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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Aug 08. 2023

하루 다섯 끼 먹기 프로젝트

중년이 되어도 남편의 식탐은..

얼마 전 아이 방학을 맞아 방문한 한국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한상 가득 차려놓고 마음껏 배 터지게 먹어 치우는 걸 참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바로 내 하나뿐인 남편이다. 그런 사람이 해외살이를 하려니 한국 방문 때마다 먹고 싶은 게 얼마나 많겠는가. 그렇다고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음식을 전혀 못 먹는 것도 아니고 현지음식도 아주 좋아한다.


휴가를 받아 한국에 도착한 그를 위해 나는 우선 병원 예약부터 잡았다. 체크해야 할 것들도 많고 받아 가야 할 약들도 많아서다. 병원 가는 길은 자가용이 없던 탓에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몸 상태 체크 후 약을 한가득 받아 든 채 우리 부부는 전기 버스에 몸을 실었고 나란히 한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를 좌석에 붙이자마자 엄청난 남편의 먹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배가 많이 고프니까 일단 해장국부터 시작하자."

"집에서 엄마랑 애가 기다리고 있는데 둘이서만?"

"그냥 일단 우리 둘이 먹으러 갑시다."

"오늘 점심은 해장국집에서 내장탕을 먹고 저녁은 회 한사리 먹자. 그리고 한국 햄버거는 식사라 하긴 그러니까 식사사이 간식으로 딱 먹어주"

"햄버거가 사람 위 하나만 한데 식사지 어떻게 간식이야?"

"무슨 햄버가가 식사야? 간식이지. 음.. 그리고 내일은 어머니표 소고기 뭇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중간에 치킨 한 마리 맛난 메뉴로 골라서 먹고, 점심은 복국을 먹는 거지. 그리고 저녁 먹기 전에 짜장면 한 그릇을 가볍게 간식으로 먹고 저녁으론 돼지국밥을 먹자."

"여보세요? 사람이 소화를 시켜야지. 어떻게 소화도 시키지 않고 연속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넣어?"

"아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섯 끼 정도 먹지 않으면 먹고 싶은 거 다 못 먹는다고."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려니 난 기가 찼다. 어이없는 대화를 주고받느라 옆에 있는 남편에게 고정되었던 시선을 앞 좌석으로 옮겼더니 그제서야 앞자리에 홀로 앉아계신 아주머니의 어깨가 들썩들썩 난리 난 게 눈에 들어왔다.


아차.. 남편의 어이없는 식사계획이 그분의 웃음보를 터뜨렸음에 틀림없었다. 곁에 동행이라도 있었더라면 같이 키득거리셨을 텐데 혼자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최대한 붙잡은 게 어깨의 멈출 수 없는 흔들림이었으리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하루 다섯 끼 계획 세우느라 정신없는 남편에게 알렸다. 앞의 아주머니의 흔들리는 어깨를 보자마자 남편도 창피함 당황함 그리고 조금은 웃겼던 모양이다.


그래도 자신이 희한한 남자로 보이는 건 피하고 싶었는지 마지막으로 이번엔 아주머니도 들으라는 식으로 조금 더 큰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는다.


"외국 살다가 일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먹고 싶은 게 많겠냐고? 가기 전까지 다 먹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사실은 일 년이 아니라 반년만의 방문이었다.


남편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주머니는 자신의 정류소가 맞긴 한 건지 하차벨을 누르고 몸을 일으키셨다. 부디 하차장소가 맞았길 소망해 본다.


사진출처 : AI h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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