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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20. 2022

파인애플을 수확하다

2년 전 인도네시아 찌까랑에 살 때 작은 아이가 초등생이고 우리 집 앞뜰이 흙으로 덮여 있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심어 봤었다. 방울토마토, 고구마, 씽꽁(고구마와 비슷한 뿌리식물-카사바. 물론 잎사귀도 먹는다.), 파인애플, 민트, 파파야, 멜론, 파프리카 등이다.


방울토마토는 열매 안의 작은 씨앗을 말려 심어 놓고 매일 하교 길에 아이가 한 알씩  따먹었다. 비료를 주지 않아 많이 달지는 않았지만 그냥 아이에게 한 알씩 따서 먹는 재미라도 느끼게 해주는 걸로 만족했다.


파파야는 심어 놓고 보니 수컷이라 열매를 못 맺기도 하거니와 금방 나무로 커버려서 뿌리가 너무 단단해지면 감당 불능이라 조기에 잘라버렸다. 파파야가 암수 따로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고구마는 냉장고에 보관한 고구마가 나의 게으름을 비료로 싹을 너무 틔워 놔서 자르기 미안해 수경재배하다가 그 마저도 너무 커버려서 화단에 심었다. 근데 또 고구마 순은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건지. 순식간에 화단 전체를 모 뒤덮는 바람에 순을 따 반찬해 먹은 적이 있다. 새순이라 그런지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다.


씽꽁은 카사바라고도 하는데 작은 윷 같은 크기의 나무 조각을 심었더니 너무 크게 자라서 잎사귀를 잘라 나물 만들어 먹은 적이 있다. 어린 뿌리는 튀기거나 구워 먹으면 부드럽고 정말 맛있다. 하지만 고구마처럼 잎을 먹으면 뿌리가 맛없으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욕심은 부리지 않는 게 좋다.


마트에서 사 온 민트도 그냥 흙에 묻어놨더니 파릇파릇하게 잘 자라줘서 잎사귀를 따다가 물에 넣고 오렌지를 짜 넣어 마신 적이 있다. 그런데 하루는 작은 아이가 뱀이 민트 쪽으로 왔다가 지나가는 걸 봤다고 해서 당장 빼 버렸다. 뱀은 내 평생 극복하기 힘든 동물 중 하나다.


원래 식물 키우기엔 소질이 없던 내가 이것저것 제법 자라는 걸 보니 별거 아니다 싶어 맛나게 먹은 게 멜론 먹은 씨앗도 말려다가 그냥 뿌려 봤다. 흙을 파서 심은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시험 삼아 그냥 뿌려 두기만 한 건데 순식간에 새 순이 모판에 심은 모처럼 엄청 많이 자라 우리 집 고양이 밤톨이가 잘 뜯어먹은 적이 있다. 멜론도 하나 열렸는데 아직 주먹만 한 걸 누구(밤톨이 아니면 새앙쥐 같은데..) 소행인지 한 입 크게 먹혀서 내가 맛보진 못했다.


내친김에 마트에서 사 온 파프리카도 도전해 봤다. 역시나 잘 자랐다. 화분에 심었는데 슝슝슝 새 순이 화분 흙을 온통 다 덮어 버렸다. 새 순이 너무 많으면 영양분이 부족해지니 제일 튼튼해 보이는 다섯 개만 남기고 다른 집에 모두 보내줬다. 진짜 노란색 파프리카가 열렸다. 하지만 우기엔 진딧물이 너무 많이 생겨서 다 버렸다.


마지막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파인애플 윗부분 나무를 심으면 파인애플이 난다고 해서 심어봤는데 이건 열매 맺는데 제법 오래 걸렸다. 심어둔 파인애플 나무 부분이 점점 커지기만 하고 열매가 맺힐 생각은 하지도 않더니 2년 지난 후 드디어 나무 한가운데서 열매가 맺혔다. 신기했다. 세 그루 심었다가 두 개를 따 먹었다. 좀 신맛이 강했지만 내가 심은 파인애플을 맛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행복했다.


이쯤 되면 나도 식물 박사라고 불러도 되려나 하하하. 큰 도시에서 생활하진 않았지만 농사짓는 시골생활을 해 본 적 없던 나는 농사짓는 집에 시집가서 명절 때마다 눈칫밥도 제법 먹었고(시어머니는 나 들으라고 시동생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너는 농사짓는 여자랑 결혼해라. 사람이 뭘 알아야지..") 초등학교 때는 외갓집에 가면 시금치도 모른다며 외할머니로부터 타박을 들어야 했다. 결혼 후 친정엄마가 텃밭에서 수확해오신 양파를 자르라고 하셔서 늘 보아 온 양파를 생각하며 끝부분까지 싹둑 잘라놨더니 "에고.. 저래 놓으면 양파가 다 썩는데.. 이미 자른 거 할 수 없지. 좀 길게 자르지 않고.." 농사를 지어 보지 않은 나는 늘 실수 연발이었다.


뜻하지 않게 시작된 인도네시아 주택생활로 시도해 본 앞뜰 농사. 뭐 이 정도면 나도 꽤 괜찮은 농사꾼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양가 어머니들의 비웃음 소리가 벌써부터 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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