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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Dec 15. 2021

착한 어린이 vs  나쁜 어린이

황선미 작가님의 [나쁜 어린이 표]를 읽고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말합니다.

 "착한 아이가 되라고..."

그런데 궁금합니다. 도대체 착한 아이는 어떤 아이이고, 나쁜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요?

황선미 작가의 [나쁜 어린이 표]에서 나오는 건우네 반에서 착한 아이는 초록색 '착한 어린이 표'를 받는 아이이고, 나쁜 아이는 노란색 '나쁜 어린이 표'를 받는 아이입니다.

건우의 담임 선생님은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대신 매보다 더 괴로운 규칙을 만들어요.

준비물을 못 챙겨 왔을 때, 공부 시간에 떠들었을 때, 욕했을 때, 싸웠을 때, 숙제 안 해 왔을 때, 복도에서 뛰었을 때 등 아이들에게 나쁜 어린이 표를 주는 것입니다.

 반장 선거에 떨어지던 날, 건우는 우연한 일로 반에서 처음으로 나쁜 어린이 표를 받게 되는데, 이상하게 그 뒤부터 자꾸만 나쁜 어린이 표를 받게 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나는 여태껏 내가 나쁜 애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 나쁜 어린이 표를 받는지 모르겠어요. 노란색 스티커만 있다면 선생님 머리에 다닥다닥 붙여 주고 싶어요. 머릿속이 노래지는 기분을 선생님도 알게 말이에요.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적게 된 건우의 "나쁜 선생님 표 수첩"  p27, 35


나쁜 선생님 표 하나!

고자질한 애한테도 나쁜 어린이 표를 줘야지요.

나쁜 선생님 표 둘!

싸움은 지연이가 먼저 시작했어요.

나쁜 선생님 표 셋!

저도 발표 좀 시켜 주세요.

나쁜 선생님 표 넷!

창기는 떠든 게 아니라 수학 문제를 물었을 뿐이에요.

나쁜 선생님 표 다섯!

선생님은 친절하지 않아.

나쁜 선생님 표 여섯!

노란색은 싫어

나쁜 선생님 표 일곱!

규칙을 마구 바꾸면 안 돼요.

나쁜 선생님 표 여덟!

창기가 왜 늦었는지 물어봐야지요.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재밌게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는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의문이 일기 시작한다. 지금껏 쉽게 생각하고 당연히 알고 있다고 믿어 온 것에 대한 의심! 어쩌면 처음부터 아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주입식으로 그냥 입력된 명제에 대해 스스로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일 뿐!

 과연 '착한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일까?

 '착하다'는 사전적 정의에 맞게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해석에 충실하여 욕설이나 비어를 사용하지 않고 친구들과 싸우지 않는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일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지. "라는 애매한 말로 아이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 앞에서도 가급적 피하거나 최소화기 위해 '나'보다 '관계'를 우선시하고 친구들을 배려하는 것이 착한 어린이일까?

흔히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

연령대를 떠나서 어른들도 실수 많이 하고 심지어 공중도덕이나 생활법규를 밥 먹듯이 어기는 어른들도 많은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는 어린이들에겐 뭐라고 말해줘야 하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착하다'는 이 말에 대한 고민이 그렇게 여러 날 계속되었다.

 


 

 어느 주말 저녁의 일이다. 여덟 살이 되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동생의 편식습관을 고쳐주고 싶은 큰아이가 동생을 향해 시작한 훈육이 점점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변해서 몹시 화가 난 듯 들린다. 형아의 마음과 달리 입을 아예 틀어막고 먹기 싫다는 거부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도망 다니는 동생을 쫓기에 이르자 아빠가 중재에 나선다. 아빠는 짧고 굵게 "그만!"이라고 말했지만, 큰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는 자신이 도리어 혼났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억울한 심정을 더 큰 목소리로 변명처럼 늘어놓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온기 가득하고 여유로운 주말 저녁 시간이었다. 겨울왕국 엘사의 입김 한 번에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듯이 서늘해진 집 안에는 칼바람마저 이는 듯하다. 어느새 둘째는 거실 한쪽에서 숨죽여가며 정리를 시작하는데 요즘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억울함이 분노로 변하고, 이를 크게 꾸짖는 아빠의 말들이 귀에 박히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어? 부모님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라고?! 어떻게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냐!"

바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큰아이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더 화가 난 아빠도 격앙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더 쏘아붙인다.

"교회에서 전도사님께서 부모님 공경하라고 한다면서? 이게 부모님 공경하는 거면 너는 교회 나갈 필요 없어! 내일 교회 가지 마!"

아빠가 훈육하는 중간에는 엄마라도 끼어들거나 아이를 감싸고돌면 안 되는 것이 불문율처럼 하나의 원칙이라지만, 그 순간에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팽팽한 두 남자 사이로 달려가 서로 직진하는 감정의 브레이크를 밟기 위해 사랑의 매를 집어 들었다. 큰아이를 낚아채듯이 작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군기반장 역할을 맡은 것이다.

밖에 서 있을 아빠에게 들리도록 일부러 더 크게 꾸중을 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어른이 누구야? 아빠가 그만 하라고 말씀하시면 일단 너도 순종하려고 최소한 노력은 해야지. 어디 한마디 한마디 따박따박 말대꾸하고 그래? 그것 때문에 아빠가 더 화나셨잖아."

애먼 방바닥을 탁 탁 치며 큰 소리를 내자 금세 겁먹은 아이는 울먹이며 위축하는 모습이다. 이내 소리를 한껏 낮춰 속삭이듯 (아이에게만 들릴만한 소리로)

"동생 편식습관은 엄마 아빠한테 일단 믿고 맡겨봐. 네 마음은 엄마도 알겠는데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될 일이 아니야. 오히려 더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이건 정말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좀 기다려보자. 네가 이렇게 혼날 필요가 없잖아. 안 그래?"  


이후로도 이 같은 광경은 반복되고 있지만 어른들의 말에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대답할 뿐인 데 우리 어른들은 이걸 일방적으로 '말대답이나 말대꾸'한다고 싸잡아 복종인지 협박인지 헷갈리는 순종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건 아닐까? 그래야 바르고 착한 어린이라고 착각하며...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마다 수많은 장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구분 지으려고 할까?

 "착한 어린이 vs 나쁜 어린이"

 "모범 청소년 vs 비행 청소년"

(※ '비행 청소년' 또는 '문제아'라는 말은 정말 잘못된 말이다. 대조적인 의미로 일부에서 구분하는 말로 오용되고 있지만 청소년기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 있는 행동을 문제아라는 식의 표현으로 사용해선 안된다.)

 "좋은 사람 vs 나쁜 사람"




 오랜 기간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오신 한 권사님께서 어느 날 깊은 한숨과 함께 물으셨다고 한다.

"목사님, 왜 이렇게 저는 안 변하는지 모르겠어요. 예배드리고 말씀 묵상하며 열심히 신앙생활 해왔고 나이도 지긋하게 들었건만 여전히 화내고 싶을 때 화내고, 따지고 싶을 땐 따지고, 그 당시에는 내 생각이 맞다고 확신했는데 뒤돌아서면 후회가 돼요."

아주 오래전부터 진실로 진실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기에 나도 순간 귀를 쫑긋 세우고 양손을 공손하게 모은 자세로 어떤 문제의 정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중하게 되었다. 목사님께서는 무척 답답해하시는 권사님께 이렇게 권면드렸다고 하신다.

"권사님, 안 바뀌실 겁니다. 그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기질인데 교회 다닌다고 해서 사람이 변하진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온화함과 긍휼함으로 그것들을 덮으셔야 해요."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확실하고 단정적인 말이었지만 내 기대와 달리 어쩐지 힘이 빠지기도 하고 허망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대다수 심리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15세 이전까지 형성된 사람의 성격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줌마가 되면 성격이 변한다'는 우스갯소리에 김경일 인지심리학자는 단 1%도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격과 IQ를 포함하여 '기질'이라고 하는데, '기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녀에게 넌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공부를 못하냐고 나무라는 부모의 모습은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상황과 같다고.

간혹 어릴 때엔 낯가림도 심하고 내성적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는 외향적인 성향으로 바뀌어서 처음 본 사람에게 먼저 말도 걸고 누구든지 10분 만에 친해질 수 있을 정도로 사교성도 뛰어나다며 자신은 성격이 완전히 바뀐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사회적 능력(매너, 예의범절, 대화의 기술 등)이 향상되었을 뿐 타고난 기질이 변화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4가지 기질론 (BC 460~377)

아주 오래전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4가지 기질(체액) 론을 시작으로 인간의 성격에 대한 연구가 지금까지 다양한 심리학적 도구(MBTI, TCI, 에니어그램, 도형심리 등)로 발전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의 성격을 고작 기질 4가지 혹은 유형 16가지로 한정하여 분류한다는 것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콕 집어서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 프레임에 가두려는 게 아니다. 동일한 상황이라도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성향적 기질이 강하고 저 사람은 또 다른 성향적 기질이 나타난다 등으로 이해한다면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나와 다른, 그 사람의 성격이 못된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른 것뿐임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동일한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사과가 왜 떨어질까? (사물의 본질을 연구하는 타입) ---> 우울질

와!! 사과 떨어졌다!!! (기쁨, 낙천적인 관점)            ---> 다혈질

저 사과를 누가 많이 먹을까 (성과, 결과가 중요)      ---> 담즙질

분명히 다 썩어서 먹을 수 없는 사과만 떨어졌을 거야 ---> 점액질



 

 나와 다른 의견 또는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을 이어가기보다는 '당신이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다르구나'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른으로서 좀 더 성숙하고, 부모로서 지혜로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착한 어린이 VS 나쁜 어린이"로 이분법 화하거나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과 행동이 칭찬과 격려로 발전시켜주어야 하고, 어떤 생각과 행동이 단호하게 저지되어야 하는지 그 기준을 바로 알자!

그리고 나부터,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일관된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한 부단한 노력, 그것이 어른으로서 내게 당면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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