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냥 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바다 Oct 25. 2024

그대 기다리던 날에는

거미


내가 설마 배나 채우려고 허공에 빈 그물하나 던져 놓았겠습니까.

낮에는 운 나쁜 고추잠자리와 배추흰나비 발목을 잡고, 밤이면 달빛과 북극성이 걸려있었지만 모두가 부질없어 방생하고, 뜬 구름 같은 그대의 소문이라도 잡아볼까  한 땀 한 땀 밤새워 그물을 엮었지요. 그러다가 가끔씩 바람이 흘리고 간 그대의 안부 부스러기나 주워 먹으며 한 계절 연명했었습니다.


사무치게 보고 싶은 그대와의 인연은 전생까지 이어져, 호젓한 윤회의 길목에 그물을 쳐놓고 무심히 눈을 감았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나의 천성이라 억겁의 시간이 물처럼 흐르던 어느 날, 그대의 미안하다는 서신 한 장 그물에 걸려 있을 때에 나는 그것마저도 눈물겹게 고마워했지요. 짧았던 그대의 말씀에도 포만감을 느끼고 또다시 허공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지요.


전생에서도 나는 허기진 사랑을 하고 있더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