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벚꽃 잎 내리는 어느 겨울밤

by 안개바다

정말 춥다, 옥상 화실.

아래위 이빨이 부딪쳐 캐스터네츠 소리를 낸다.

복덕방 할아버지의 '그 보증금에 이만한 방도 없다' 꼬드겼던 말이 이만큼 추운 방도 없다는 뜻일까.

눈이 오면 포근하다는 말도 이제는 믿지 않겠다.

해 질 녘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눈이 내린다.

눈이 아무리 쌓여도 온도계의 수은주는 며칠째 아래로만 떨어지고 있었다.

수도관은 동파되고 주전자의 물도 꽁꽁 얼어 목이 말라 소주를 마셨다.

눈이 오면 떠오르는 이름하나.

가로등 밑에서 눈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벚꽃 잎이 떨어지는 것 같다던가.

이 시간 잠든 그대의 창가에도 벚꽃 잎이 사르락 사르락 쌓여있을까.

어쩌다 오래된 그대의 주소지로 엽서를 보내면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오는 차가운 기별.

나는 차라리 한겨울 冬安居에 들고 싶었다.

이제는 눈이 그쳤을까 창밖을 보면 아직도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온 세상이 적멸하고 있다.

화실 문도 쌓인 눈에 막혀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았다.

도둑처럼 창문으로 빠져나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름은 '백석' 어울리는 이름이다.

백석을 화실 문 앞에 세워놓았다.
외로워 보인다.

옥상의 눈을 긁어모아 또 하나의 눈사람을 만들어 백석 옆에 세워놓았다. 이름은 '나타샤'

백석과 나타샤가 어깨를 기대고 눈을 맞는다.
보기 좋다.

응앙응앙 울었다던 흰 당나귀는 눈이 모자라 만들지 못했다.

하얀 연인들은 해바라기 소피아 로렌이 돌아오는 계절까지 살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어이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연탄난로를 피우고 바람구멍을 활짝 열어놓았다. 주전자의 보리차가 끓었다.

얼어있던 화실도 흐물흐물 해동되고 있었다.

끓는 물에 주전자 뚜껑이 들썩거리고 수증기 속에서 누드의 그대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았다.

환영을 보다니 나는 드디어 미쳐가는 것일까.


아래층 주인집 첫째 딸이 틀어놓은 전축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봄 1악장.'

저 여자도 동지섣달 새벽 세시에 제정신은 아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