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난 출장 외엔 멀리 나간 적 없어요.
육아와 회사업무 둘 다 잘하긴 어렵다
오래전 해외영업부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다.
미국 본사에서 손님들이 많이 방문했다. 해외업무를 담당했던 우리 팀은 그럴 때마다 늦게까지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더러 술도 마셔야 했다.
덴버에서 온 지사장은 결혼한 여자였는데 그날따라 술을 병째 마셨다. 미국인들이 원래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술잔을 이용하지 않고 병을 들고 혼자 홀짝홀짝 마시며 온갖 이야기를 했다.
두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는 술이 좀 들어가니 남편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적어도 난 혼자 즐기겠다고 아이들을 두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난 적은 없어. 지금도 놀기 위해 여기 한국까지 날아온 건 아냐. 업무 때문에 온 거지.. 근데 말이야.. 내 남편은 골프 치러 비행기 타고 멀리 떠나기도 한단 말이지.. 이해할 수 없어."
그 당시 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라 그녀를 위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들으며 추임새만 몇 마디 해줄 뿐이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나도 결혼을 했고 마치 그녀가 나의 미래 결혼생활의 복선을 깔기라도 한 듯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도 홀로 즐기는 다양한 운동종목에 빠져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물론 중년이 된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술병을 들고 마시며 자신의 가정사를 결혼도 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늘어놓을 때의 마음이 어땠을까.. 내가 결혼한 후 그녀를 만났더라면 둘이서 서로의 남편흉을 실컷 보며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었을 텐데..
출장을 마치고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그녀가 집안 사정으로 앞으로 업무의 대부분을 내려놓고 회사에 있는 시간을 대폭 줄이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중요한 보직을 모두 수행하기에 육아문제가 많이 걸렸나 보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특히 아이가 생기면 회사업무와 육아 모두 동시에 잘해나가기 무척 힘들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가 보다. 지금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해외생활 8년이 넘어간다. 가끔 영어과외를 하긴 하지만 정해진 나의 보직은 없어진 지 오래다. 나이는 들어가고 가끔 불안해진다. 그냥 이대로 살아가도 괜찮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