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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20. 2022

족저근막염이 생기고 낫다.

인도네시아 스마랑에 이사 온 나는 달리 여가 생활할 꺼리도 없고 걷기라도 하며 스트레스를 풀자 싶었다. 사시사철 더운 이 나라는 해가 뜨고 나면 걷기 힘들기 때문에 새벽부터 부지런히 나가서 동네를 걸었다. 한 시간 이상씩. 그러다 한국인 이웃을 만났고 함께 걸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많으나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그런지 속도가 너무 빨라 함께 걷는 게 쉽지는 않았다.

아파서 한번 병원 신세를 진 후로는 운동을 최대한 하려고 애쓰던 터라 그 언니 속도를 따라 열심히 걸었고 옷이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 그렇게 샤워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얼마나 개운하던지.. 속보를 하니 그래도 더 운동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달 그렇게 운동하던 중 내 왼쪽 발바닥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상하다. 뭔가 불편함이 느껴지고 자고 난 아침 첫걸음을 떼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한국에서 도보 동아리에 몸담아 2박 3일 지리산 종주도 해봤다는 이웃 언니가 발바닥이 아프면 좀 쉬는 게 낫다고 적극 권했다. 혹시 족저근막염이 아닌지 걱정하면서.. 처음 듣는 증상명이었다.


그 후로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걷는 걸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에겐 그야말로 절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거지하려고 개수대에 서면 왼쪽 발바닥이 너무 아파 몸의 무게를 오른쪽으로 지탱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게 오른쪽 골반이 틀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는지 이젠 골반마저 너무 아파 걷는 게 더 힘들어졌다. 이러다 정말이지 큰일 나지 싶었다. 몸의 대칭과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가며 최대한 발바닥을 바닥에 대는 일을 피하려 애썼지만 그게 거의 가능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마라톤 풀코스를 열 번도 훨씬 넘게 참가한 남편이 내 눈앞에 발바닥에 관한 책을 펼친다. 전문적인 내용을 읽어보고 그에 맞게 추천하는 운동도 해보았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힘들다.. 어쩌나 이 일을.. 앞으로 나는 이제 산도 못 가고 산책도 못하는 건가 싶었다. 딸아이는 그래도 내가 설거지도 하고 시장도 보니 별일 아니다 싶었는지 어떤 요리를 해달라고 했는데 발바닥이 아파서 못 하겠다 하면 시장은 어떻게 갔느냐고 의아해하며 묻는다. 그럴 땐 가족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오며 느낀 건 가족이 아플 때 나는 온갖 걱정에 파묻혀 최선을 다해서 돌봐주지만 정작 내가 아프면 나 외엔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이다. 정말 처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족저근막염을 이길 수 있는 운동요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같은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지 영상도 많고 그에 따른 조회수도 엄청났다. 나도 의사들이, 혹은 전문 물리치료사들이 올려놓은 영상들을 참조하여 부지런히 발바닥 마사지도 해보고 아침에 눈뜨면 바닥에 발바닥이 닿기 전 스트레칭으로 먼저 발바닥 근육을 풀어주는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독한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내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너무 독해서 거의  걷지 않고 침대에서만 지내서 그런지 아니면 델타 바이러스로 인한 통증이 너무 심각해서 그런지 잠시 바람 쐬러 테라스로 나갈 때 발바닥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렇게라도 족저근막염이 사라져 버리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한 달여 지나고 델타 바이러스로부터 완전 자유를 선언하고 나서 발바닥의 감각을 느껴보니 실망스럽게도 아직 아프다. 역시나 자고 일어나서 실수로 발바닥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바닥에 첫발을 디디면 그야말로 발바닥, 특히 뒤꿈치가 깨지는 것 같았다. 이 극심한 통증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머리가 아팠다. 약이라고는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려는 자연 치유 주의인 나였지만 소염제를 먹어볼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코로나 감염 때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던 건 머리가 깨지는 통증과 터질 듯 닳아 오르는 열을 가라 앉히기 위해 6~8시간마다 먹은 진통제 파나돌 때문이었나 보다.


처음 족저근막염 증상을 느끼기 시작한 지 6,7개월이 지날 무렵, 이웃 아이들과 엄마의 영어 레슨을 해줬고 그때도 아팠다. 바닥을 디딜 때마다.. 그래도 몇 달 후면 한국으로 가는 가족이라 부지런히 했다. 나의 최대치를 쏟아내주고 싶은 가족이었다. 그 수업에 너무 몰입해서였을까? 어느 순간 발바닥 통증이 많이 약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이것저것 내가 할 수 있는 스트레칭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그 가족의 영어 수업을 한 것도 분명히 도움이 되었으리라. 엔돌핀과 도파민이 체내에서 자연 발생되면서 치료에 큰 도움을 준 건 분명해 보인다. 어찌 되었건 된 건 통증은 점점 약해지더니 급기야 사라졌다.


너무 기뻤다. 그 가족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고 다시 통증 없이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는 지금도 부지런히 걸으며 아침을 연다. 족저 근막염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모든 분들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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