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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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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Jan 27. 2024

오랜 친구와 노포는 맛깔스럽다

겨울 대구매운탕

원대구탕은 1979년 개업하여 2대째 가업을 이어 운영중인 대구탕 전문집이다. 서울 삼각지역 로터리 주변 대구탕 골목의 원조 격으로 알려진 곳이다. 서울미래유산에도 선정되었다. 식당 내부에 한글로 원대구탕본점이란 쓰인 액자가 눈에 띈다.


넓적한 스테인리스 냄비에 대구 살과 내장, 무, 미나리, 콩나물 등 채소, 갖은양념을 섞어 끓여 먹는 대구탕과 내장탕, 맑은탕, 오롯이 대구 대가리만 넣은 대가리탕 등을 판매한다. 대구 몸통 살, 내장, 대가리 등을 조합하여 주문도 가능하다. 공기밥은 미리 말하면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무와 대구 아가미젓으로 만든 대구아가미젓 깍두기가 별미이며, 탕을 다 먹은 후 공깃밥을 미나리, 들기름, 김 가루, 대구아가미젓 깍두기 등을 넣어 볶아 먹는 볶음밥도 맛깔나다.


오랜 친구와 노포는 맛깔스럽다, 겨울 대구매운탕

친구를 기다리며 내부 구경 잠깐 하다가 자리에 앉아 대구살과 내장을 섞은 대구매운탕을 주문한다.


오래 돼 보이는 넓적한 은색 스테인리스 냄비 바닥에 무, 콩나물을 수북하게 깔고 대구 몸통 살, 내장, 갖은양념, 미나리를 넉넉하게 담아 육수를 부은 후 뚜껑을 덮어 내준다. 대구아가미젓 깍두기와 동치미 등 단출한 밑반찬도 함께 나온다.


대구아가미젓 깍두기는 대구 아가미를 소금물에 깨끗이 씻어 불순물을 제거 후 물기를 제거하고 굵은 소금에 절여 숙성한다. 삭힌 대구아가미젓에 깍뚝 썰기 한 무를 넣고 갖은양념에 버무린다.


대구 아가미의 발효의 감칠맛과 무의 시원한 단맛이 어우러진다. 깍두기와 식해의 경계를 드나드는 김치다.


젓가락으로 집어 맛을 본다. 사각사각 씹히는 무는 달금하고 톡톡 쏘는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독특한 발효 향의 대구아가미젓은 간간짭짤하며 잡맛이 나지 않는다. 꼬독꼬독, 살강살강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다.


다양하게 씹히는 맛과 특유의 시원한 풍미가 연신 젓가락을 잡아끈다. 밥도둑이 따로없다.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대구매운탕은 뚜껑을 닫은 채 가스가 연결된 화구에 센 불로 끓인다. 하얀 거품이 나올 정도로 바글바글 끓으니 연세 계신 여자 종업원분이 뚜껑을 열고 갖은양념을 풀어 준다. 채소는 먼저 먹어도 된다고 한다. 마침맞게 친구도 도착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건네고 술을 시켜 먹기 시작한다.


식당 내부에 원대구탕 맛있게 드시는 방법이 적혀 있다. "작은 접시에 겨자, 간장, 식초, 후추를 조합하여 미나리, 콩나물, 내장, 대구 순으로 드시면 더욱 맛있게 드실 수 있습니다."란 문구대로 처음 한두 번은 따라 해 보며 맛을 본다.


친구와 술잔이 몇 번 부딪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순서도 맛도 의미가 없어진다. 오랜만에 본 친구와의 술자리 대화에 빠져 술안주로 전락해진 대구탕은 여러 식자재들의 맛을 계속 우려내고 있었지만 눈치채지 못한다.


오랜 친구와 노포는 맛깔스럽다


식당 내부에 쓰여 있는 원대구탕 맛있게 드시는 방법대로 먼저 살짝 숨이 죽은 미나리와 콩나물을 조합한 간장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미나리는 특유의 향과 식감이 오롯하고 콩나물은 비리지 않고 아삭하게 씹힌다. 양념장은 간을 적당히 맞추며 풍미를 돋운다.


갖은양념을 섞어 한소끔 더 끓인 대구탕의 건더기와 국물을 앞 접시에 덜어 먹는다. 국물을 한술 뜬다. 후련하고 깔끔한 매운맛이 숟가락질을 몇 번 더하게 한다.


굵은 뼈가 있는 큼직한 대구 몸통에서 국자로 살만 발긴다. 쏙 발라진 뽀얀 살점을 입에 넣어 맛을 본다. 꼭 뭉쳐진 담백한 살밥의 단단함이 치아에 살짝 박히다가 혀에서 부드럽게 풀린다. 대구 이리는 몸통 살과 다르게 보들보들 고소하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약한 불에 은근하게 끓여진 국물도 맛을 본다. 여러 식자재들이 어우러지며 감칠맛과 시원함이 깊어졌다. 얼근한 취기를 다독여주는 따뜻한 국물이 술자리를 잇게 한다.

  


볶음밥은 대구탕의 남은 국물과 건더기를 앞 접시에 덜어주고 공깃밥과 미나리, 들기름, 김 가루, 대구아가미젓 깍두기 등을 넣어 밥알이 냄비에 살짝 눌어붙게 볶아 준다.


한 술 크게 떠먹는다. 김 가루, 들기름에 볶아진 눌어붙은 밥알의 고소함과 미나리, 대구아가미젓, 깍두기의 풍미와 식감이 온전히 전해진다. 술기운과 헛헛함을 달래주기엔 그만인 볶음밥이다.


서울의 뒷골목 노포에서 오랜 친구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두둑해진 배와 따뜻해진 마음으로 어둑해지고 쌀쌀한 서울의 거리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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