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로선 Dec 22. 2022

새벽송 천사들을 찾아서

크리스마스 새벽



들릴 듯 말 듯 찬송가 소리가 들린다

새벽에 듣는 찬송가는 듣기만 해도 하나님의 은총이 후미진 화실까지 도달할 것만 같다.

겨울 하늘을 보면 동방박사들을 아기 예수께 인도했던 별들이 총총한데 아무리 새벽하늘을 올려다봐도 나는, 그대에게 가는 길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끊겼다 이어지는 찬송가 소리를 들어보면 옥상을 중심으로 지금 어디쯤에 새벽송 도는 천사들이 당도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부디 화실 쪽으로 와주었으면, 어릴 때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에 교회 가서 과자를 받아 오던 기억이 났다.

새벽송 천사들에게 과자라도 한 보따리 사서 주고 싶었지만 동네 가게는 문 닫은 지 오래. 화실을 둘러봐도 과자는 없고 일용한 양식 소주와 담배와 라면은 충분했다.

라면 한 박스와 주머니 탈탈 털고 일 년 동안  살 찌운 돼지 저금통 배를 갈라 새벽 송 천사들을 기다렸다.

생각 같아선 소주와 담배 토큰까지 다 주고 싶었다.

같은 교회 성도가 아닌 이상 내가 여기서 눈 빠지게 기다리는 것을 알리야 없겠지만 근처에 오기만 하면 옥상을 뛰어내려 갈 준비를 했다.

오늘만큼은 새벽에 잠 깨어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은 행복했다.

오지 않을 걸 알면서 기다린다는 것은 피 마르는 일이었지만  나에게로 올 거란 확신을 갖고 기다리는 것은 분명 설렘이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그러했듯 별을 보고 날 찾을 것이다.


"저 들 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가까이 들렸다.

아마도 쌀집, 아니면 연쇄점 근처일 것이다.

라면박스와 동전이든 검은 봉다리를 들고 천사들을 찾아갔다.

일곱 천사가 봉고차에 타는 것이 보였다.

아직은 날개가 자라지 않아 봉고차로 이동하나 보다. 라면과 봉다리를 수줍게 내밀었다.

모두들 당황한 눈치다.

이른 새벽에 미친놈 아니면 밤새워 술 처마신 주정뱅이일 가능성이 농후했겠지.

나는 미친놈도 아니고 오랜만에 술 한 잔도 안 마신 구원받고 싶은 피조물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봉고차의 천사들이 환하게 웃으며 내렸다.

모두가 손을 모으고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다.

리더로 보이는 여자 천사의 작고도 또렷한 기도 소리가 잠시나마 천국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마리아의 목소리도 이러했을 것이다.

일곱 천사가 나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름 모를 성도님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로운 사랑만 가득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리더 천사의 기도가 끝났다.

꼭 교회에서 보자고 손을 잡아 주고는 봉고차를 타고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털털거리는 봉고차 뒤에 대고 '메리 크리스마스' 손을 흔들어 주었다.

괜히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에 새벽의 골목길을 유기견처럼 쏘다녔다.

유기견처럼 허물어진 담벼락에 오줌도 쌌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냉동창고 같던 옥탑방 화실도 오늘은 천국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