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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었다

첫사랑, 짝사랑의 그녀

by 북곰

나의 첫사랑이자 지금도 슬픈 짝사랑의 그녀를 만난 건 중학교 2학년때였다. 나는 어머니의 무한 애정의 보살핌을 받아 또래보다 키도 머리 하나 크고, 볼도 빵빵한 뚱뚱한 아이였다. 어렸을 때 뚱뚱한 아이들은 힘으로 아이들을 제압하지 않는다면, 놀림감의 대상이 된다. 나는 힘이 무척 셌지만 후자였다.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학교를 가면 아무나 이유 없이 내 머릴치거나, 수업시간에 샤프나 날카로운 연필 도구로 등을 찌르고, 교과서에 머리카락, 손톱, 지우개 똥을 집어넣는 등 참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괴롭혔다. 이런 생활에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귀는 건, '사치'고 소위 잘난 친구들만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갑자기 일어났다. 과학실 맨 좌측, 내가 앉은 조에서 누구와도 섞이지 못한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오른쪽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세상은 무채색이고, 회색만이 있을 뿐이다. 한데 갑자기 하얀빛이 보였다. 하얀 얼굴에 흑단 긴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있는 그녀였다. '어' '날 보고 있는 건가...' 뒤를,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용기를 내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역시 날 보고 있었다. 내가 두리번, 두리번거리는 중에도 무채색의 세상에서 하얀 얼굴은 계속 날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는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는 내가... 처음으로 하얀 얼굴의 눈부심을 봤다. 시간은 한참을 지났고, 영원의 심상 속에서, 해바라기가 태양을 쫓듯이 계속 계속 쳐다만 봤다.





그날저녁 할머니를 따라 시골 초가집을 갔다. 할머니가 해주신 저녁을 먹고 tv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울퉁불퉁한 구들장에서 전구다마를 끈 후 잠을 청했다. 매일 9시가 되기 전 무조건 자는 나였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꾸 그녀가, 그녀가 생각이 났다. 나는 어떤 것도 하지 않고 그녀를 볼 뿐이었다. 계속 계속 밤이 새도록 그녀를 봤다. 그게 나의 첫사랑이자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짝사랑의 그녀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내가 얼마나 많은 밤을 그녀를 생각했는지 모를 것이다. 그래도 좋다. 어디선가 그녀가 잘 살고 있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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