사랑에도 실패해 봤지만 창업을 하기에 제일 중요한 사회 경험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끊임없이 찾아오기만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급급했다.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몇 달을 준비했고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창업 후 오랜 기간 금전적인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버티기만 했던 출근을 반복하다 보니 운 좋게 우리를 믿고 일을 맡겨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뉴스를 통해 자주 보도 될 정도로 인테리어 업계에 많은 사기 사례가 있을 만큼 신뢰가 중요한 업인데 나이가 어리고 어리숙해 보이는 우리를 믿어준 사람들을 위해 내 몸이 상해 가는 걸 외면하며 첫 공사의 설렘과 열정이 가져온 피로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최선을 다했다.


주말 없이 매일을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을 반복하며 일해도 현장으로 출근할 수 있다는 설렘이 더 많은 날들이었지만 포트폴리오 욕심에 업계 평균보다 낮은 마진으로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몸이 힘든 만큼의 수익은 창출할 수 없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같은 진부하지만 반드시 믿고 싶은 말들을 머릿속으로 되뇌고

"우리도 처음에는 손해 보며 공사 진행하고 대한민국 안 가본 곳이 없어"

지금은 지역에서 유명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 중인 선배의 조언을 들으며 버티다 보니 수익 정산 하는 날이 다가왔다.

쉬지 않고 일한 만큼 한 달 월급을 놓고 보면 회사에 취업한 친구들 보다는 제법 많은 돈을 벌었지만 창업 초기 수익이 없던 시절의 고통을 알기 때문인지 다음 달에 불안함 때문인지 치킨을 시켜 먹고 싶어 배달 어플을 켜봤지만 장바구니에 담긴 메뉴를 바라보다 끝끝내 주문 버튼은 누르지 못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너를 위해 이거 하나 못 먹어?' 하고 생각했지만 주문을 망설인 순간부터 좋아하는 걸 시켜 먹어도 전혀 기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루도 안 쉬고 일했는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키지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 말할 수 없는 현실은 무겁고 피곤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은 사소한 것들인데 나한테는 사소한 행복도 어울리지 않는구나'

평생을 낮은 자존감으로 살면서 가족들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괜찮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렸던 벽에 구멍이 생겨버렸다.

"괜찮음"의 벽에 구멍이 생기고도 마음껏 고장 날 수 없는 나를 위로할 시간은 없고 돌아올 출근을 위해 억지로 눈을 감으니 행복하고 싶어졌다.


'행복하고 싶다' 누구나 행복을 갈증하고 1차원적인 감정이지만 잊고 살았던 행복에 감정에 매달리기 시작한 건 배달 음식을 고르고 주문을 망설인 순간이었다.


행복했던 순간은 분명 있었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내게 위로가 되는 따뜻함들과 함께했던 매일은 '이 날을 위해 내가 살아왔구나' 느끼게 했다. 분명 긴 시간이었지만 찰나로 느껴지는 행복은 생각보다 쉽게 끝이 났고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이 행복이구나' 생각하는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행복하고 싶어서 하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의 인생을 훔쳐보는 행동도 노력으로 행복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동도 나를 윗 계단으로 올려주는 게 아니라 밑에 계단으로 내려 보냈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더 밑으로 가라앉혀 숨을 조이는 것처럼 노력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내 행동들이 나를 더 가라앉혔지만 불행을 알기에 사소하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일단 불행해 보기로 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의 끝이 어딘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 와 행복을 말해야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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