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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Oct 10. 2023

더하고 빼는 절밥

청주 구룡산 현암사 식사 공양

청주 구룡산 현암사는 대청댐이 내려다보이는 북서쪽 산기슭에 매달리듯 지은 절이다. 현암사의 뒷산에는 옛 성터가 남아있으며, 현암사에서 바라보는 대청댐과 대청호의 전경이 뛰어나다.


현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요사채 앞 의자에 앉으니 맞아도 기분 좋을 정도로 비가 살짝 내린다. 눈은 물끄러미 앞을 바라본다. 산과 호수의 푸름이 거리를 두고 다르게 펼쳐진다. 마음이 산뜻해진다.



대웅보전 스님의 불경 소리가 살며시 귓전을 맴돈다. 대웅보전 예불이 아직 끝나지 않음을 알아차리며 자연의 흥취를 즐기던 마음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공양간을 찾는다. 공양간 옆 식탁에 식사 공양할 음식과 식기들이 놓여 있다. 빛바랜 작은 의자들도 보인다.


11시 20분 정도 되니 공양간 옆 식탁에 식사 공양할 음식들이 차려진다. 대접에 밑반찬과 쌀밥을 담고 고추장도 한 숟가락 떠 밥 위에 얹는다. 작은 그릇에 물김치를 담고 있는 동안 여 불자님이 대접에 미역국을 넉넉하게 담아 주시며 비가 오니 요사채 방에서 먹으라고 하신다.


하지만 음식 담은 그릇은 풍경을 즐겼던 요사채 앞 식탁에 놓인다. 식욕에 비와 풍경을 즐기려는 욕심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비움은 없고 더함만 늘어난다.


대접에 오이소박이, 김치, 상추·고수·부추 등에 갖은 양념한 채소 겉절이, 채소 무침, 들기름에 볶은 명이 나물볶음 등 밑반찬과 따뜻한 쌀밥을 담고 빨간색이 도드라지는 고추장을 떠 하얀 밥 위에 얹는다. 작은 그릇엔 물김치를 담고 또 다른 대접엔 미역국이 담겨 있다.


눈앞의 풍경을 한번 바라보고 물김치를 담은 작은 그릇을 집어 들고 쭉 들이킨다. 마침맞게 익은 물김치 국물이 풍경만큼 상쾌하다. 따라온 채소 건더기는 풋풋함을 막 벗어나고 있다.


젓가락으로 바꿔 들고 큰 대접에 담은 밑반찬들을 조금씩 맛본다. 상추, 부추, 고수, 배추, 오이, 양파, 파, 명이나물 등 채소와 나물에 들기름, 깨, 고춧가루, 소금 등 양념이 더해졌다. 다양한 식자재에 다양한 양념이 보태졌지만, 음식들은 제각각의 맛과 향, 식감을 잃지 않았다. 간도 알맞다.


다시 숟가락으로 바꿔 잡은 손은 고추장, 밥, 밑반찬이 담긴 대접을 뒤버무린다. 대접속 제각각 색을 내던 먹거리들은 푸름을 빼곤 조금씩 먹음직스러운 빨간 고추장 빛을 닮아간다. 빨간빛이 많아졌지만, 푸른빛은 한결같고 주황과 하얀색도 본연의 색을 조금씩 보여준다.


크게 한술 떠 입에 넣는다. 여러 식자재의 질감과 맛, 향이 한데 어우러지며 입안이 풍성해진다. 밥, 밑반찬, 고추장이 뒤섞이며 제3의 맛을 만들어 낸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는 "비빔밥은 2개 이상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문화'를 몇 번 더 맛본다. 서로 다른 문화들이 슬며시 느껴지기도 하다가 새로운 문화로 포개진다.

 

새로운 문화가 살짝 퍽퍽해진다. 물김치를 한술 떠서 달랜 후 미역국을 대접째 들고 들이킨다. 국물이 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들기름 향이 코를 먼저 자극하고 뒤이어 구뜰하고 삼삼한 국물이 뒤를 받친다. 퍽퍽함은 잊히고 한동안 미역국에 숟가락질은 빠져든다. 바다향과 맛을 품은 미역 줄기는 들기름과 채수를 만나 본연의 졸깃함은 간직한 채 부드러워지며 먹는 이의 어금니를 기껍게 해준다.


그릇에 담은 음식들을 싹 비운다. 더함은 없어지고 빈 그릇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나는 산과 호수와 하나가 된다. 식욕이 채워지니 그제야 풍경이 보인다.


식사 공양 후 앵두나무에서 좀더 붉은빛을 띠는 앵두 두 알을 따서 입에 넣는다. 눈으로 덜 익음을 알아차리고도 먹은 앵두는 눈맛의 예감대로 시큼하다. 경험하고 나서야 다르지 않음을 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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