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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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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Mar 13. 2024

구례는 금요일에 순대를 삶는다?

한우식당은 구례 백연교 부근에 있는 순대집이다. 일주일에 금요일 하루만 장사한다. 상호는 한우식당이지만 현지 분들은 금요순대라 부른다.

 

메뉴는 순대와 순대국밥 두 가지다. 금요일 9시에 열어 준비된 순대가 떨어지면 영업을 종료한다. 일주일을 기다린 손님들이 많다. 식당 안에서 드시는 분들뿐 아니라 포장해 가는 손님도 꽤 있다. 방송을 타 멀리서 찾는 손님도 많다.


구례는 금요일엔 피순대를 삶는다!

분홍빛의 커다란 대창 순대를 가마솥에 삶는다. 순대를 가느다란 꼬챙이로 콕콕 찌른다. 구수한 냄새를 품은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코끝을 희롱한다. 순대가 터지지 않게 하려는 작업인듯 하다. 손이 많이 간다. 정성이 담긴 피순대다.


야생의 분홍빛 순대가 인간의 손길을 탄다. 알맞게 삶아진 순대는 옅은 갈색빛을 띠며 수더분해진다. 자신을 삶아 낸 가마솥 색깔을 닮은 듯하다.


순대국밥을 주문한다. 뚝배기에 대창 피순대와 허파, 돈설, 돼지 귀, 새끼보, 간, 곱창, 머릿고기 등 돼지의 각종 부위를 골고루 담고 육수를 부은 후 썬 대파를 얹어 내준다. 다양한 식감과 맛이 뚝배기 한가득이다. 돼지 백화점이다.


밥은 따로 공기에 담고 깍두기, 마늘장아찌, 무생채, 김치, 양파, 청양고추, 새우젓, 된장, 소금, 다진양념 등 밑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신맛, 발효의 맛, 아린 맛, 매운맛, 구수한 맛, 감칠맛, 짠맛 등 다양한 맛과 식감이 밥과 순댓국에 잘 어우러진다. 허투루 만든 밑반찬이 없다.


맑고 깔끔해 보이는 국물만 떠 맛본다. 삼삼하다. 몇 차례 더 국물만 먹는다. 구수하고 여린 감칠맛이 입안을 감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순한 감칠맛이다.


국물을 잘 섞는다. 사람에 따라 밍숭맹숭하게 느낄 수 있는 국물에 감칠맛이 진하게 돈다. 국물 바닥에 후추, 소금, 다진 마늘  간을 따로 해놓았다. 손님이 취향에 맞춰 먹게 하려  배려로 보인다.


국물의 맛이 조화로운 평균을 이루며 정점으로 치닫게 곁들여 나온 여러 양념을 더 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숟가락으로 국물과 건더기를 크게 떠 입안에 넣는다. 구수한 감칠맛을 머금고 촉촉해진 건더기들로 입안이 풍성해진다. 사근사근 씹히는 대파의 알싸함도 흥겹다.


젓가락으로 바꿔 잡고 건더기를 하나하나 골라 씹어 먹는다. 곱이 가득한 곱창, 폭신폭신한 허파와 돈설, 살코기에 살강살강 씹히는 비계가 적당히 붙은 머릿고기, 오도독 씹히는 돼지 귀, 졸깃한 새끼보와 내장, 고소한 간 등 돼지의 각종 부위가 어금니와 혀를 놀린다. 다양한 질감과 맛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피순대는 대창에 선지와 콩나물, 당근, 파 등 채소로 속을 가득 채웠다. 삶을 때 꼬챙이로 찌른 구멍 사이로 육수가 스며들어 퍽퍽함 없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새우 모양이 또렷한 새우젓을 올려 먹는다. 담백한 피순대에 바다의 감칠맛이 포개진다. 피순대가 일품의 맛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뜨끈한 국물, 푸짐한 건더기, 큼직한 피순대 덕에 속이 든든해진다. 일요일에 짜장라면 먹듯이, 금요일에 구례 여행을 가면 순대를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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