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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 두가지 맛을 보는 국수

by 바롱이

강화국수는 우리은행 강화지점 전 우회전 후 우측 대로변에 있다. 70년 넘게 운영하는 노포 국숫집이다.


식당 벽에 붙은 설명 판에 따르면 "1950년대 맑은 동락천이 흐르고 그 옆 실개천 뚝방 위의 국수집 수정국수는 옛 인항여객차부 어귀였다. 인천과 강화를 오가는 버스 승객들이 차 시간을 기다리며 혹은 차에서 내려 출출할 때 후딱 국수 한 그릇 비우던 곳으로 터미널이 옮겨지고 현자리로 옮긴지도 10여 년, 이제 옛 할머니는 작고 하시고 아들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옛 이름이 '수정국수' 임을 설명 판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설명과는 다르게 아들분이 아니라 며느님이 운영하신다. 시어머니 일을 돕다가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아 강화국수를 꾸리고 있다고 한다.


비빔국수와 잔치국수가 대표 음식이며 계절에 따라 열무국수, 콩국수, 냉국수, 떡만둣국도 맛볼 수 있다.



비빔국수를 주문하면 스테인리스 그릇에 국수를 넉넉하게 담고 갖은양념을 얹은 비빔국수와 겉절이, 쪽파 뿌린 멸칫국물을 함께 내준다.


한 그릇 두 가지 맛을 보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끝을 희롱하는 비빔국수를 바라본다. 노란 깨, 참기름을 머금은 갈색 설탕, 검은 김, 빨간 양념이 묻은 김치, 파란 쪽파 사이로 하얀 국수가 엿보인다. 색의 어우러짐이 곱디곱다.


비비기 아까운 모습은 코를 후벼대는 고소함으로 무너진다. 뇌를 거쳐 손으로 전달된 명령은 젓가락을 들고 충실히 따른다. 골고루 비벼지며 여러 색은 뒤섞이고 흐트러진다. 갖은양념과 김, 깨는 구석구석 국수 사이로 숨어들고 살며시 보였던 국수는 새뽀얀 얼굴에 옅은 붉은색을 덧칠하고 그릇에 제 존재감을 넓게 뽐낸다. 붉음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김치도 제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먹을 준비가 끝났다. 한 젓가락 크게 국수를 휘감아 입으로 밀어 넣는다. 순식간에 목구멍을 미끄러져 내장으로 향한다. 입술, 어금니, 혀, 입천장, 식도는 한통속이었다. 한 번 더 젓가락질은 이어졌고 그때도 입속 친구들은 참새 떼 덤비듯 함께 움직이며 '꿀꺽' 삼켜 버렸다.


세 번째 젓가락질은 김치를 골라 국수와 함께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다. 어금니는 뜨거운 물에 삶아 찬물에 여러 번 씻은 국숫발의 알맞은 식감을 눈치챈다. 어금니에 맞서지 않을 만큼의 보드라운 찰기. '존득하다'란 형용사보다 끈기가 덜한 질감이다.


어금니는 함께 달려온 김치의 식감도 동시에 느낀다. 아지작대는 김치는 국숫발의 부드러움과 포개지며 화합의 씹는 맛을 어금니에 선사한다. 틈을 파고든 쪽파는 아삭거리며 아릿한 맛을 보탠다.


어금니가 제 일을 하는 동안 혀와 입천장도 국숫발에 묻힌 맵고 단 양념의 맛과 깨의 고소한 맛, 김의 감칠맛을 분석하고 있었다.


음식점 한쪽 벽에 ‘비빔국수 맛있게 먹는 법’에 쓰여 있는 대로 국수에 멸칫국물을 붓는다. 불그스름한 면이 멸치 기운에 씻겨 제 모습의 하얀 색으로 돌아간다.


뜨끈한 국물을 들이켠다. 진하고 시원하다. 멸치의 맛이 스며든 풍미가 오롯이 느껴진다. 제대로 우려낸 멸치 육수다. 국물을 휘휘 젓고 면을 집어 먹는다. 촉촉한 온기가 더해진 국숫발은 얌전해지며 숙부드럽다(물체가 노글노글 부드럽다). 면에 묻힌 멸치의 감칠맛이 그윽하다. 몇 가닥 남은 국수를 먹고 남은 국물을 쭉 들이켜 마무리한다. 후련하다.


한 그릇에 두 가지 국수 맛을 보았다. 비빔국수는 갖은양념과 고명에 섞이며 다양한 식감과 맛으로 조화를 이루었고, 멸칫국물을 포용한 비빔국수는 바다 기운을 담은 진한 감칠맛을 뽐냈다.


입술, 어금니, 혀, 목구멍, 내장을 거친 노포의 국숫발 한 가닥 한 가닥엔 추억이 이어져 가슴에 잊히지 않을 맛으로 저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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