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봤던 퍼레이드에 깊은 감동을 받은 상태라 이번에는 우리도 제대로 좋은 자리에 앉아서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미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맡기 시작했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퍼레이드가 시작하려면 아직 1시간도 넘게 남았는데 벌써 자리를 맡는다고!' 계속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고, 내려가고, 내려가다 보니 카니발 광장까지 가게 되었다. 광장도 이미 앞열은 사람들이 다 앉아있었고, 나는 뒤쪽 계단에 위치하였다. 계단 쪽에 돗자리를 펴고 가방 등을 두고 남은 시간이 많으니 범퍼카를 타러 가기로 했다.
"와~사람들이 놀이기구보다는 퍼레이드를 볼려고 하는구만"
"당연하죠.... 놀이기구는 다른 곳에서도 탈 수 있지만 퍼레이드는 여기 에버랜드만 볼 수 있어요!"
아내와 이야기를 하던 중 드디어 범퍼카에 도착했다. 한데, 범퍼카 대기줄이 너무 길었다.
"아니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우리 범퍼카 타고 퍼레이드 볼 수 있을까?"
"00아 범퍼카 꼭 타고 싶어?"
"이모 괜찮아~ 나 배고파."
'배가 고프다.'는 조카의 말에 또 범퍼카 대기줄을 벗어나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여러 마리 하이에나'처럼 여기저기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녔다. 솜사탕 파는 곳이 보여서 레인보우솜사탕을 사줬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줄을 서야 하는 것 때문에 아내랑 나랑 서로 헤어져 먹을 것을 사자고 했다. 나는 조카랑 함께 마실 음료와 프리챌을 구매하러 갔고, 아내는 츄러스를 구매했다. 내가 아내보다 더 빨리 구매해서 조카와 함께 카니발 광장으로 갔다.
카니발 광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분명 1시간 전에는 낮이었고, 사람도 없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깜깜한 곳에서 북쩍이는게 낯선 느낌이었다. 돗자리를 깔았던 계단으로 가니, 어떤 아줌마 2명이 아이들과 함께 우리 돗자리 바로 앞쪽 계단에 자리를 맡고, 앉는 것이었다. 앉는 것은 좋은데 우리가 계단에 앉아서 다리를 둬야하는곳까지 침범해 버렸다.
"저기, 아주머니 돗자리를 그렇게 펼치면 저희가 어떻게 계단에 앉나요? 돗자리 좀 아래로 가져가 펼쳐주세요."라고 내가 정중하게 부탁을 했는데, 사납게 생긴 아줌마가 "다들 이렇게 펼쳐서 앉아 있어요."라며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아줌마의 짜증 섞인 말에 '무섭다.'라는 생각을 하며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보게 자네가 빨리 와줘야겠네. 우리 앞에 아줌마가 있는데 그 사람이 우리 자리 점유해 버렸어....",
"응? 무슨 소리야? 그럼 자리 빼달라고 얘기하면 되잖아!"
"내가 얘기했는데 말을 안 듣는구만...."
"뭐야! 알았어 내가 얼른 갈께"
"엉 빨리 와줘...." 다급히 아내에게 s.o.s. 를 치고 나는 조카와 함께 아내를 기다렸다. 이윽고 아내가 도착하고 한번 스윽 현장을 쳐다보더니 아줌마 1명에게
"저희 통로 왔다 갔다 하는데 돗자리가 방해되네요. 아래로 조금 내려가주세요."라고 한번 이야기하니
"네 알겠습니다." 하며 즉시 돗자리를 밑으로 뺐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헐.... 이 친구가 등치가 좋으니 아줌마들이 찍소리도 못하는군'
"뭐야! 말씀 잘 들어주는데 뭐가 문제야?"
아내는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보며 이야기하는데 나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있다가,
"자네가 최고네~"라고 엄지 척을 했다. 하여간 이런 궂은일에는 아내가 최고다.
(여기 독자분에게만 몰래 이야기하는데 내가 집에서 아내를 부르는 별명은 "연인 장비"다. 삼국지에 그 유명한 '장비'가 맞다. 예전 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아님),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면 아내가 고리눈을 부릅뜬 채 양팔을 사모 마냥 뻗쳐 들고 문을 가로막았다. "내가 연인(燕人) 장비다. 네 이놈!! 나를 비켜 지나가봐라~"라고 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데, "으억~!" 그 소리에 놀라 쓰러졌다. 간신히 일어나 아내를 피해 밖으로 나가려고 하나 장판파의 장비의 힘에 눌려 몇 번이고 내동댕이 당했다. "그 누구도 여기를 지나갈 수 없다~!!" 쩌렁쩌렁 호통치며 나를 내려보는데 그 위세등등함에 숨이 막혔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서 당황스럽지만.... 이 슬픈 기억이 떠올랐다. 아, 지금은 담배를 안 피우고 있고(멈추고 있다),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아, 조금은 아니 많이 많이 다행이다.)
흥겨운 음악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와 저기 봐요~!"
조카의 소리에 왼쪽 끝자락을 봤는데,
"와~!"
감탄사가 그냥 터져 나왔다. 낮에 봤던 퍼레이드도 분명 좋았지만 깜깜한 밤.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둘러싸인 퍼레이드는 차원이 달랐다. 빛이 반사되고, 새로이 생성되는 광경은 가뜩이나 난시가 있는 나에게, 굴절된 찬란한 빛 무리가 '어서 빨리 너의 죄를 고하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빛나는 곳에 아이가 아닌 사람은 있을 수 없나니. 간신히 작은 눈을 비비며 아내와 조카와 함께 "와~!"라는 감탄사만 외치고, 손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큰 마차와 탱크, 우주전사, 바닷속 인어공주, 화산 등 어렸을 때 꿈꿨던 상상이 지나가고 여운에 잠겼을 때 사람들이 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움직이는 것을 봤다. 여운에 잠긴 나에게 바삐 움직이는 저들의 모습이 바쁜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여기까지 왔으면 잠시라도 여운을 가져야지.... 뭣이 급하다고 저렇게 바삐 움직일까.... 참으로 가엽구나.... 끌끌',
"자네 우리는 천천히 정리하면서 갑시다." 아내와 조카를 보며 이야기했다.
스카이웨이를 타고 올라가려고 갔는데, 앞에 서 있던 직원이 "9시에 시작되는 불꽃놀이 분진 낙하로 인해 현 시간부로 스카이웨이를 운영하지 않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응? 뭐 때문에 운영하지 않는다고"
"오빠 불꽃놀이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저기 불꽃놀이 하는가요?" 직원에게 물어보니
"네 지금부터 10분 후 불꽃놀이를 합니다."
"아뿔싸~ 아까 그 사람들이 달려간 게 불꽃놀이 자리 맡으려고 그런 건가!"
"오빠 사람들이 막 달려요~"
"일단 달려~~!"
열심히 달리려고 하였으나 뚱뚱 가족은 바로 "헥헥",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며,
"헉헉~그.... 그냥 불꽃놀이 보지 말고 갑시다...."
"헥헥~그래요. 그냥 올라가용"
그러고 위로 올라가던 중에 갑자기 하늘이 대낮같이 환해지고,
"펑! 퍼퍼퍼퍼버엉! 퍼! 펑펑펑!"
큰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의 꽃이 밤하늘에 화려한 수를 놓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불꽃의 모습에 넑을 잃고 말았다.
"오빠앙 더 잘 보이는 자리로 가요~"
"고고고!"
힘든 것도 잃어버리고 조금이라도 인파가 없는 곳으로 갔다. 나와 아내와 조카는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 사이에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화려하게 펴졌다가, 아름답게 떨어지고 사라지는, 밤하늘의 찰나의 그림은 내 기억 속에 아련하게 오랫동안 자리 잡을 것이다.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불꽃을 보다 문득 내 옆에서 밤하늘만을 쳐다보는 아내와 조카를 봤다. 맘 속 깊은 곳에서 가슴을 살짝 아련하게 만드는 느낌이 좋았다. '행복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화려했던 축제는 어느덧 끝나게 됐다. '이제 갈까!'라는 말 없이도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움직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 보다도 더 빨리 집에 도착했다. 늦은 밤인데도 설렘과 흥분으로 쉬이 지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허기를 느끼고 돌아가면 '24시간 국밥집 가자'고 신나게 떠들었다. 조카는 '씻고 쉬고 싶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조카의 의견을 존중하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나는 바로 24시간 운영하는 국밥집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국밥집에서 아내는 김치콩나물국밥을 시키고, 나는 그냥 콩나물국밥을 시켰다. 그리고 막걸리 1병을 추가했다. 탁자 위 조그마한 2개의 항아리에는 깍두기와 김치가 있었다. 국밥 보다 먼저 나온 막걸리를 '휙휙' 잘 돌리고, 잔에 한잔 가득히 따랗다. 막걸리의 텁텁하고 알싸하며 달짝지근한 맛에 식감이 살아있는 깍두기는 좋은 안주다. 막걸리 한 모금에 깍두기를 '서걱'베어 물며 잠깐이나마 '무릉도원'을 꿈꿨다. 오징어젓이 조그마한 종지에 나왔는데 막걸리 안주로는 정말 최고였다. 아주 작게 썰린 오징어젓의 탱탱한 식감과 젓갈의 짠, 단맛은 막걸리 한 모금이 아닌 한잔을 가득히 붓게 했다. 국밥보다 막걸리에 배가 더 불렀던 듯싶다. 지장수국물에 날달걀을 넣어 국밥을 먹었다. 뜨겁지만 시원하고 담백한 콩나물 국물에 막걸리 1잔이 들어갔다. 시원하고 담백한 콩나물 국물은 막걸리를 부르기 마련이다. 막걸리 1병을 다 비우고, 아내 몫의 막걸리마저 비워도 배속 깊은 술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딱 한 병만 더 합시다.", "오빠 그만 마셔요~" 아내의 소리에 "그래...."힘없이 답했다. '그래 조금 아쉬워야 더 좋지....' 남은 콩나물 국밥에 깍두기 국물을 넣어서도 먹었다. 마지막에 그릇을 들어 남은 콩나물 국밥마저 알뜰하게 비웠을 때, '단원 김흥도'의 주막에서 국밥 먹는 사람 그림이 떠올랐다. '내가 딱 그 그림의 국밥 먹는 사람이구나'를 생각하고 미소 지었던 것 같다. 국밥을 다 먹고 아내와 함께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됐던 에버랜드 일정은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