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남편 그리고 인도네시아

남편이 떠나다

by Sassy

남편은 라톤, 바다수영 그리고 사이클링으로 단련한 후 철인 삼종을 도전하고 통영 대회에선 심판도 했다. 일당 5만 원짜리로 심판이라기 보단 선수들 움직이는 코스에 배치되어 선수들 움직이는 경로를 챙기는 건가 보다. 함께 가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른다. 대회 참관 중 남편은 선수로 참석한 송일국 배우를 봤데 너무 멋있었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수천만 원짜리 자전거를 가진 그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렵 미국 보스턴 마라톤을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 하다 하다 비행기 티켓이 얼만데 마라톤 하러 미국을 가겠다고? 그냥 해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한치 고려할 여지도 없이 그의 보스턴 도전은 주저앉았고 그 대회는 두 개의 폭발물 테러로 세명이 사망하고 183명 이상 부상당한 고통의 마라톤으로 기록되었다.


그 후 남편은 또 다른 도전거리를 찾는 눈치였다.

"나.. 골프 배워보고 싶어.."

다른 어떤 운동보다 돈이 많이 드는 종목인걸 아는 나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크게 반대했다.


결혼 12년이 지나고 권태기가 온 걸까? 나는 남편의 필요성을 점점 느낄 수가 없었다. 음주, 운동, 돈으로 문제는 늘 남편이 일으키고 뒷수습은 내가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나도 일을 하니 헤어져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집을 위해 어떤 역할도 못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나 보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이혼하는 법도 알아보았다.


남편이 다니던 다국적 기업은 다른 도시로 옮기기로 결정됐고 남편은 그 지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 여기저기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다닌 모양이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와서 대뜸

"나.. 인도네시아로 갈까? 오라는 회사가 있는데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뭐? 인도네시아? 절대 안 돼! 한국에서 둘이 같이 벌면 되지! 무슨 인도네시아야? 꿈에도 생각하지 마!"

남편의 필요 없음과 그와 헤어지고 싶 이혼하는 방법을 알아본 건 모두 순전히 뻥이었는지 어떻게든 단념시켜야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손위 시누이께도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남편을 온갖 말로 설득도 해봤지만 한번 마음먹은걸 잘 단념하는 편이 아닌 그는 처음 말 나온 지 두어 달만에 떠났고 그렇게 나는 초 6, 유치원생 두 딸과 함께 셋이 한국에 남겨지게 되었다.

남편이 떠나고 없으니 그동안 그가 우리 집에서 가족을 위해 한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는 나의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 났다. 부엌 전등이 나가 어두워도 갈아줄 사람이 없고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해도 셋만 덩그러니 앉아 먹으려니 왠지 가슴이 아팠다. 아빠와 함께 도란도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옆 테이블의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방학 때도 어디 가벼운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남편 없어도 애들만 데리고 신나게 잘 다니는 사람들이 많던데 난 많이 의존적인 사람인가 보다.


난 이제 깐깐한 엄마 역할은 반쯤 내려놓고 무한 허용 아빠의 역할로 나머지 반을 채워야 했다. 누구 하나 그러라 요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겨울왕국이 유행할 때 예전 같으면 어림 반푼 어치도 없을 캐릭터 우산과 엘사 드레스 그리고 비싼 멋 내기 선글라스까지 작은 아이를 위해 과감히 투자했다. 큰 아이의 마지막 어린이 해를 위해 클래식 기타를 사고 아이를 위해 수강신청도 했다.


큰아이도 아빠와 남편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꿔야 되겠다고 생각한 건지 처음으로 내 생일에 순전히 자기 용돈으로 제일 작은 조각 케이크를 마련해서 작은 아이와 함께 깜짝 파티를 해줬다. 내 생애에 받은 생일선물 중 가장 소중한 것으로 추억된다. 크리스마스엔 큰 아이가 동생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나와 함께 작은아이 최애 레고를 몰래 사서 산타 편지와 함께 자는 아이 리맡에 살포시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산타의 선물과 편지를 발견한 작은아이의 황홀해하는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편은 일 년에 세 번 휴가를 왔는데 매번 시댁, 친정을 방문해야 했고 그러고 나면 곧바로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해서 한참 예민하던 작은 아이는 코피도 쏟고 약간의 불안증세까지 생겼다. 책을 좋아했던 작은아이는 아빠가 떠나면 <픔을 치료해 주는 비밀 책>이란 동화책에 적힌 대로 사과를 반으로 잘라서 까만 씨앗을 화단에 심고 물을 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기도 했다.

아이가 아빠 떠날때마다 읽었던 척


그렇게 남편, 아빠 없이 2년을 보낸 우리는 모든 걸 뒤로하고 결국 남편이 일하는 인도네시아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은 했을까? 아니면 새로운 종목인 골프에 빠져 가족의 존재를 잊고 있었을까?


지금은 큰 아이를 홀로 한국에 보내고 자주 볼 수 없어 그런지 남편이 작은아이와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 많이 애쓰는 편이다. 물론 골프도 열심히 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