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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Dec 17. 2021

소확행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 매일같이 기다려지는 금요일!

바로 오늘이 프라이데이, 그날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금요일 퇴근길의 여유는 나를 쪼금 착한 사람으로 변신시켜주기도 한다.

뭔가 급해 보이는 차가 오면 얌체형 새치기든 무개념 꼬리물기든 육두문자 날리지 않고 웃으면서 기꺼이 양보도 하고, 지뢰처럼 중간중간 있는 과속카메라가 어디 있든 상관없이 규정 속도로 안전 운행하며 전혀 마음이 쫓기지 않는 마법의 시간! 

그때 (평소 라디오나 시계 용도로 쓰이는 나의 핸드폰) 차 안 거치대에서 몸을 떨 듯 진동을 내며 전화가 걸려온다. 

"언니~~!!" 

단지 먹는 즐거움뿐 아니라 요리하는 맛(재미)을 알게 해 준 현대판 장금이 언니(우리 동네 백 주부라고 부르는 데 언니가 손사래 치며 아니라고 해서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저. 장.)

대본에 없는 시나리오처럼 먼저 온 연락이 반갑기만 한데, 갑자기 저녁을 사주고 싶다는 언니 마음이 미안할 정도로 고맙기만 하다. 

사실 회사로부터 탈출하는 황금 같은 시간이더라도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큰아이 픽업 또는 작은아이 픽업 후 빡빡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기에 퇴근 후 약속을 잡을 여유가 내겐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남편 찬스를 살짝궁 기대하며 나름 콧소리 애교라는 것을 부려본다.

" 딱 한 시간만 휴가 내고 일찍 퇴근해서 당신이 얘들 픽업해주면 안 될까? 장금이 언니가..."

 띠용~~!! 늘 바쁘다던 남편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알았다고 한다. 

오랜만에 언니 만나고 오라고~~(오올!! 울 서방, 쫌 멋진데~^^)

그렇게 성사된 특별한 인연인 언니와의 저녁 약속! 

평소 셰프만큼의 요리 실력을 겸비한 언니가 데코장으로 일하고 있는 일본 가정식 식당으로 향한 우리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고 1차 관문인 메뉴 정하기를 위해 메뉴판을 천천히 정독해본다.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나~~!!"

도대체 언제 적 유행어인지 모를 개그도 소환해가며 잠시 후 남이 차려주는 식탁을 즐길 상상 속에서 연신 싱글벙글하다. 극강의 매운맛을 즐길 줄 아는 언니는 나가사끼 홍우동!! 나는 고급지고 푸짐한 스키 샤부 정식!

 (사실 메뉴 고르기는 짜장 vs 짬뽕 월드컵만큼이나 참 어려운 순간이다.)


 오랜 고민 끝에 일을 시작한 언니도 할 말이 많은 눈치다. 손가락과 입은 본능적으로 제 일을 하면서 식사가 진행되고, 눈과 귀는 오직 언니를 향해 모든 안테나 주파수를 맞춘 채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느라 입은 두 배로 바쁘다. 매일매일 가게 오픈 시간부터는 잠시 화장실 갈 틈도 없어서 영업 시작 5분 앞두고 화장실을 향해 100미터 달리기를 하다 몸이 뒤뚱하였으나 타고난 균형감각으로 넘어지진 않았다는 무용담부터 먹는 내내 언니의 맛깔스러운 입담을 듣느라 웃다가 사래가 들릴 뻔하기도 한다. 앞에 놓인 고급진 스팀폿 육수 안에서 샤브용 소고기가 살짝 익는 냄새는 입안의 침샘을 자극하느라 연신 코를 킁킁대기도 하며 오감이 바쁘도록 행복한 저녁시간이다. 게다가 사장님께서 생전 처음 본 구슬 사이다라는 것을 마치 오다 주웠다 같은 무심함으로 턱 하니 내주신다. 인심 좋은 시골에서 나고자란 탓인지 유난히 공짜에 약한 나에겐 특히 '덤'이라는 무료증정 서비스는 갑자기 당첨된 복권처럼 횡재를 얻은 듯 기분이 저 하늘로 날아가려고 한다. 

구슬 사이다? 

뽕따 사이다 버전이라고 하면 이 맛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이걸 따를 때마다 구슬이 내는 소리에 재미를 느끼며 좋아한다는 데 생전 처음 맛 본 사이다 후식으로 깔끔하게 입안까지 마무리하며 내 시월의 프라이데이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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