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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Dec 17. 2022

샤갈의 눈 내리는 옥탑방 화실



정말 춥다. 옥탑방 화실

아래위 이빨이 부딪쳐 캐스터네 소리를 낸다.

복덕방 영감의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워서 그렇지

이만한 방도 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 보증금에 이만한 방도 없다' 꼬드겼던 말이

이만큼 추운 방도 없다는 뜻일까.

처마 밑의 고드름은 점점 키가 커지고

수채와 물감은 굳은 건지 얼은 건지, 그나마 유화물감은 윤기 나는 본래의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술 먹고 연탄난로라도 꺼트린 날이면 주전자의 물도 꽁꽁 얼어 목이 말라 소주를 마셨다.

아무리 노력해도 얼어 죽진 않고 웅크렸던 온몸의 포들은 그대만 기억하라 부추기는데, 멀리 갔던 그대는 눈 속에서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던가.

화실 문도 쌓인 눈에 막혀 아무리 밀어도 탈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도둑처럼 창문으로  빠져나가 옥상의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었다. 번개탄 부숴 눈썹과 윙크하는 눈도 그리고 가슴에 이름도 써주었다.

이름은 '뭘 봐' 어울리는 이름이다.

순백의 뭘 봐를 화실 문 앞에 세워놓았다.

이젤 앞에 앉아 창밖을 보면 아직도 함박눈. 

새벽에 또 눈사람을 만들어 뭘 봐 옆에 세워놓고

가슴에 이름을 써주었다. 이름은 '안 봐'

뭘 봐와 안 봐, 봐자돌림 남매 여름 해바라기 필 때까지만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연탄난로를 피우고 바람구멍을 있는 데로 열어놓았다. 주전자의 보리차가 끓었다.

얼어있던 화실도 흐물흐물 해동되고 있었다. 

끓는 물에  주전자 뚜껑이 들썩거리고 수증기 속에서 그녀의 환영도 아른거린다.

드디어 미쳐가는 것일까.

아래층 주인집 딸내미가 틀어놓은 전축

'비발디의 사계 봄 제1악장.'

, 쟤도 겨울 새벽 세시에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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