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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Nov 21. 2021

[앞뒤로 읽는 책 Ⅲ] 도깨비방망이

지우고 싶은 기억 없어져라, 뚝 딱!

어렸을 적 한 번쯤은 들어봤을 도깨비와 개암 이야기

[앞]

가난했지만 늙은 부모님을 잘 섬기는 착한 농부는 어느 날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잘 익은 개암을 발견하게 된다.

"땍때구루루"

"이야, 맛있겠다. 이건 아버지 갖다 드려야지."

"땍때구루루"

"이야, 맛있겠다. 이건 어머니 갖다 드려야지."

"땍때구루루"

"이야, 맛있겠다. 이건 내가 먹어야지."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일하다가 그만 산에서 길을 잃어 헤매던 중 빈집을 발견하여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도깨비 소굴!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두드리면 무엇이든 다 쏟아져 나오는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며 밤새 신나게 놀던 도깨비들은

어디선가 "딱!" 하고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라 혼비백산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느라 도깨비방망이도 모두 놔두고 간다. 착한 농부는 그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 개암: 자작나무가 활엽 관목에 속하며 크기와 맛이 밤에 비할 바는 안되어 '개 밤나무'라고 부르다가 '개암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방언으로 '깨금이'라 부르기도 한다.


[뒤]

착한 농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욕심쟁이 농부도 산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나무는 하지 않고 "땍때구루루" 떨어지는 개암만 주워서 산 중 빈집을 찾아 들어가 있다. 곧 부자가 될 상상을 하며 기쁨에 들뜬 욕심쟁이 농부!

이윽고 기다리던 도깨비들이 들어오고, 내심 이때다 생각하고 개암을 한 입 깨물지만 '피익~" 어쩐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도깨비들은 지난번 방망이를 가져간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욕심쟁이 농부를 넙치처럼 넓혔다, 장어처럼 길게 만들었다 방망이로 실컷 두들겨서 내쫓았다.

결국 몽둥이찜질로 만신창이가 된 채 욕심쟁이 농부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전형적인 옛날이야기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로또복권 당첨'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꿈꾸고 있지는 않은 지..


사실 내게도 그런 도깨비방망이가 간절히 필요할 때가 있었다. 일확천금의 부귀영화가 아니다. 꼭 지우고 싶은 시간만 쓱싹쓱싹 DELETE 또는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메모리 부분 SETUP 하고 싶을 만큼 잊어버리고자 아니, 아예 내겐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던 일인 마냥 기억조차 없기를 바랐다. 간절함이 통한 건지 아님 회피 방어기제가 제대로 먹힌 건지 몇 해동안 시시때때로 떠오르던 기억이 수면 아래로 깊이 가라앉더니 이내 까마득히 먼 나라의 종소리처럼 희미하게 사라졌다. 도깨비방망이로 뚝 딱! 한 것처럼...


 난치성 질환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응급실로 실려간 날 저녁, 기저질환과 고열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 원인을 찾기 위한 검사가 시작되면서 알게 된 임신소식..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둘째 아이는 뱃속에서 힘찬 심장박동을 내기도 전부터 가족들 그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했다. 어쩌면 세상의 빛 조차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내게 있는 모성이 처음으로 발동하게 됐나 보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 안겨보기도 전에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된 둘째 아이는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처음 세상이라는 곳에 나와 젖 냄새, 살 냄새 대신 소독약 냄새나는 공간으로 보내졌다. 아프다고 저항할 기운조차 없는 아이의 팔다리에는 날카로운 바늘이 여기저기 꽂혀있고 더 많은 수액 줄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 그것이 처음 내가 본 둘째 모습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더 이상 젖 냄새가 폴폴 풍기고 카스텔라처럼 폭신한 가슴으로 아이를 안아 줄 수 없는 현실이 얼마나 애끓는 일인지..

다행히 한 달여 만에 아이는 건강하게 퇴원하고,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간 동안만 면회하던 일상에서 이제는 언제든지 아이를 안고 함께 잘 수 있는 일상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편의 이직으로 주말부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복직마저 예상보다 한 달이나 당겨지게 된 것이다.

생후 두 달 밖에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도 가슴 먹먹한 데 더구나 뱃속에서부터 축하도 받지 못한 아이, 태어나서도 엄마가 아닌 여러 간호사 선생님 품에서 품으로 옮겨가며 젖병으로 우유를 먹은 아이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할머니 품에서 극진한 사랑을 충분히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맡기자고 마음먹는다.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과 물질적 보상은 물론 시부모님께서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소소한 것부터 큰맘 먹고 장만해야 하는 가전까지 살뜰하게 챙기며 정서적 지지에 애를 쓰는 날이 늘어났다. 며느리로서의 육체적인 노동은 기본 옵션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 한 사람만 참고 잘하자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본디 사람의 마음에는 만족이 없다는 것을,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그땐 몰랐던 거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나의 마음이 언제부턴가 닳아빠지고 방전된 배터리처럼 깜빡깜빡거리더니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잦아졌다. 신경정신과의 상담과 약물치료도 받았지만 불면증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고, 그날은 단 하룻밤이라도 깊은 잠에 푹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날은 수면제가 든 통이 나를 삼켜버렸고, 여전히 기억나진 않지만 제법 깊은 잠에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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