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쌀밥은 한알 한알 풀어지며 은은한 단맛을 국물에 뱉어내고 흐릿한 빨간 국물 속 여린 감칠맛을 받아들인다. 촉촉해진 밥알을 씹을 때마다 구수함이 물씬하다.
진녹색 미역은 졸깃한 감칠맛으로 제 식감과 풍미를 뽐낸다. 중간중간 오이무침에서 떨어져 나간 노란 깨가 국물 사이로 씹히며 고소함을 선사한다.
식은 주먹밥도 국물에 넣어 숟가락으로 풀어 헤친다. 검은 김이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국물에 김이 풀어지며 바다의 감칠맛을 보탠다. 따뜻함과 식음은 합쳐져 미지근한 중용의 국물 온도를 만든다. 먹는 이를 편안케 한다. 후루룩 마지막 국물을 삼킨다. 흰색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단순한 식재료들이 우러나고 스며들며 만들어 낸 어우러짐에 입안은 풍성해진다. 허기라는 강력한반찬 때문에 뇌와 내장은 포만감을 느끼며 행복을저장한다.
2024년 7월 작고하신 음식 평론가 황광해 씨는 "백반은 반찬이 없는 밥상, 밥+국+장, 지, 초의 밥상이며 밑반찬 중 김치, 나물무침 등은 지(漬)에 속하고 초(醋)는 식초, 장(醬)은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담북장 등 모든 장류를 포함한다. 장, 지, 초는 밑반찬이지만 정식 반찬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반찬이 없는 밥상", 백반에 가장 알맞은 절밥이다. 가장 높은 절집에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은 두 번의 절밥을 맛본다. ‘경치’라는 눈으로 먹는 밑반찬은 덤이다.
식사 공양 후 우리나라 가장 높은 곳(해발 1,244m)에 설치된 무료 커피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다. 크림이 들어가지 않은 설탕 커피가 나온다.
식사 공양 때 먹은 주먹밥 김같은 검은 커피를 마신다. 커피 내려지는 소리는 귀로, 색은 눈으로, 따뜻함은 손으로, 구수함은 코로, 달고 쓴맛은 혀로 오감이 어우러진다.
평지에서 먹은 커피 맛과 다르지 않음을 뇌는 안다. 다른 시간, 공간, 분위기가 만든 맛의 맥락은 추억을 뇌가 아닌 가슴에 저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