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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Sep 04. 2022

노임 받는 날

그날의 추억

광산 노무과 사무실 앞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줄이 이어졌고, 저마다의 손에는 목도장 하나씩 쥐고 있었다.  막장에서 살아남은 한 달의 목숨 값을 받으러 온 것이다.

엄마가 집에 가라고 욕을 했지만 끝까지 엄마 치맛자락에 매달려 딱총 사달라고 졸랐다.

노임 는 날은 사택에서 제일 큰 행사였다.

동네 점방의 막걸리는 동나기 일쑤였고 밀린 외상값을 갚으면, 쫀드기 하나라도 아이 손에 들려주며 떼먹지 않은 것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외상장부에는 막걸리가 제일 많이 적혀있었고 가끔은 서로의 계산이 맞지 않아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경우가 밝은   사람임을 강조했고 말싸움에서 항상 이기고 돌아왔다.

나도 노임 는 날을 을 손꼽아 기다렸다.

화약 넣고 쏘는 딱총이 백 원인데 보름을 조르고 졸라서 오늘에서야 사준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엄마에게 호랭이가 물어갈 놈이란 욕을 들으며

빗자루로 맞기도 했지만, 계속 조르면  사주실걸 알았다.  엄마와는 인내심 싸움이었다.

삼 남매가 먹이를 기다리는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엄마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입을 제일 크게 벌린 작은 누나는 용돈으로 칠십 원, 동생은 삼십 원, 나는 오십 원을 받았다.

딱총 값으로 백 원을 더 받자마자 학교 앞 문방구로 달려가 딱총을 샀다.

총싸움할 때마다 나무로 만든 총을  손에 들고 입으로 탕탕 소리를 내며 싸웠는데,  이제는 나도 화약 냄새를 맡으며 전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보리밥에 김치 쪼가리 먹고 하루 종일 뛰어 노느라 배가 고파지면 고구마나 무를 뽑아먹고 공터나 산으로 뛰어다녔다.

옥수수 대궁이 굵어질 때면 옥수수 대궁을 잘라 껍질을 까고 그 속의 하얀 속살을 질겅질겅 씹으면 입안 가득 달콤한 즙이 목마른 아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무령 광업소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언덕 위에서 멀리 보면, 산 능선들이 희뿌옇게 이어졌고 소나기라도 오는 날에는 먹구름이 어느 능선까지 왔는지, 언제쯤 사택에 도달할지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예측한 시간에 어김없이 소나기가 왔고

처마 밑에서 10분만 기다리면 비가 그치고 무지개를 동반한 해님이 반짝거렸다.

노임 는 날은 아무리 가난한 집 아이들이라도 태권브이 주위로 별이 그려져 있는 동그란 딱지 하나쯤은 살 수 있었고, 사택 골목마다 서너 명이 둘러앉아 누구 별이 많은가 별을 세면서 별 따먹기 도박을 하고 있었다. 재수 좋은 날이면 주머니 가득 별을 담아 와서는 머리맡에 놓고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그날 밤의 꿈은 어김없이 은하수를 지키는 로봇이 되어서 별을 파괴하는 악당들을 무찌르는 태권 브이로 활약을 했다.

아버지는 돼지비계 많은 삼겹살로 끓인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밤늦도록 막걸리를 마시고 주전자가 가벼워지면 별 딱지 꿈 꾸며 자고 있는 있는 나를 깨워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다.

점방 주인은 올 줄 알았다는 듯 막걸리 한 되를 말없이 주전자에 부어주며 이번 달 외상장부 첫 장에  적어놓았다.

노임 는 날은 아버지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엄마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두런두런 아버지와 얘기를 하면서 밤이 깊도록 이번 달 쪼들리게 살아갈 걱정으로 엄마의 한숨이 길어졌다.

노임 받는 날은 한 달 외상값 갚는 날이고

노임 받는 날은 한 달 외상 지는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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