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경주여행을 가다.
"오빠앙 왜 나만 계획 짜고 그러는거에용. 오빠는 여행에 관심 없어요?"
"아니 나도 관심 많지. 요즘 너무 바빠서 그래~그리고 봐봐. 여기 2박 3일 여행계획도 찾았잖아~"
찰나의 순간! 블로그에서 찾은 2박 3일 경주여행을 집사람 카톡으로 보냈다. 일이 많다고 이해해 줄 친구가 아니기에 생사를 오가는 심정으로 찾은 블로그가 잠시나마 나의 수명을 연장시켜 줬다. 7.17.~19. 까지 2박 3일 경주로 여행을 가는, 다른 여행과 다를 게 없는데 조카와 집사람 언니가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더 신경 써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예민한 뚱땡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7월 16일 날 퇴근 후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출근하기 전 아파트 환기를 위해 베란다 문을 살짝 열었는데 퇴근 후 빗물이 고여 조그마한 웅덩이가 되었다.
'내일 여행 갈 수 있을까? 걱정되네, 아냐 내일은 괜찮을꺼야....'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나의 운에 맡기기로 했다.
여억시! 나는 운이 없는 친구인 것 같다. 다음날 비가 엄청 쏟아졌다. 이미 예약해 놓은 리조트를 취소할 수 없고 휴가 날짜도 다 맞췄고 이래저래 취소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아내, 아내 언니와 조카를 데리고 경주로 향했다. 이천, 여주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것 같다. 1~2시간 전 폭포수 같던 비는 없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가 개인 아침 날씨'라 먼지 없고, 살짝 차갑지만 깨끗한 공기, 기분마저 상쾌했다.
"껄껄 우리 정말 좋은 날씨에 여행 가는구만"
"맞아용 다들 호우 주의보라고 사람들도 없을 거고 완전 쾌적한 여행을 갈 수 있겠어요"
아내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여행 날짜를 잘 잡았다.', '설렌다.', '자네 훌륭하네' 등등 자화자찬을 했다. 신난 기분은 30분을 넘지 못했다. 우리 부부가 작년 여행에서 만난 태풍 힌남노로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 아찔했던 순간을 상기시키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어억! 이게 뭐야.... 아우~힌남노다."
"아니 우리는 왜 여행만 가면 이렇게 재난을 만나냐고!"
아내 언니가 있고, 조카가 있는데도 전혀 생각 못하고 푸념만 할 뿐이었다. 쏟아지는 폭우로 시야는 보이지도 않고, 내가 갈아 껴서 그런지 쉴 새 없이 '끼이익' 비명을 지르며 움직이는 와이퍼는 최악이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정말 거북이 마냥 천천히 움직였다. 비상 깜빡이를 켜지 않는 차량이 있는 경우 가까운 거리에서도 식별이 힘들었다.
"비상 깜빡이 안키는 넘은 사람새끼가 아니네.... 안 보이는구먼.... 아우 저 쉬불넘들!"
나는 직접적인 욕설을 싫어해 매번 순화해서 '쉬불넘들'이라 말한다. 폭우로 인해 시야도 없고, 다들 저속 주행으로 가는데 개념 없는 차량이 칼치기를 하고 가는 것이었다. 순간 분노가 터져 "그래 먼저 가라 이 쉬불넘아! 한 10년 먼저 가면 좋겠다!" 기도를 했다. 충남을 지나가는 어느 지점에서는 어디서 만든 물폭탄인지 모르겠지만 3~5초간 유리창이 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린 시절 아장아장 걷던 순간과 최근 업무 때문에 힘든 일까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긴 영겁 같던 시간! 숨조차 쉬지 못했다.
"헉헉~자네 봤나! 우리 죽을 뻔했네.... 아무것도 안보였어. 잠깐 내 삶을 회고했네!"
"차가 물에 풍덩 빠진 줄 알았어요. 더 조심히 천천히 가요~"
그렇게 8시간을 넘게 운전을 해서 드디어 경주 한화 리조트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숙소는 깔끔하고 좋았다. 우리가 머물게 될 객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줘서 방 2개, 화장실 2개, 거실, 주방, 베란다를 사용할 수 있었다.
'누가 이 폭우를 뚫고 여행 올 사람이 있을까?' 생각을 했지만 한화리조트에 매우 감사했다. 한화리조트 숙소에 가지고 온 짐을 풀고 바로 저녁을 먹고 경주 여행 1일 차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긴 시간 팽팽한 긴장감으로 피곤하고 힘들고 괴로움도 있었지만 아내와 조카 그리고 아내 언니에게 점수를 받고 싶은 맘뿐이었다. '아 남자의 서글픔이여~!' 감성은 뒤로 한채 경주여행 첫 시작을 저녁으로 시작했다. 메뉴는 어디 가나 성공할 수 있고 특히, 조카가 좋아하는 '돼지양념갈비'다.
"오빠앙 여기 00 갈비로 가요~! 리뷰도 많고 맛있을 것 같아용"
아내가 알려준 장소를 네비로 찍고 갔다. 첨성대 근처 황리단길에 있는 '00 갈비'였다. 00 갈빗집은 특히 방문자 리뷰가 많았다.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우산을 쓰고 00 갈비로 들어갔다. 00 갈비 겉모습은 한옥집 형태였고, 무척 전통 있는 맛집처럼 보였다. '호우주의보 발령' 상태고,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인지 들어간 넓은 식당에 손님은 한가족과, 우리 가족뿐이었다. 사람들이 올린 댓글에 큰 기대를 품고 '육회비빔밥, 물갈비,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동남아 여성분들이 서빙을 봐줬고 말이 잘 안 통했지만 의미 전달은 되니까 문제는 없었다. 다만, '여기 사장님 돈 많이 벌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사장님은 한국분이 맞을 것 같고, 식당 인테리어 등 분위기도 괜찮았다. 하지만 중요한 음식의 맛이 별로였다. 나는 예전부터 알바만 운영하는 여러 가게를 봤는데 그런 가게는 결국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맛이 없는데 왜 이렇게 리뷰가 많은 거야?' 가게를 찾은 아내에게 차마 말을 못 하고 의문만 가졌는데, 그 의문은 쉽게 풀렸다. '리뷰를 써달라' 점원이 부탁했다. 리뷰를 쓰면 음료수를 서비스로 주는 거였다. '아, 이래서 그렇게 리뷰가 많았구나.... 집에 돌아가면 솔직하게 리뷰 써줘야지' 생각했지만 쓰지 않았다. 경주 여행 1일 차 첫 시작인 식도락은 조금 망했다. 식사를 마치고 황리단길에 있는 대릉원과 첨성대를 갔다. 길거리는 '전주 한옥마을'과 같이 넓고 깨끗했다. 하루 종일 심했던 비는 보슬보슬 비가 돼 무척이나 걷는 즐거움을 줬다. 폭우가 아니었다면 혼잡한 사람과 폭염으로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온전히 우리 가족만 이 넓고 아름다운 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었다. 발걸음은 절로 살짝 신난 리듬을 주고 눈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분주하게 사방을 응시했다. 더 길었으면 하는 길은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다. 첨성대였다.
"오빠 뭐 하는 짓이에요 옹"
"응 이 훌륭한 곳을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은 불경한 것 같아서 맨발로 걷는 거네"
비 오는 날, 황톳빛 땅의 감촉을 느끼고 싶을 때 보통 맨발로 걷는데, 이런 감수성을 뚱뚱한 친구가 이해할리만무였다.
"보기 흉하니까 빨리 크로스 신어요!"
"아니 이게 예의를 표하고, 시원하고.... 좋다니까...."
"무좀 걸린 발로 뭔 예의야! 빨리 안 신어"
"네...."
'발가락이 간지러울 때 맨발로 걷는 게 치료에도 좋은데....' 아내 한소리에 크로스를 신고 첨성대를 보기 시작했다.
분명 내 옛 기억에 첨성대를 만지고, 올라가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보게 된 첨성대는 주변으로 접근 금지 펜스가 있었다. 문화재는 멀리서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맞기에 당연한 조치라 생각은 들었지만 어렸을 때 손으로 쓰담했던 기억 있어, 아쉽기도 했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원형을 유지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고 한다. 수많은 자연재난 특히 2016년 경주 5.8 강진도 버티고 1,300여 년이 지났는데도 유일하게 후대의 복원, 재건 없이 그대로 보존된 문화유산이다.
처음에 첨성대를 보게 되면 '이게 뭐야'라는 실망감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앎이 많아진다면 고대 우리 조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약하지만 나의 조그마한 지식을 이야기한다면, 첨성대는 3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밑에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이 있다. 2단인데 1단은 땅속에 있어 1단으로 보인다. 기단 위로 '원통부'가 있는데 총 27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통부 가운데에 '창'이 있는데 창을 중심으로 아래로 12단, 위로 12단이다.(한번 세보기 바란다. 참고로 창은 3단이다.) 원통부 위로 우물정(井) 자 모형의 '정자석' 2단이 있다. 각각 의미하는 바도 있는데 '기단'은 '땅', '원통부'는 '하늘', '정자석'은 '동서남북의 범위'를 가리킨다고 한다. 첨성대를 쌓는데 들어간 돌의 개수는 364개, '1년 날수', 땅속 기단을 합한 28단은 기본 별자리 28수를 의미하고, 창을 기준으로 아래로 12단, 위로 12단은 12달과 24 절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자, 이 첨성대를 짓기 위해 사용된 과학이 보이는가? 그리고 원통부, 창 윗부분 삐죽삐죽 튀어나온 돌이 보일 것이다. 그것을 '비녀돌'이라고 부르는데 몸통 사이에 끼워 넣은 돌로 원통부를 잡아주어 안정성을 더해주었고, 맨 상층 정자석은 서로 맞물려 좌우 흔들림을 방지해 준다고 한다. 즉, 내진설계가 신라시대 때 이미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첨성대에서 느낄 수 있는 다른 의문은 아마 '아니 이 첨성대로 어떻게 천문을 측정했을까?'일 것이다. 내가 처음 첨성대를 보왔을 때 원통부 창을 보고 그곳으로 사람이 들어가서 그 안 내부에서 하늘을 보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는데 첨성대 내부는 생각보다 좁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외부에서 사다리로 원통부 창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원통부 내부에 사다리를 타고 정자석 위로 올라가, 하늘 천문을 보지 않았을까' 이게 주류라고 한다. 첨성대가 10m 높이 정도 되고, 현대처럼 높은 건물이 없었으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첨성대를 지나 대릉원으로 갔다. 사람이 정말 없었다. 이 유명 유적지에 아무도 없는 경험은 웬만해선 하기 힘들다. 나는 물 만난 개구리 마냥 신나게 폴짝폴짝 돌아다녔는데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에 들어간 조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뭔가 세상의 고통을 아는 것 마냥 조용하고, 기운 없는 모습, 의욕 없는 모습에 대릉원 전체를 볼 수가 없었다. 분명 올해 같이 '에버랜드'(나의 글 에버랜드를 가다. 보세요) 놀러 갔을 때만 해도 이 모습이 아니었는데.... 키는 부쩍 커, 아내와 나를 놀라게 했고, 어느새 어린 여성의 태를 보였다. 한편으로 성장의 모습이 좋으면서도 어린아이 모습이 그리웠다. 내가 알지도 못한 채 나이를 또 먹었구나, 애써 무시하며 느끼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오빵 여기 대릉원에 천마총이 있나봐용"
"응? 대릉원에 천마총이.... 흠 천마총은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단지 말안장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알고 있는데.... 천마총이 여기 있나...."
'확실하지 않으면 내기를 걸지 말라'는 '타짜 고니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신이 없었다. 그럴 때는 조용히 가만히 있으면 된다. 무엇인가를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나의 선조가 만든 위대함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저 경외감을 품고, 느끼고, 생각하면 된다. 문화유산, 유적을 볼 때 그 유산에 대해 사전 지식이 있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도 좋지만....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누군가가 적어놓은 말, 감상, 설명에 휘둘려지는 것보다 나의 느낌을 온전히 가져가는 것이 더 낫다.
'이번 대릉원은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다음에 와서 그때 제대로 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지며 조용히 첫날의 여행을 마무리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