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한국을 떠나면서 전화번호를 없앤 나는 매번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임시번호를 만들어 쓴다. 여태껏 공항에서 무한정 데이터를 7만 원 남짓 주고 사서 썼는데 올봄에 남편과 KT를 방문했다가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선불폰이 한국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학생인 작은 아이도 혼자 어디 다니고 싶으니 이번엔 자기도 임시 전화번호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남편과 작은 아이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KT를 방문하게 되었고 나와 딸아이는 친절히 안내하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사용 가능한 번호를 고르고 필요한 서류에 싸인도 하고 사용이 되는지 확인도 하느라 바빴지만 남편은 기사노릇 외엔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바로 회장실로 향했다.
몆십 분이 지났을까 두 개의 임시번호가 사용 가능한지 확인을 마친 후 가려고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대기의자를 바라보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화장실에서 돌아오지 않은 건 아닐 텐데 따분한 걸 싫어하는 남편이라 그 사이 또 어디로 갔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들어올 때 미쳐 보지 못했던 안마의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 속에 쏙 들어간 노란 겉옷이 살짝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남편이 움직이는 안마의자에 몸을 맡긴 채 편안히 마사지받으며 졸고 있는 게 아닌가. 남편을 살짝 건드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아~ 이거 너무 좋은데.. 우리 집에도 하나 넣자. 진짜 시원한 게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네.. 일은 다 본거야?" 한다.
"어. 다 했지. 안마의자 끝날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 가자. 바쁜데.."
남편은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으로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버튼을 찾으려 애썼지만 생전 처음 써보는 안마의자라 방법을 알 턱이 없었다. 이것저것 아무리 눌러봐도 안마의자는 앉아있는 이의 속도 몰라주고 남편 몸 주무르기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 이게 왜 안 되는 거지? 어째야 되는 건지 모르겠네.." 당황한 남편은 이것저것 마구 눌러본다. 나도 함께 리모컨 버튼을 연구해 봤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냥 저절로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
"아니 아니 안 되겠다. 잠시만.." 그러더니 성질 급한 남편은 움직이는 안마의자에서 그냥 탈출하려 몸을 일으키려는 게 아닌가. 로데오처럼 마구 움직이는 포식 동물 같은 거대 안마의자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 웃겨 딸과 나는 깔깔댔다.
그때 우리 임시폰의 유심을 주고 번호를 안내해 주셨던 여직원이 놀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안 돼요. 큰일 나요. 다치실 수도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가만 앉아 계시고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눌러보세요."
나는 남편 손에서 리모컨을 받아 들고 재빠르게 빨간 버튼을 눌렀다. 그제서야 발광하던 안마의자가 조용히 멈추고 남편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붙잡고 있던 몸을 느슨하게 풀고 진정했다.
살짝 민망해진 우리는 웃음을 참고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그곳을 얌전히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안마의자 탈출 모습 영상이라도 남겼어야 했는데 하며 남편을 놀렸다. 아무리 급해도 진정하고 차분히 해결합시다 남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