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동궁과 월지에서 산책하다.
오전에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고 인근 식당에서 밀면을 먹었다. 밀면을 먹고 난 후에 숙소로 갔다.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숙소에서 잠깐만 쉬고 '오류고아라해변'을 갈 생각이었다.
"통순! 오늘 벌써 만보를 걸었구만. 우리 딱 1시간만 쉬고 해변에 갑시다."
"그래요 오빠앙~잠깐만 쉬고 해변에 가요~~"
알람을 맞추지 않고 '낮시간이니까 금방 일어날 수 있어' 무슨 자신감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해변을 구경도 못했다.
"으어엉 잘 쉬었다. 통순 그럼 해변으로 가볼까~" 아직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며 시계를 봤는데.... 망했다. 분명 1시간만 쉬자고 했는데 3시간을 넘게 쉬어버렸다. '흑흑, 어쩐지 개운하더라' 시간은 5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으응" 늦게 일어난 아내를 봤다. "해변은 다음 경주 여행 때 가고 그냥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으응 그래용~" 역시 우리는 게으른 곰탱이가 맞는 듯하다. 조금 더 숙소에서 쉬다 '조돌칼국수'집으로 갔다. 비가 오는 날이기에 '파전'이 너무 먹고 싶었다. 여기저기 검색하다 '동죽칼국수와 새우해물파전'이 유명한 보문단지 맛집거리 쪽 '조돌칼국수집'을 찾게 되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부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날인데 테이블마다 사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갔던 맛집 중 여기가 제일 붐볐다. '헐, 호우주의보에도 맛집 찾는 여행객은 어디나 있구나' 창가 쪽 자리를 잡고 '동죽칼국수 3인분'과 '새우해물파전'을 시켰다. 칼국수와 해물파전 다 빠르게 조리되어서 나왔는데 칼국수에서 '쑥향'이 났다. '오~이것 좋군' 각자 동죽 칼국수를 가져갔고, 처음 칼국수 육수를 마셨는데 '와~이 감칠맛, 동죽으로 인해 만들어진 그 감칠맛은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꼬들꼬들한 칼국수 면을 먹고 바로 입을 벌린 동죽을 까서 먹는데 그 조개류에서 나오는 향긋한 감칠맛과 꼬들꼬들한 면맛은 매우 든든하게 저녁 식사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와~ 경주여행 중 가장 맛있는 한 끼구나~!' 비 오는 날의 파전은 '공식이자 진리요 사랑이다.' 가뜩이나 맛있는 음식인데, 새우, 오징어가 들어간 '새우해물파전'은 바싹한 튀김옷, 탱글탱글한 새우, 그리고 오동통통 오징어가 입속에서 춤을 추며 씹혔다. '와~~ 이건 막걸리 각이다.' 정말 운전만 아니었다면 막걸리 2병이었다. 맛있는데 술을 한잔도 마실 수 없으니 사람 환장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막걸리 한잔 하겠네' 말을 입에 담을 수도 없었다. 분풀이로 칼국수 국물을 막걸리 마시듯 쭈욱~마셨는데 이게 참~ 사람 뱃속을 따끈 따끈하게 풀어주는 것이다. 연커푸 마시다 보니 양 많은 칼국수 국물은 없어졌고, 숙소에서 먹고자 파전을 하나 더 시켰다. 물론 나 같은 일반인은 숙소에서 무언가를 더 먹을 생각을 못하는데, 뚱뚱한 아내가 주문을 더 했던 거다. 이번에는 조금 맘에 들었다.
저녁을 먹고 드디어 대망의 '동궁과 월지'를 보고자 출발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와 아름다운 전각! 그것을 비추는 조명과 호수에 뜬 그림자를 보는 건 얼마나 낭만이 있나!' 두근 거리는 가슴을 안고 동궁과 월지 주차장으로 향했다. 비 오는 깜깜한 밤이라 운전이 어려웠다. 거기에 생각보다 많은 자동차로 '엉? 아니 왜 이렇게 차가 붐비지....' 경주 와서 처음으로 붐빈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필사적으로 경광봉을 흔드는 주차요원을 봤다. " 지금 만차입니다. 여기 주차 안 돼요", "선생님! 지금 다른 주차장이 모두 공사 중으로 막혔는데.... 어디에 주차를 하나요?", "월정교 공영주차장 이용하세요" 월정교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라는 주차요원의 말에 머릿속에서 생각이 많았다. 월정교 공영주차장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차를 돌리고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 '국립경주박물관'이 보였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빗속을 걸어서 동궁과 월지로 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운이 좋았다. 그 깜깜한 밤에 주차 공간을 찾았다는 사실. 스스로 대견했다. 500미터 남짓 걷고 '동궁과 월지'를 입장할 수 있었다.
'동궁'이라는 명칭은 '태자가 거처하는 동쪽 궁'으로 삼국통일전쟁의 주역인 문무왕(김춘추)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주 월성 동쪽에 호수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곳이 바로 '월지'다. 예전에는 '안압지'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어느 순간 '월지'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 온 경주여행에서는 안압지였는데, 월지라는 명칭에서 또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것 같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을 쓰고 환하게 보이는 전각으로 갔다. 3채의 전각이 있었고, 하나씩 하나씩 기둥 안으로 들어갔다. 가운데에는 모형이 있었고, 단청을 보는 것보다 호수에 비친 전각 그림자를 보는 게 우선이었다. '아~아름답다.' 낮에도 보면 좋은데 밤에 호수에 비치는 전각을 보는 건 또 다른 기분이다. 고요한 물속에 잔잔하게 내리는 비는 호수 속 동궁에 파문을 일으키지 못한다. 나는 조용히 호수 속 전각을 보고, 옆에 있는 섬의 그림자를 봤다. 현실의 섬과 환상의 섬이 서로 맞닿아 있는 모습은 옛적 '이태백이 호수 속 달을 건지려다 물에 빠진 것'처럼 나 또한 저 환상의 섬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맴돌았다. '조심해야 해.... 나는 아직 성공을 이루지 못했고, 즐길지도 못했어.' 나 스스로 미래에 대한 다짐을 하고 또 했다. 빗줄기가 거세져 전각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처마 밑 반짝이는 조명에 모여드는 나방무리 마냥 빗줄기가 얼마나 거세졌는지 갸름이 됐다. 거센 빗줄기는 호수 속 섬과 전각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무너진 듯 보이지 않았다. 나의 아내와, 아내 언니, 그리고 조카와 함께 전각 안에서 사진을 찍고 그리고 조용히 사색하며 있다 보니 어느새 빗줄기가 다시 가늘어졌고, 다시 호수 속 전각과 섬이 생겨났다.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옛 왕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많은 생각이 있었다. 사람의 인생 또한 그럴 것이다. 이쁘고 아름답던 시절은 조금씩 엷어지고, 이젠 쇠약하다는 것을 느낄 나이가 됐다. 덧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하나, 내 옆에 조카가, 어떤 누군가가 다시 이어줄 것을 알기에 앞선 사람으로 길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동궁과 월지'는 아름다움도 줬지만 더 많은 생각을 줬던 것 같다. "이제 돌아갈까!", "그래요" 이렇게 폭우 속 2일 차 경주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