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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19. 2022

길고양이 밤톨이를 키우게 되다.

인도네시아는 아파트도 많지만 단지별로 조성된 주택단지에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파트처럼 단지별 입구에 경비가 주민들과 방문객의 출입을 관리한다.


같은 회사 직원 아내가 단지 내 길을 가다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다쳐서 좀 보살펴 주려고 집으로 데려 왔다고 했다. 하얀색 몸에 노란 점박이 무늬가 있는 새끼 고양이가 주사기 모양의 도구에 담긴 우유를 받아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아기가 분유를 먹는 모습과 아주 비슷했다. 옆구리 쪽에 노란색 하트무늬가 있어 이름을 '러브'라고 지어줬다고 했다.  


나는 남편과 저녁에 단지 내를 산책하는 걸 좋아했다. 한 번은 우리가 산책하면서 자주 만난 까만 어른 고양이가 자기랑 비슷하게 생긴 아기 고양이와 함께 가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 우리를 보면 다정한 모습을 많이 보인 터라 자기 새끼인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가려는 순간 그 까망이가 곁에 따라오던 고양이를 60센티도 넘는 하수구에 밀어 넣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고 바퀴벌도 많고 쥐도 다니는 하수구라 살짝 겁도 나서 까망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음과 새끼 고양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또 다른 하루 여느 때처럼 남편과 산책하고 있는데 전에 직원분 집에서 본 <러브>와 똑같이 생긴 아기 고양이가 마치 주인이라도 만난 듯 졸졸 따라왔다. (한 배에서 난 형제가 틀림없다. 심지어 밤톨이는 등에 노란색 하트가 있다.)저번에 새끼 고양이가 어미 같아 보이는 고양이에게 공격당하는 걸 본 우리는 쫓아버리기도 그렇고 일단 따라오는 걸 그냥 두었다. 한편으론 '러브' 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단지 한 바퀴 돌고는 직원 집까지 가 보았는데, 가족이 외식을 나갔는지 차도 없고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바깥에 있는 방충망 문에 붙어서 스파이더 맨이라도 된 양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거기 그대로 있길래 그냥 두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자를 남겼다. 산책하다 '러브'를 만나서 집 앞에 데려다 놓았다고.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그 새끼 고양이를 보고 나의 문자까지 본 직원 부인은 '러브'는 이미 자기 집안에 있는데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가 방충망에 붙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으니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이걸 어쩌나.. 난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남편도 그냥 내보내라고 난리였다. 작은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라 강아지든 고양이든 너무 키우고 싶어 하고 있었고.. 어쩌나.. 일단 그 작은 생명체를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를 어둠 속에 내버려 두기는 맘이 아파 하루만이라도 재우기로 하고 집안으로 데려왔다.


고양이에 대해선 아는 것도 하나 없는데.. 직원 아내가 고양이는 모래만 있으면 거기서 변을 모두 처리하니까 박스에 모래를 담아다가 문 앞에 두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급하게 박스에 뜰에서 흙을 퍼 담아와 넣어 두었더니 신기하게도 그 손바닥 만한 고양이가 거기 들어가서 변을 알아서 다 처리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남편은 출근하면서 퇴근하면 고양이가 집에 없어야 한다며 단호한 어조로 한마디 하고 대문 밖을 나갔다. 아이는 너무 키우고 싶어 하고 내보내면 이 아기는 또 어찌 지낼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키우자. 그러고는 너무 쪼끄만 그 생명체에게 밤톨만 하다고 '밤톨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키우기로 했다. 이틀 정도 지나니 그렇게 싫어하던 남편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밤톨이를 너무 좋아했다.


물론 밤톨이 목욕, 밥, 간식, 모래 정리, 사고 수습 등등 모든 건 내 일이었다. 모두 귀여워만 할 줄 알았지 밤톨이 뒤치다꺼리는 전부 내 몫이 되었다. 그나마 귀여우니 봐준다. 애교도 많고, 화장실에 있다 물 내리는 소리가 나면 쫓아와서 문 입구에 대기하고 있다가 놀라게 하고 성공하면 신나하고 우리 식구가 되려고 그랬는지 장난을 너무 좋아했다. 그러다 여러 번 당한 내가 화장실 입구에 장난칠 준비를 하고 있을 걸 예상하고 한 발 나가기 전에 위에서 몸을 90도로 숙여 준비하고 있는 밤톨이 등을 툭 건드렸더니 깜짝 놀라 수직 점프를 하는 것이다. 통쾌한 복수다. 하하하. 너만 장난 치라는 법 있냐?


어쩌다 사춘기인 큰아이를 혼내느라 큰소리라도 치면 나를 향해 야옹야옹한다. 누나를 혼내지 말라고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동물과 사람이 정말 한 가족이 되어서 지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물론 성가신 일도 많았다. 밤에 '찌짝'(인도네시아에는 도마뱀이 많다. 그중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를 찌짝이라 부른다)이 벽에 붙어 있으면 소리 내면서 나를 부르는 것이다. 도와 달라는 듯이. 그럼 난 또 벽 위쪽을 바라보며 애태우는 밤톨이가 딱해서 기다란 빗자루로 찌짝도망가게 하거나 내려오게 유도를 해주었다. 어찌 된 게 밤톨이가 정말 내 자식이라도 된 듯 뭐라도 다 도와주고 싶고 짠하고 그랬다. 근데 찌짝은 이렇게 항변했을지도 모르겠다. "지 자식만 귀하냐? 저 놈의 고양이가 내 목숨을 위협하는데. 목숨은 다 귀한 거 아냐?" 미안하다 찌짝.


이렇게 우리 부부는 딸 둘 고양이 한 마리 총 다섯이 함께 하는 가족이 되었다. 지금 밤톨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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